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득이네 』   
(창작과 비평, 1990), 머리말

 

 우리 나라 속담에 "남이 장에 가니 저도 거름 지고 장에 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 분수나 처지도 모르고 그냥 하는 대로 따라가는 못난 사람을 비웃는 속담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이런 못난 사람처럼 남이 한다니까 그냥 따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누가 부추기고 얼러맞추면 후딱 넘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을 얼빠진 사람,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올림픽을 하고 경제 성장 얼마얼마라고 하니까 덩달아 그런 줄 알고 흥청망청 헤프게 쓰는 사람, 가짜 외국 상품이나 가짜 보석 목걸이를 걸치고도 진짜인 줄 알고 목이 뻣뻣해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정말 사람답게 진실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라고 합니다.  좃짚(서속짚)이 잇(볏짚)을 보고 "벅석아." 한다나요.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나라, 50년 가깝도록 같은 핏줄끼리 나라를 두 쪽으로 쪼개어 좋고 총대를 겨누고 있는 나라. 집 없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사람을 납치해다 팔아 먹는 사람이있는 나라, 바른 교육을 하려는 선생님을 잡아 가두고 해직시키는 나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당해야 하는 나라, 가난한 백성보다 돈 많은 몇 사람을 위해 있는 나라, 이런 나라를 어떻게 잘사는 행복한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광주 아이 천호가 10년 전 공수 부대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었을 때 나이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열다섯 살의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천호와 천호네 어머니는 어떻게 슬픔을 삭이며 고통을 참으며 살았을까요?
  우리가 이웃 돕기니 나라 사랑이니 하면서 행사를 벌이고 법석을 떤다고 이웃 사랑, 나라 사랑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점득이네나 광주의 천호 같은 경우, 그런 값싼 동정심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을 이루고 국민이 주인이 되어 모두가 하나의 가족처럼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때야 점득이네도 광주의 천호의 한도 풀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절대 우리는 잘 산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축복받았다거나 하는 말을 쓰지 맙시다.  통일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누가 가져다 주는 게 아니고 6천만 겨레가 하나같이 힘을 모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점득이네"는 처음 이현주 목사님이 만든 "공존"이라는 팜플렛에 몇 번 연재하다가 다시 "해인"이란 불교 잡지에 2년 동안 연재했습니다.  그때 법연, 여연, 현웅 스님 들께서 꼼꼼하게 읽으면서 자상하게 손질해 주신 것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몽실 언니"를 처음 김영동 목사님이 만들던 교회 청년 회지에 연재하다가 다시 월간 "새가정"으로 옮겨 2년 간 썼던 것과 우연치고는 너무 닮았습니다.  "몽실 언니"를 마을 할머니들, 시장터 술장수 아주머니, 공사판 노동자 아저씨들까지 읽어 주신 것은 정말 기뻤습니다.
  "해인" 잡지에 연재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준 장환이 아빠가 다시 그림을 고쳐 그려 주었고 창작과 비평사 여러분들이 한 줄 한 줄 세심한 교정을 보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점득이네"는 많은 분들의 수고로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가끔 아이들의 편지를 받아 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만 쓰지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슬픈 이야기만 쓰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슬픈데 어떻게 슬픈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기 4323년 5월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