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가까운 정신

이 계 삼 

 

마음 속에 사랑이 샘솟지 않는 자의 삶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천천히 죽어 갈 뿐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권정생 선생이 여러 해 전에 발표한 산문들을 엮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년)은 권정생이라는 한 영혼이 걸어온 삶과 진실한 소망, 그리고 현재의 우리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매우 의미 있는 저작임에 틀림없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 저마다 잔잔한 감동과 또는 깊은 슬픔과 충격을 느꼈을 터이지만, 필자에게도 그 책을 다 읽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건강이 안 좋아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던 선생이, 경북 의성에서 유기농 운동을 하는 농민들이 모인 자리에 갔다가, 이튿날 울진의 어느 명승지에서 관광하던 때에 있었던 일이었다. 아름다운 숲과 계곡이 자아내는 풍광에 흠뻑 젖어 있던 선생은 대구 어디에서 수학 여행을 온 듯한 한 여학교의 학생들과 만나는데, 뜻밖에도 인솔 교사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여학생들을 체벌하는 장면과 만나게 된다. 보다 못한 선생이 “이런 곳에 와서까지 아이들을 벌줘서야 되겠느냐”고 그 교사에게 항의를 하지만 정작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선생에게 대꾸하더라는 이야기다.
  그 책의 전체 비중에서 따지자면 그저 평범한 하나의 에피소드일 따름인 그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병약한 노인이 굴욕적인 체벌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고서, 연민과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혈기 방장한 젊은이에게 항의하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이러한 항의를 그저 차림새가 초라한 시골 노인네가 쓸데없이 간섭하는 것으로밖에 알아듣지 못했을 그 교사의 무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면의 느낌을 계속 곱씹다가, 문득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한창 자라나는 여학생들이 수학 여행이라는 일탈과 자유의 공간에서마저 체벌에 시달리는 장면을 목격하였다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분노와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우리의 감각에 잠깐 동안 파문을 일으키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우리도 학교 다닐 적엔 다 저랬어”, “그 교사한테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겠지.”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그 상황을 비껴 가기가 쉬웠을 것이다.

사랑 없는 세계와 떠돌이 삶

  어느 역사학자는 우리 근대사를 가리켜, 황금을 찾아 고향을 떠난 유랑민의 시대로 파악하기도 하였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사람들은 여러 측면에서 자신의 일상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절대 다수가 너무 가난했으며, 소수의 힘있는 나라들이 힘없는 나라의 모든 것을 유린하였다. 힘있는 나라들이 먼저 이룩한 근대의 일상은 단박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아서, 우리는 오랜 시절 가꾸어 온 일상을 볼품없고 초라하게 여기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상을 떠나 유랑민이 되었다.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들은 고향과 농토를 떠나 전쟁터로, 도시로, 공장으로 떠났고(또는 떠나야만 했고), 또 일부는 감옥과 유형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구한말,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살아간 궤적을 그리고 있는데, 맨 처음이 가을걷이를 끝낸 추석 마당에서 평사리 주민들이 어울려 축제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사람들은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경작할 땅을 찾기 위해, 또는 독립 운동을 위해 마을을 떠나고,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들이 벌인 축제는 지난 시기 그들의 일상과 결별하는 마지막 제의가 된 셈이다.
  그리고 100여 년의 역사가 흐른 현재 시점에서, 지난 시대의 일상과 결별할 때에 그린 삶의 이상이 어느 정도 성취되어 있는지를 따지는 일은 손쉬운 예단을 허락치 않는 매우 복잡한 문제지만, 현재 우리의 일상이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직관으로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전통 사회와 결별하고 식민지 시대와 전쟁과 분단, 뒤이어 산업화와 군사 독재의 격랑을 헤쳐 오는 동안 지난 시기의 일상에 내재해 있던 종교성과 사랑의 원리를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른바 ‘본래의 삶’에서 크게 벗어난 채 정신은 여전히 떠돌이로 살아가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사랑 없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도덕은 힘이 크고 적은 데 달려 있을 뿐 정의의 원칙은 언제나 배척당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용기가 없으며,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도 없는 것이다.

권정생의 작품 세계

  권정생 선생이 지난 30여 년간 극심한 육신의 고통과 싸우면서 이루어 온 작품 세계는 온전히 이 ‘본래의 삶’을 구현하는 데 바쳐졌다. 대다수 예술가들이 자기 표현의 욕구나 자기 만족적 동기에서 창작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철저히 윤리와 도덕의 이상에 지배되는 듯하다. 예컨대, 현실 문제를 다룬 몇 작품들에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분노나 슬픔이 작품 전면에 직접 드러나면서 문학 형상을 억압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균형의 어긋남도 실은 ‘권정생답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그의 창작 행위가 강한 도덕적 열정에서 이끌려 나오기 때문이다. 또 풍부한 자연 묘사와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체가 짙은 서정을 빚어 내어 거의 시에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은데도, 이런 특성이 아름다움 자체의 구현으로 기우는 수는 거의 없고, 언제나 사람살이의 근원 문제, 곧 윤리와 도덕의 이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1969년 〈강아지똥〉을 발표한 뒤부터 현재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은 단편 동화 110편, 장편 동화 8편 , 장편 소설 2권, 이야기 시집 1권, 산문집 2권 등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그 모든 작품이 ‘인간 본래의 존재 방식’과 ‘이 존재 방식과 현실의 거리’를 다룬 것이다. 이는 그의 체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지난 시기 우리 근현대사가 개인들에게 강요한 수난을 조금도 비껴 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겪으며 역사의 피해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육신을 괴롭히는 병마에서 한 순간도 놓여 난 적이 없다. 그런 가운데서 그가 일군 정신 세계는, 섬세한 모성적 감수성에 바탕한 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치 철저한 구도자다운 삶의 태도로 요약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시대와 ‘본래의 삶’이란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힘없고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깊은 애정

  권정생의 작품들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공이 대부분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똥, 지렁이, 구렁이 들, 정상인한테서 멸시받고 그 때문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러한 소재의 특성은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이 지적했듯, “동화라면 으레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나오고, 그 아이들이 꿈꾸는 무지개가 펼쳐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일반의 인식에 가열한 충격을 던졌고, 작가 권정생의 개성을 결정하는 특질이 되었다. 이처럼 작품의 주인공으로 정상인의 일상 세계에서 밀려난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가 부르주아적인 환상으로 가득 찬 기존 동화들에 대한 반정립을 의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살면서 체득한 정신의 기질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 교분이 있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힘없고 약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그의 깊은 애정을 증언하고 있는데, 이오덕 선생의 아래 진술은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예화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번은 찾아갔더니 교회를 둘러쌌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시멘트 벽돌담이 높이 둘러쳐 있고 커다란 철대문이 잠겨 있어 몹시 서운했다. 교회 앞마당에 서 있던 몇 그루 커다란 참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교회에서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그리한 것이란다. 권 선생이 나무를 베지 않도록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한다. 마지막에 어린 대추나무 하나가 남아 있는 것마저 톱으로 베고 있는 것을, 권 선생이 그 대추나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톱질을 그만두더라는 것이다. 그 대추나무를 살펴보니 밑둥치에 정말 톱으로 베다가 만 흔적이 보였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종로서적, 299쪽) 

그러나 또 한편 권정생은 힘없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통해서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힘없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살아가자면, 아무래도 정상인의 동정과 연민에 기대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들 자신 속에 존재를 구원할 궁극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역설이다.
  이를테면, 단편 동화 〈중달이 아저씨네〉에 등장하는 중달이 아저씨네 식구는 정상인의 눈으로 보자면 모두 바보다. 그들은 밭 두어 뙈기를 부치며 힘들게 살아가는데, 같이 일하던 과부 아주머니가 밭 한 뙈기만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자 서슴없이 주어 버리고는 매우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지아이 수남이가 먹을 것을 찾아 동네를 떠돌다가 중달이 아저씨네로 찾아온다.

  “맛있는 밥 좀 주세요.” 거지아이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방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내다봤습니다. 사립문 앞에 조그만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얼래? 예쁘기도 해라!” 아주머니는 거지아이가 금방 맘에 들어 버렸습니다.……”어머니, 얘가 참 예쁘지요?” “그렇구나. 꼭 우리 손자같이 귀엽다.” 늙은 어머니도 홈빡홈빡 웃으면서 좋아했습니다. (《바닷가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31쪽)

  그들은 옷과 신발이 해어지고 가뜩이나 양식이 부족해서 밥 한 그릇도 갈라 먹어야 할 형편인데도 서로 먹으라고 양보해 가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날마다 웃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수남이가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하고 중달이 아저씨는 남은 밭 한 뙈기를 팔아 수술비를 치른다. 수남이가 퇴원한 날, 밭을 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도 없이 식구들은 수남이를 껴안고 어르며 마냥 즐거워만 하고, 이웃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혀를 찬다.
  이 작품에서 권정생은 바보와 정상인에 대한 통념을 거꾸로 뒤집어 보인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과연 누가 바보인가?’ 하고 묻는다. 그는 이 속악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남에게 주고도 기꺼울 수 있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인이 보기에는 ‘낮은 곳’에 있지만, 모두 지순한 성정을 지니고 있으며 무욕과 평화의 이상적인 정신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즉, 권정생에게 힘없고 약한 존재들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인간이 그들의 정신 세계를 닮아 낮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삶의 궁극적인 지표와도 같은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러한 등장 인물들에게서 이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말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극한의 가난과 어머니를 잃은 절망감에 석 달 동안 유랑과 구걸로 생활한 그는 뒤이어 시작하게 된 동화 창작의 성과를 모아 첫 작품집 《강아지똥》을 발표하는데, 그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하기야, 세상 사람 치고 거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있다면 “나 여기 있소.” 하고 한 번 나서 보실까요? 좀 편하게 앉아서 얻어먹는 상동거지는 있을지 몰라도 역시 거지는 거지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문 밖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은 분명히 자기는 가장 불쌍한 거지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입고 살던 부자는, 오만스럽게도 자신이 거지임을 깨달을 줄 몰랐기 때문에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운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을 주시고, 밝고 고운 시와 노래를 주신 주인이 엄연히 계신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겠다 외면해 버리고 제 잘난 척 떵떵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강아지똥》, 세종문화사, 2쪽)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생명붙이들이 신 앞에서는 신이 주는 것을 얻어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일 뿐이며, 이러한 자기 부정과 겸손으로써 거듭난 영혼만이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자기 희생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영화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러시아 출신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현대 세계의 비극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희생이라는 인류의 유구한 정신적 전통이 고갈되어 버린 데서 비롯한다고 말하고 있다. 굳이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 세계가 갈수록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변해 가는 까닭은 조건 없이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이른바 ‘사랑의 원리’에 기초한 인간 행동의 여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임을 파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근대적 자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개인’의 가치는 모든 현대 예술의 창작과 수용을 기율하는 중심 원리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권정생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 ‘자기 희생’은 우리 근대 문학사를 놓고 볼 때에도 매우 보기 드문 것이다.
  흥미롭게도, 권정생의 작품 가운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이 ‘자기 희생’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강아지똥〉의 강아지똥과 〈무명 저고리와 엄마〉의 어머니, 《몽실 언니》의 몽실이가 그러하고, 100명이 넘는 평범한 민초들의 삶을 형상화한 장편 소설 《한티재 하늘》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혈육이나 시대의 고통 앞에서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고 또 그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낮은 곳’에 있는 인물들이 자기 희생으로써 불행한 운명을 끝내 이겨 내고야 마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권정생은 작가로서 특별한 역량을 보여 주고 있다.
  자기 희생이란 권정생에게 거의 타고난 감각이면서, 창작 활동에서 궁극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다. 그에게 자기 희생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그가 이런 가치를 붙잡게 된 것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유년 시절부터 보아 온 어머니의 존재에서 크게 힘입은 것 같다.
  그는 어느 글에서 “자장가 대신 어머니의 슬픈 타령을 들으면서 자라났고, 슬픈 타령과 함께 항상 젖어 있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나의 성격 형성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지 못한다.”고 술회했다. 그 글을 보면, 아버지는 노름판에 자주 끼이고 생활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던 듯한데, 대신 그의 어머니가 7남매를 먹여 살리려고 자신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급기야는 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는 그를 간호하다 지쳐 병이 나 끝내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어머니를 회상하며 쓴 장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 나타난 어머니는 ‘바람 머리, 이앓이를 하면서도 머릿수건 두르고 아픈 것을 애써 참’으면서도 ‘찔름 들어간 못생긴 참외를 꼭지만 남기고 알뜰히 잡수시면서 예쁘고 맛난 건 아들을 주’는 분이다. 그리고 ‘쉬지 않고 일만 하며 배고프고 늘 춥게 사셨지만, 감자떡을 이웃과 나눠 잡수시며 걱정들을 나누’고, ‘예쁜 무지개 뜨면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분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권정생이 작품에서 그린 자기 희생의 삶은 강한 모성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모성성, 〈녹색평론〉의 발행인이기도 한 평론가 김종철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 있는 생명을 돌보고 보살피면서, 어느 하나도 상처 받지 않게 마음 쓰며, 상처 받은 것은 깊이 위무(慰撫)하고 품속으로 거두어들이려고 하는” 태도는 실상 종교적인 가치 이전에 생명 그 자체의 자연스런 충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희생은 사람의 노력이나 종교적 열정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충동인 것이다.
  가령 단편 동화 〈용구 삼촌〉에서 소를 몰고 나간 용구 삼촌이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소만 돌아오자, 다른 식구들은 대체로 침착한데 할머니만이 안절부절 못 하고 울먹거린다. 여기서도 자기 희생은 자연스런 충동으로서,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바보 아들에게도 한결같은 내리사랑으로 나타난다. 더욱 극단의 보기로는, 《한티재 하늘》에서 분들네가 문둥병에 걸린 둘째 아들 재득이를 위해서, 죽은 남편의 무덤을 파헤쳐 뇌수를 긁어 약을 달여 먹이는 데서 보이듯, 자식에 대한 섬뜩한 집착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모성성에서 비롯한 자기 희생은 고난으로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를 버텨 온 근본 동력으로 제시되고 있다. 〈무명 저고리와 엄마〉와 《몽실 언니》는 ‘본래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식민지 체험과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고, 상처 받은 존재들을 위해 자기를 온전히 희생하는 모성의 위대함을 그린 작품들이다.

펑! 펑! 대포 소리에 엄마는 자지러질 듯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꼭 무서운 악마들이 어린 삼남매를 잡아 삼키려고 소리 소리 지르며 뒤따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건 새끼들이 들어 있는 까치 둥지를 향해, 못된 아이들이 팔매질을 하면, 엄마 까치가 안절부절 짖어 대는 모습과 꼭 같았습니다./ 엄마는 잘 몰랐지만, 엄마 얼굴의 주름살이 마구 뒤얽힌 거미줄 같았습니다. 퍼런 힘줄이 돋은 팔뚝이 막대기처럼 여위었습니다. (《무명 저고리와 엄마》, 도서출판 다리,  60쪽)

‘그래, 난 앞으로도 이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야. 영득이랑 영순이랑 그리고 난남이를 보살펴야 해.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갈 거야. 꼭 찾아갈 거야.’……/ 몽실은 이빨이 부딪치도록 몸을 떨었다.(《몽실 언니》, 창작과비평사, 247쪽)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 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 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 온 몽실이였다./ 아버지가 그를 버리고, 어머니가 버리고, 이웃들이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칼과 창이 가엾은 몽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몽실 언니》, 258쪽)

그는 이들 작품말고도 수많은 작품에서 ‘소‘와 ‘예수’와 ‘어머니’를 통해 자기 희생과 사랑의 원리가 지배하는 삶의 형상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자기 희생의 형상들에서 우리는 근대 문학 일반에 나타난 강렬한 자기 주장과는 전혀 다른 바탕에서 성립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것은 근대적 의미의 리얼리티가 아닌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움직이는 어떤 총체적인 감정이다.
그는 이 사랑의 원리가 새롭게 획득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며 다만 우리가 잃어 버린 것임을, 그러나 불과 두어 세대 전 사람들의 삶 속에도 풍부하게 깃들여 있던 생명 있는 존재들의 자연스러운 충동임을 말하고 있다.

‘본래의 삶’이 존재하는 방식인 ‘자연’


  권정생의 작품에는 현실 문제를 직접 다룬 동화들이 많으며, 그 가운데에는 작품을 창작할 당시 정치적 금기로 되어 있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의지를 담은 작품들도 있다. 1980년대 초 엄혹한 상황에서 《몽실 언니》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언니 같은 인민군을 등장시켰고, 그를 통해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형제’임을 말하게 하였다. 또 《초가집이 있던 마을》에서는 주인공 복식이 징집 영장을 받은 뒤 ‘월북한 아버지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고 괴로워하다 결국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마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분단 체제에 대한 불복종과 저항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권정생이 현실 문제를 바라보거나 소망스런 질서를 구상하는 정신의 표준은 ‘자연’이다. 권정생에게 ‘자연’이란, 식민지 체험, 전쟁, 분단, 산업화와 군사 독재 등 사람이 지은 일로써 본래의 삶이 굴절되기 이전 시간대에 사람의 도리와 사람됨의 가치가 살아 있던 삶의 모습이다. 또, 이는 종교성과 사랑의 원리가 지배한 가난하고 소박한 농경 공동체의 모습이면서 한 세기만 거슬러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우리 전통 사회의 이미지기도 하다. 이는 권정생 자신이 직접 겪었거나 구전으로써 간접 체험한 세계이면서, 요컨대 권정생의 의식 세계 속에서 근원적인 조화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본래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는 ‘자연’을 통해 우리의 현재가 여기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으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피폐함은 이 과거의 표준에 비추어짐으로써 비극의 실감이 더해진다.
  한 시골 마을 어린이들이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겪으면서 자라나는 모습을 그린 소년 소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의 첫머리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아름다운 시골 마을과 초등학교의 평화로운 풍경, 마을 어린이들의 순박한 동심이 어우러진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유종은 먼저 4학년 교실로 달려갔다./ “싱야, 인제 집에 간데이.”/ 유준이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놀지 말고 쌔기 가야 된대이.”/ “응.”/ “중들 거랑물에 수제비 뜨만 안 된대이.”/ “응.”/ “씨름하고 놀지 마래이.”/ “보리깜비기 따먹지 마래이.”/ “응.”/ “군딩이 똑바로 쫄곧게 뛰어가아래이.”/ “응.”/ “펏떡 가아라.”/ 유종은 가까스로 풀려나자 측백나무 울타리 옆으로 빠져나가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종아아, 같이 가자.”/ 뒤에서 문식이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며 따라가고 있었다.(《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출판사, 19-20쪽)

우화자 선생님은 동그란 사과처럼 빨간 얼굴이다. 목소리가 남자처럼 굵었다. 키는 작고 몸집은 뚱뚱했다./……그러나, 1학년 선생님으로는 어머니처럼 좋기만 했다./ “선생님요, 이번 시간 노래 가르쳐 주이소.”/ 1학년은 음악 시간이 가장 좋다./ “그럼, 노래 조금 배운 다음 공부하자.”/ “예에!”/ 꼬마들은 일제히 소리쳐 대답했다./ 노래는 ‘배워야 산다’가 한창 불려졌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합창을 했다.// 밭가는 아버지도/ 베짜는 어머니도/ 일할 때 일하고/ 배울 때 배우세/ 아는 것이 힘임/ 배워야 산다……(《초가집이 있던 마을》, 26-27쪽)

뒤이어 한국 전쟁의 발발과 혹독한 피난 생활, 그리고 인민군과 국군이 한 번씩 엇갈려 마을에 진주한 뒤 생겨난 상호 보복과 월북, 가족들의 이별 등으로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인용문에서처럼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 아이들이 송아지를 쫓고 꼴을 베는 평화로운 장면들은 다음에 이어지는 전쟁과 참혹한 살육, 마을 공동체의 붕괴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전쟁 이전과 이후를 견줌으로써 전쟁이 극적으로 뒤바꿔 버린 삶의 변화는 그 비극의 실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권정생이 여러 작품들에서 그리고 있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는 대체로 ①도시화·산업화 이전의 전통 농경 사회, ②지식인 지배층이 아닌, 서로 나누고 섬기는 전통을 가진 가난한 피지배층 민중, ③문자 이전의 구비 문화와 소박한 종교 생활, ④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최근 작품 《한티재 하늘》에 총체로 구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구한말인 1895년 을미년에서 식민지 시대인 1936년까지 경북 안동, 봉화, 청송, 영양 등지에서 살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인물 열전 형식으로 서술한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 드러난 특징은, 이 긴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주인공이나 주된 갈등 상황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작가는 100명이 넘는 등장 인물들에게 골고루 관심을 쏟으며 그들이 저마다 정해진 시간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장황한 수식이나 화려하게 꾸민 표현을 자제하는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써 덤덤하게 그렸다. 한두 인물의 개성이 크게 부각되기보다는 마치 유장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흐름 속에 작은 세부로서 원경으로 비춰진다.
  권정생이 《한티재 하늘》에서 그린 전통 사회는 사람의 도리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타고난 기질과 욕망에 충실하지만 사람의 도리만큼은 결코 거스르지 않으며, 잠깐 등장하는 주변 인물까지도 예사롭지 않은 사람다운 기품을 갖춘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가령, 향교골에 사는 자부래미 박서방이라는 인물은 작품 전반부에 잠깐 나오는데, 그는 1895년 을미년 반란을 일으킨 의병(빤란구이)들이 찾아오자 밥을 대접하고 양식을 나눠 준다. 그리고 한겨울에도 홑적삼을 입고 있는 그들에게 무명 핫옷을 꺼내다 입힌다. 박서방은, 빤란구이들이 혹시 관에서 추궁하면 강제로 도둑질해 갔다고 하라고 하자 “아이시더, 내 목숨 살아볼라고 당신네들 이름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니더.” 하고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다. 그는 관군에게 붙잡혀 공개 처형되어 아무도 치우지 않아 썩어 가는 빤란구이들의 시신을 밤에 몰래 치워 무덤을 만들어 주고 기일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소백산 골짜기 순흥 가래실에 살던 정원네는 남편 건재가 화적패들에게 협력했다는 누명을 쓰고 토벌대에게 붙잡혀 갔다가 장독(杖毒)으로 죽고 집마저 토벌대 손에 불타 버린 뒤, 식솔을 이끌고 친정인 안동 삼밭골로 삼백 리 길을 걸어 가다가 강나루의 나루치(나루지기) 노인을 만나는데, 이 노인은 남루한 행색의 정원네 식구들에게도 ‘마님’, ‘애기씨’ 하고 부르며 예의를 다한다.

강변 모래 밭을 몇 걸음 걸어오는데 갑자기 나루치 노인이 부른다./ “마님요! 이것 아직 새 신이시더. 쫌 크제만 신고 가시이소.”/ 노인이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들고 가까이로 다가왔다. 눈꺼풀이 실쭉 움직여지며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앴다. 그러고 보니 정원이 신고 있는 미투리가 다 해어져 한 쪽 발 뒷갱이끈 하나가 떨어져 터덜터덜 끌리고 있었다.……/ “먼 길을 걸어오신 것     은데 신발이 성해야 앞으로 더 가실 게 아니시이껴?”/ 정원이 등뒤에서 노인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시상이 여간 힘들어야제요. 아직도 여기저기 난리는 끈치잖고 토벌대들이 화적패를 찾아 댕긴다드구만요.”……/ “마님     은 사람들이 며칠에 한 번씩은 강을 건네가시니더.”/ “……”/ “자, 이 신을 가져 가시이소.”/ 노인은 짚신 두 짝을 두 손으로 공손히 내미는 것이었다.(《한티재 하늘》1, 지식산업사, 33-34쪽)

나루치 노인은 토벌대에게 남편을 잃고 쫓겨가는 정원네들의 행색을 알아보고 자신이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 준 것이었다. 이와 같이 권정생이 그리는 ‘과거’는 강가의 나루치 노인이나 자부래미 박서방 같은 민초들도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행동하며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아는 높은 정신의 기품을 지니고 살았던 시대다.
  또한 《한티재 하늘》에서 이 ‘자연’은 ‘가난하고 소박한 농경 공동체’로 그려지고 있다. 권정생은 온 사회가 근대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시기부터 여러 산문과 작품에서 농촌의 중요성과 농업의 정신적 가치를 역설해 왔는데, 이 《한티재 하늘》 곳곳에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사랑의 원리 속에서 조화롭게 살았던 농경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분이는 저녁마다 이웃 아낙네들을 마당이 비좁도록 불러 모아 삼을 삼았다. 광솔가지로 불을 밝히고 감자를 삶아 내놓고 열무김치를 시원하게 담가 내놓는다. 삼을 삼으며 이야기하고 노래부르고 웃고 떠든다. 열손가리 한 가리 삼실을 잇자면 밤이 이슥도록 무릎이 닳아 해지고 딱지가 앉도록 비벼대야 한다.…… 광주리에는 노란 삼실이 반짝반짝 윤기나게 쌓이고 하늘에 은하수는 뽀이얗게 이슬을 내려준다. 입담 좋은 용이네가 옛날 이야기를 새끼 타래 풀 듯이 줄줄 풀어 놓는다. 옥단춘이도 하고 장화 홍련이도 한다.…… 목소리가 고운 앵두나무집 새댁이 쌍가락지 노래를 부른다. ……웃고 떠들다가 배가 고파지면 감자를 삶아 먹고 강냉이도 쪄 먹는다. 더러는 수박밭에서, 모둠보리를 갖다주고 서너 덩이 수박을 사다가 샘물에 담가 뒀다가 건져다 쪼개 먹는다. 영분이네 앞마당은 여름밤 아낙들의 세상이다. 삼베적삼 소매자락을 팔꿈치까지 걷어올리고 장다리를 훌렁훌렁 들어내 놓아도 흉이 안 되는 별난 곳이다. 삼삼기에는 얌전하게 감출 수도 없다. 훨훨 타오르는 광솔불에 아낙들의 허여멀건 다리가 어둠 속에 봉실봉실 떠 있다.(《한티재 하늘》2, 지식산업사, 274-276쪽)

《한티재 하늘》은 평범한 민초들이 운명과 수탈에 맞서 얼마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싸우며 살아 왔는지를 기록한 대하 서사시면서, 또 한편 ‘사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본래의 삶’의 양식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는 숱한 인물들의 생애가 그려지는데, 특히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석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도망친 여종 달옥이를 사랑하게 되어 마을에서 도망치면서 고통스런 일생을 살아가지만 그 운명에 순종한다. 그는 애써 일구어 살던 집이 불타 거지 신세가 되었다가 다시 마을 머슴이 되어 고생스럽게 살아가고 딸을 병으로 잃는 등 거듭되는 불행에도 이를 모두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로 여긴다. 그는 가슴 속의 고통과 눈물을 삼키면서 언제나 웃으며 자식과 아내에게 정성을 다한다.

여름밤 하루 동안 고달픈 일을 마치고 나면 귀리짚으로 엮은 거적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고 식구들이 이리저리 눕는다. 하늘에는 별이 은구슬을 뿌린 듯이 반짝거린다. 이석은 누워서 순태, 순원이한테 얘기를 들려준다. 함께 거적 구석쪽에 앉아 있는 달옥이도 이석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옛날에 짚신쟁이 할바이하고 수꾸떡장사 할머이가 살았그덩. 할바이는 짚신을 삼아 팔고 할마이는 수꾸떡 맨들어 팔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살았제. 할방네한테는 아들이 일곱이 있었는데 모두 모두 사이좋게 살았제. 그런데 어는게 여름에 억수비가 쏟아져가주 온 시상이 물바다가 돼뿌랬그덩. 할방네 식구들은 큰물에 막카 둥둥 떠내려가 가주 산지사방 흩어졌제.……
  아들 일곱은 똥바가지가 되어 안죽도 강물을 퍼내고 할바이하고 할마이는 그냥 동쪽으로 서쪽으로 헤어져 산단다. 그래서 하늘에 옥황상제님이 하도 불쌍해 까막까치한테 칠석날 밤에 다리를 놓아 주게 했제. 요새도 칠석날만 되마 까막까치들이 강물에 다리를 놓아 주고 할바이하고 할마이는 일 년 동안 부지런히 짚신 삼고 수꾸떡 맨들어 기다리다가 그날 하리만 만낸단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모두가 하늘을 본다. 똥바가지가 된 아들들이 북두칠성 별이 되어 있고 짚신쟁이 할바이도 수꾸떡장사 할마이도 별이 되어 은하수 강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 순태와 순원이는 해마다 여름이면 아배가 들려주는 짚신쟁이 할바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지만 또 듣고 들어도 재미있고 슬프다.……그렇게 이석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행복했다.(《한티재 하늘》2, 지식산업사, 131~132쪽)

 모든 진실한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석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위의 내용은 독자들을 깊은 평화와 아름다움의 세계에 젖어들게 한다.
〈강아지똥〉에서 《한티재 하늘》에 이르기까지 권정생이 이루어 온 문학 세계는 거룩한 것에 대한 감각과 사랑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세계는 모든 진정한 ▣예술의 핵심에는 오직 정신의 고통만이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 주며, 그리하여 진정한 예술은 ‘삶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끝없는 의문에 자신의 전부를 길어 올려 빚어 내는 최대한의 대답임을 가르쳐 준다. 그를 통해 우리는 일체의 엘리트 의식과 허위의 도덕률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우리 시대의 삶의 위기와 마주 섰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의 삶과 문학 세계는 진리 가까운 곳에 서기 위해 분투해 온 한 인간의 정신이 이룩한 가장 진실한 기록이라 부르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다.▣  (이 글은《동화읽는어른》2001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녹색평론〉 2001년 1·2월호에 “진리에 다가가는 영혼―권정생의 문학 세계”란 제목으로 실린 글을 글쓴이의 허락을 얻어 싣습니다. 글쓴이가 새로 원고를 꼼꼼히 살피고 다듬어 주었습니다. 글쓴이 이계삼 님은 김포시에 있는 통진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합니다. 권정생의 작품을 보면서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언제고 꼭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