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분도, 1985) , 머리말


 

  도토리 마을에 있는 도토리 예배당은 함석 지붕의 조그만 시골 예배당입니다.  그 예배당 문간방에 어느 아저씨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더부살이로 살고 있는 아저씨는 예배당 종을 치는 종지기였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수많은 아들딸들이 끌려가 목숨을 잃은 슬픈 나라, 6·25전쟁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형과 아우가 서로 적이 되어 총칼을 휘두르며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든 바보 같은 나라, 아직도 그 나라는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어른들은 늦가을 들판에 남아 있는 허수아비처럼 여기저기 서 있었습니다.  청승맞게 해해해해 웃으며 바람부는 대로 헐레헐레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오면 북쪽으로 기우뚱 흔들렸습니다.  '찰리 채풀린'이란 광대 아저씨는 "웃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바보같이 웃었지만, 한국우 허수아비은 발써 미쳐 버렸기 때문에 해해해해 웃고 있는 것입니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도 그 바보 허수아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저씨는 너무 잘못한 것이 많아서 그런지 수수깡처럼 언제나 힘이 없었습니다.  마흔 살이 훨씬 넘었는데도 장가도 못 가고, 왜 사는지도 모르게 밥 먹고 똥 누고 해해해해 웃으며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수수꽃다리가 피는 5월을 사랑했습니다.  감나무 있는 마을에 가을이 오면 자꾸만 푸른 하늘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구라는 땅 위에 평화와 자유가 오지 않아 아저씨는 역시 허수아비가 되어 해해해해 웃으며 바람부는 대로 춤을 추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저씨는 왜 째째하게 밤낮 생쥐하고 토끼하고 참새하고 개구리하고만 얘기하느냐 묻는다면,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단다."

                                                                 1985년 1월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