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김경희 선생님께

후꾸자와 유키치 평전을 거의 읽었습니다. 때맞추어 좋은 책이 나와서 반가왔습니다. 백 년 전 세계 열강들이 한반도를 압박해 오던 것이 현재 상황과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모처럼 남북이 화해를 잘해 나가고 있는데 미국은 왜 찬물을 끼얹는지요?
  얼마 전에 세계 최고의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앞으로 백년 이백 년 뒤에 지구의 모든 자원이 바닥날 테니 우주로 나아가 어느 별인가 한두 개쯤 식민지로 삼아야 할 것이라 했지요. 그분은 물리학자니까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만 해결하려 하는군요.
  하기야 우리 인간도 물(物)로 된 것이니 몸뚱이가 살아남지 못하면 이(理)도 기(氣)도 유지 못 할 테니까요.
  그런데 호킹 박사의 말대로라면 백 년 전 후꾸자와의 모든 계획도, 지금 미국의 패권주의도 모두 정당화되어 버립니다. 어느 하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는 희생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양과 늑대가 있으면 늑대가 살아남는 게 냉정한 현실이지 않습니까.
  갑신정변과 개화파의 삼일천하도 이해하겠고 김옥균과 같은 젊은이들의 고뇌는 얼마나 컸겠습니까.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괴롭게 살다가 짧은 일생을 비참하게 죽어간 그들이 새삼 가슴아픕니다.
  후꾸자와는 치밀한 두뇌를 가진 인간이지만 그의 가슴 속에 진정한 삶의 가치를 왜 지니지 못했을까요. 아시아 여러 민중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일본국민에게 영원히 씻지 못할 무거운 죄짐을 넘겨 준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눈물을 흘려도 속상하게 힘들게 살아야겠습니다. 5월 14일 권정생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제 70호, 2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