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자유로운 꼴찌가 되기 위하여

   권정생   

송서방네 부부는 서로가 많이 다르다. 둘이 어디든 외출을 하게 되면 집을 나설 때는 같이 가는데 돌아올 때는 꼭 따로따로다. 함께 걸으면 어느새 송서방은 저만치 앞서가고, 부인은 이만치 뒤처져버린다. 송서방은 몇 번 뒤돌아보고 왜 빨리 안 걷느냐며 투덜대고, 부인은 부인대로 좀 천천히 걸으면 될 텐데 뭐가 그리도 급하길래 빨리 가는지 하며 섭섭한 것이다.
  부부는 한 몸이고 한 마음이라는데, 따져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 아니다. 따로따로 떨어진 몸이 어떻게 한 몸이 되고 한 마음이 된단 말인가.
  걸음이 빠른 송서방이 걸음이 느린 부인과 함께 발을 맞춰 걷는다는 게 어렵고 걸음이 느린 부인이 빨리 걷는 남편을 따라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부부지만 함께 걷는것은 어렵다.
  “발 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만약 지구 위의 60억 인구가 함께 발 맞춰 간다면 어찌 될까? 그건 로봇 같은 기계인간이 아닌 이상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 사람이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생김새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능력도 다 다르다.
  더욱이 건강하지 못한 장애인들의 경우, 함께 손잡고 발 맞추어 가자고 하면 어찌 될까? 언젠가부터 ‘왕따’라는 말이 새로 생겨 유행하고 있다.
  안골 김씨 아주머니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졌다. 정신지능이 모자라다 보니 집안 살림도 말이 아니다. 남편은 속아서 장가갔다고 구박을 하고, 이웃 아주머니들은 재미있게 구경하면서 동정은 하지만 함께 어울려주지는 않는다. 김씨 아주머니는 이렇게 왕따가 되어 살고 있었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정신지체인은 외로움도 고통도 모르는 걸까?
  그런데, 한번은 개울에 나갔다가 누군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그 김씨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쭈그리고 앉아서 몇 가지 옷을 빨면서 아주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참 그렇구나!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로울 수도 있지만 한편 혼자 있는 쪽이 더 편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왕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괜히 사랑한다고, 함께 있어준다고 애쓸 필요가 없겠구나….
  “거기 으슥한데 혼자 어떻게 사냐?”
  아랫마을 규창이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가끔 나를 보시고는 걱정하던 말이었다. 내가 여기산 밑으로 처음 이사와서 살 땐 전깃불도 없었다. 우리 집 옆에는 상여를 보관해두는 곳집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런 곳에 사는 것이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곳집엔 귀신이 있을 텐데….”
  “있어요.”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참말?”
  “참말요.”
  “봤니?”
  “보진 못했지만 소리가 나요.”
  “무슨 소리?”
  “며칠 전 비 오던 때, 날 부르기에 가봤더니 성냥하고 담배를 달라고 해요.”
  “그래서?”
  “그래서 성냥이랑 담배 갖다 줬지요.”
  “누가 받더냐?”
  “돌아가신 용동 어르신네도 계시고, 삼거리 어르신네, 탑골 어르신네, 많이 계셨어요.”
  “담배 피우는 것 봤나?”
  “예, 곳집 공기창으로 연기가 났어요.”
  동네 할머니들은 진짜 같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하다며 혼란스러워했다. 곳집에서 귀신들이 담배 피운다는 소문이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떠돌았다.
  우리 집 마당에는 고인돌이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도 하나 있다. 밤에 이 바위 위에 올라앉아 하늘을 보면 별빛이 한없이 반짝인다. 밝을 땐 보이지 않다가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별, 세상엔 불을밝히지 않아야만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내가 결핵이란 병을 앓아온 지 올해로 45년째다. 결핵은 호흡이 곤란하고 항상 열에 시달려야 한다. 게다가 따르는 통증도 만만치 않다.
  이제 나는, 건강한 것이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좀 가벼운 날과 더 힘든 날의 차이밖에 모른다. 이러니 나도 누구랑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쪽이 더 편하다. 몸도 덜 힘들고 마음도 그렇다. 오래오래 별렀다가 한 달에 한두 번 우체국과 책방 다녀오는 외엔 거의 집에만있다.
  요즘은 국가간에도 선진국이 있고 후진국이 있다. 중진국이란 말도 있지만 이런 선진· 후진은 어떤 기준을 두고 나누는지 잘 모르겠다. 개인끼리 이런 선진이나 후진을 나눈다면 나는 맨 꼴찌에 처진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구와 함께 발 맞추며 걷는다는 건 엄두도 못 내어, 벌써 전에 포기했다.
  꼴찌한테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자유라는 것이다. 아플 때 누가 보살펴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아플 때도 혼자 자유롭게 아픈 게 훨씬 편하다. 마음대로 아플 수 있는 자유, 사람들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 스스로 견디는 것도 병을 치유하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스무 살 대학생이 몸이 좀 피곤해서 병원에 갔더니 만성 간암이라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청년은 며칠간 슬픔에 잠겨 있다가 몸을 추슬렀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 마무리라도 잘하고 죽자고 다짐을 한 것이다.
  청년은 외딴 변두리 고아원으로 가서 할 수 있는 한 궂은일을 했다.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하면서 되도록 병을 잊으려고 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건강상태가 좋아지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했더니 뜻밖에도 간암이 말끔히 나아버린 것이다. 간암 진단을 받았을 때만큼 이번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체불만족」」 의 오토다케 청년은 오체가 멀쩡한 사람보다 더 씩씩하다. 체념할 것을 그만큼 빨리 체념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되도록 속히 포기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쉽게 하도록 만든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러니 절대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뒤처져 있다고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작은 꽃다지가 노랗게 피어 있는 곳에도 나비가 날아든다. 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드넓은 밤하늘을 바라보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작고 초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데 아직 돈 내라 소리 없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
  작은 것으로, 그리고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꼴찌는 그만큼 떳떳하다. (《작은이야기》이레, 2001. 5 · www.small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