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무너미 다녀와서 쓴 글  


지난 4월 17일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가보기는 8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것도 기차를 타고 가게 되어 혼자서 괜히 설레이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기차 타는 것도 18년 만입니다.
  처음에 무너미 글쓰기 모임에 노미화 선생이 전화로 꼭 와 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건성으로 "예, 예." 대답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준이네 아부지가 이오덕 선생님 병세가 많이 나빠졌다는 말에 서울 김경희 선생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둘이서 억지로 끌고 가더라도 병원에 모셔 가자고 한 거지요.
  기차로 무극까지는 순조롭게 잘 갔습니다. 그런데 무극역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어쨌든 무너미까지 혼자서 간다는 욕심으로 택시를 탔는데 여태까지 잘 온 길을 망쳐 놓은 것입니다. 노광훈 선생이 마중 나온 것도 모르고 아까운 택시비만 마 천이나 냈으니까요. 안동에서 제천까지 4천 5백원, 제천서 무극까지 1천 5백원 합쳐서 6천원인데 택시비는 거의 갑절이 되었으니까요. 돈도 아까왔지만 노 선생한테 많이 미안했습니다.
  어쨌든 글쓰기 선생님들 만나 좋았습니다.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노광훈 선생은 머리를 깎아 흡사 영화 '유리'에 나오는 박신양이 같았고, 황금성 선생은 앞으로 외무부 장관이 됐으면 싶었고, 황시백 선생은 가장 노릇 잘 하는지 좀 의심스러웠고, 주중식 선생은 더 젊어진 것 같고, 이상석 선생은 언제나 착한 아저씨 같고, 원종찬, 김신철 선생 두 사람에겐 겨레아동문학선집을 받고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주중식 각시가 운전하는 차를 여섯 사람이 타고 왔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려도 아무도 방귀 한 번 뀌지 않아 차 안 공기가 깨끗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닷새 동안 끙끙 앓고 나서 오늘 겨우 이 글을 냈습니다. 조용명 선생 몸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준이네 어머니께서 힘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4월 24일 권정생) ▣ (한국글쓰기연구회,『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제45호, 1999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