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고향은 (웅진 출판)』머리말

이원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며

권정생 

 

  저는 이원수 선생님이 돌아가실 즈음 두세 번 만나 뵈었지만 솔직히 선생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속깊은 말은 못 드리고 그냥 인사말만 몇 번 건넸을 뿐입니다.  왜 선생님에 대해 그렇게 몰랐는가 하면 선생님의 책 한 권 변변히 읽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교과서 외엔 책이라는 것은 거의 구경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원수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동화책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6·25전쟁 때 정홍교라는 분의 《박달 방망이》라는 동화책을 읽어 본 것이 한국 아동 문학의 전부였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 몇몇 분의 동화책을 읽었지만 이원수 선생님의 책은 왜 찾아볼 수 없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어릴 때 부르던 <고향의 봄>이란 동요도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르고 불렀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밤중에>라는 동시도 입으로는 외우기까지 했으면서도 누가 쓴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이원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1983년 전집이 나왔을 때야 <숲 속 나라>, <오월의 노래>같은 많은 동화와 동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선생님과 함께 살면서도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진정한 선생님을 겨우 만나 뵙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쓴 이원수 선생님의 이야기는 모두 이원수 선생님의 부인이신 최순애 선생님과 따님 정옥씨에게 들은 것이고 선생님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일기책을 낸 이윤복 군이 자기의 일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게 "내 일기는 굉장히 긴데 영화는 왜 이렇게 짧습니까?"하고 물었대요.
  그러자 감독이 "그 많은 일기를 다 영화로 만들면 몇 달이고 극장에 앉아서 구경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그러니 중요한 대목만 두 시간으로 줄여 만들었지."하고 가르쳐 주더랍니다.  
  이원수 선생님의 이야기도 칠십 평생을 다 써 놓자면 책으로 몇백 권 몇천 권이 될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이원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 책에 옮겨 놓은 이야기도 이원수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겨우 몇 가지만 짧게 골라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고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선생님의 동화책을 많이 읽어 보아야겠지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책을 통해서나 그림을 통해서나 음악을 통해서 훌륭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계셨던 예수님도 만날 수 있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계셨던 석가모니 부처님도 만날 수 있고요.  세종 임금님은 한글을 통해서 지금도 날마다 만날 수 있고, 《난중일기》책과 거북선을 통해 이순신장군도 만나게 되지요.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모차르트를 만나고 <인어공주>난 <벌거벗은 임금님>을 통해 안데르센도 만나고요.  
  지금도 우리는 먼 곳에 있는 동무나 친척 아저씨를 전화를 통해서난 편지를 써 보내면서 만나기도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직접 만나기보다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면 더 진실되게 만날 수 있답니다.  말로는 못하는 것도 글을 쓰게 되면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책이란 것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그 책을 쓴 사람의 마음까지도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원수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선생님을 깊히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선생님의 책을 통해 더 분명히 만날 수 있답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돌아가셨다는 생각은 안 들고 마치 살아서 제 곁에 함께 앉아 계신 듯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