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말을 만드는 사람들


  모처럼 시내에 가려고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나갔더니 벌써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먼저 나와 떠들고 있었다. 그 때 윗골목에서 정용이네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온다.
  "어디 가시니껴?"
  누군가 그렇게 묻자
  "나, 트랄레스 풀러 가니더."
  한다.
  모여 있던 아주머니들이 왁자지껄 웃는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가까스로 알아차렸다. 정용이네 어머니가 말한 트랄레스는 바로 요새 유행하고 잇는 스트레스란 말이었다.
  시골 사람들, 특히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말을 제멋대로 만든다. 창동이네 할머니는 봉고차를 꼭 곰보차라고 했고 태진네 어머니는 경운기를 제궁기라고 한다. 슬립퍼를 딸딸이라 하고, 크림을 구라분, 승용차를 뺀질이라 한다. 한동안 비누를 가지고 사분이라고 해서 대체 '사분'이란 말이 한자말인지 뭔지 궁금했는데 프랑스에서 사퐁이라 한 것이 우리 나라에 오면서 사분이 되었단다. 타바코가 담방구였다가 담배로 변했듯이 우리 말로 되어 가는 과정이 희안하기도 한다.
  언젠가 시외버스정류소에서 어느 할머니가 차장한테 열심히 묻고 있었다.
  "이 빵스 어디 가는 빵스이껴?"
  그러자 차장이 한술 더 떠서
  "이 빵스 서울 가는 사리마다시더."
  했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이 있기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혼자 웃기도 한다.▣(《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2000. 11. 제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