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아이들 』
(창작과 비평, 1988) ,머리말

 

'바닷가 아이들'은 벌써 십여 년 전에 씌어졌던 작품입니다.  그때 이현주 선생과 조그만 등사판 책자를 만들면서 이 작품을 발표할 것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국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소년 영웅 이승복군의 반공이야기가 교과서에서부터 잡지, 만화책에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작품화되어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던 때여서 '바닷가 아이들'은 한층 위험스런 작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반공은 이 나라의 국시(확정되어 있는 한 나라의 방침)니까 마땅히 아이들을 반공 전선으로 몰아넣어 같은 겨레를 원수로 가르쳐 미워하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사십 년 동안 이 반공이란 지휘봉 하나로 모두가 하나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었습니다.  교육자도, 성직이라 하는 종교 지도자도, 예술인도, 문학인도, 그 지휘봉에 따라 똑같이 지옥으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2차 대전 때 사이판의 한 조그만 섬에서 부모님과 오빠와 언니를 잃어버렸던 일존의 어린이 이시구라 가오꼬양은 그때 열두 살의 소녀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국가 교육(국시)은 "부끄러움을 남기기보다 죽는 것이 떳떳하다", "미국군인은 보는 대로 다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오꼬네 식구들은 이런 거짓 가르침대로 한 개의 수류탄으로 아홉 식구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맨주먹의 어린이 몸으로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오빠는 억울하게 죽었고 살아 남은 식구들은 먼 훗날에야 일본 정부의 거짓 가르침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과 언니 오빠는 죽지 않아도 되는 목숨이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가 만든 국시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국민을 살리기보다는 희생시키는 도구였습니다.
  반공 소년 이승복군의 죽음도 반공 국시의 희생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것도 허울뿐이었지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두꺼운 성벽의 벽돌장 하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승복이의 목숨은 공산당의 총탄에 앞서 이 나라의 정치, 교육, 종교, 문학, 이 모든 것이 서로 공모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어린이의 목숨은 어떤 정부 이익이나 명분으로도 이용하고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바램,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어른들은 소중히 여기고 보살펴 보호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며 종교입니다.
  북한을 공산 괴뢰 집단으로만 표현해야 문학을 할 수 있었던 부끄러운 현실, 동화를 쓰는 한 사람인 나도 가슴 아프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른들, 그것도 몇 사람의 정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한겨레를 원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어린이는 이름 그대로 어린이일 뿐입니다.  북쪽의 어린이도 남쪽의 어린이도 어른들의 색깔로 마구잡이 필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동무가 되고 싶고 서로 나누며 걱정하면서 살고 싶은데, 벽을 만들고 반목하게 하는 것을 어른들의 특권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발 사람답게 살도록 합시다.
  남북이 갈라진 지 사십 삼 년째나 되니 결국 분단 세대에는 사람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도 될 것입니다.

                                                           1988년 8월 15일 권정생

 

▷차례
제 1 부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늦가을 소나무와 굴뚝새/중달이 아저씨네/연이의 오월/장군님과 농부/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제 2 부
바닷가 아이들/앵두가 빨갛게 익을 때/진구네가 겪었던 그해 여름 이야기/빼떼기/끈/팥죽 할머니(동극)
제 3 부
새앙쥐 귀신이 되어 돌아오다/약장수들/초밭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