몽실 언니와 함께 사랑의 마음을

이미숙


   몽실언니!
   몽실언니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읽었습니다. 난남이가 철없이 좋아하면서 부잣집 양딸로 갔을 때 언니는 그 동안 악착스레 버티어 온 절름발이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고 하였죠?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고 동생들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앞으로도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니는 동생 영순이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영순이의 편지를 보며 서러웠습니다. 언니가 동생들을 끝까지 보살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삼십 년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겠는지요. 언니의 삶을 생각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서러웠습니다.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발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갑니다. 엉덩이가 꽉 끼게 착 부쳐 입은 치마는 불편해 보입니다. 이마에 앞머리를 붙이고 뒷머리는 틀어 올렸습니다. 주머니나 목에는 하나같이 핸드폰을 하고 다닙니다. 그 아이들의 허망한 모습에 아이들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그렇게 차리고 다니고 자기들끼리 험하게 얘기하면서, 자기들을 쳐다보고 있는 어른들을 무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힘겹게 가지고 있는 무게를 느낍니다.
   아이들의 뒷모습에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있는 몽실언니를 겹쳐 보았습니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지독한 가난, 그리고 아버지와의 헤어짐, 엄마의 개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영득이가 태어나고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다리병신이 되고… 하지만 몽실언니는 씩씩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의 모습은 씩씩하지 않습니다. 약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합니다. 아이들은 '따' 당하지 않기 위해 더 잔인해지고 난폭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처참한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이념의 갈등도 겪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은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어른들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아이들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몽실언니!
   언니의 씩씩함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황폐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을 놓지 않았던 언니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패배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황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미워할 것은 제대로 미워하고, 사랑할 것은 제대로 사랑하는 아이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폭력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꿈만은 아니겠지요?
   《몽실 언니》 이야기를 가지고 학교 밖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자주 만난답니다. 5, 6학년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몽실언니의 처지에 눈물짓고 한숨 쉬며 슬퍼한답니다.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아이들이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몽실언니를 통해 할머니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뜻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은 확실하답니다. 아이들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사랑의 마음을 몽실언니와 함께 지켜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몽실언니, 언니의 곱추 남편, 기덕이 기복이 남매, 그리고 난남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2000년 6월호에 실린 《몽실 언니》를 읽고 난 느낌글이다. 이미숙 회원은 청소년 분과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