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 주인공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권정생 글/박경진 그림/우리교육

이 희 정

 

어린이들이 예전보다 조숙하다고들 한다. 아마도 그전보다 보는 것, 듣는 것, 누리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 우리 어린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이 컴퓨터다. 어린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한 가지 원인은 잘 짜여진 가상 현실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이다. 그곳에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자신을 끊임없이 억압하던 어른들도 따라 들어오지 못한다. 통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내 맘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것을 일찍 깨닫기도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모르고 방종을 먼저 배워 버린다. 아이들은 현실에 몸담아 살아 보지 않았기에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뭐든지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만 되진 않는다. 현대의 개인주의 생활 방식과 억압적인 교육 현실이 우리 아이들을 게임으로 몰아간다. 부모들은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그릇된 삶의 태도에 길들여질까 걱정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보는 것이 텔레비전이다. 아이들의 눈을 붙들어 두는 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새로운 인기 연예인들이다. 사람도 상품으로 만드는 장사꾼들의 속셈도 모른 채 거짓된 삶에 열광하는 우리네 아이들이다.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아이들은 넋을 놓고 빠져든다.
   요즘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빼앗긴 것이 있다. 동물, 곤충, 꽃, 나무, 맑은 시냇물과 같은 자연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누리는 삶이다. 어른들이 만든 문명은 자연을 망가뜨리고 해결하지도 못할 문제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자연과 함께 망가져 가는 우리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이런 혼란을 벗어나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이 동화다. 짧은 동화가 그런 노릇을 할까,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까, 생각지 말자. 좋은 동화 작가는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내는 사람이다. 어린이들이 재미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자연스럽게 듣고 보고 겪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권정생의 유년 동화집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가 새로 나왔다. 이 책에는 자연 환경을 다룬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개미가 장날 시장에서 약장수 구경을 하는 이야기(〈어느 제비꽃 피는 장날〉), 감을 따먹으려고 혼자서 애쓰는 아기 돼지 이야기(〈물렁감〉), 강 건너 마을에 불이 나 어려워지자 동물들이 서로 도왔다는 〈강 건너 마을 이야기〉, 농촌에서 혼자 빈 집을 지키다 죽어 하늘의 별이 된 〈살구나무 집 할머니〉, 어려운 이웃을 돕다 예수님을 만난 할머니 이야기(〈오두막 할머니〉). 이렇게 여섯 편이 실려 있다. 모두, 착하게 살며 힘든 이들을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돕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권정생의 이전 작품에 견주어 대체로 밝고 즐겁다. 유년기 어린이들을 생각해서 생동감 있는 동물 캐릭터를 등장시켰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표현을 잘 구사했다. 주인공으로는 너구리, 개미, 돼지, 다람쥐, 딱따구리, 토끼, 까치, 새앙쥐, 비둘기, 수달 들이 나온다.
   이제 우리 어린이들도 귀여운 아기 너구리를 친구로 갖게 되었다. 이름은 ‘또야’고 나이는 예닐곱 살 정도다. 또야 너구리는 궁뎅이 기운 바지를 입고 유치원에 간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운 궁뎅이를 자랑스럽게 보여 준다. 왜냐 하면 엄마가 “이렇게 입으면 산에 나무랑 시냇물에 고기랑 아주아주 예쁘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와 어린이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린이 스스로 동심의 힘으로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 준다. 그리고 엄마 말을 믿고 따르며 즐거워하는 또야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어른의 잔소리나 훈계처럼 들리지 않는다.
   유년 동화에는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이 많다.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등장 인물이 동물일지라도 어린이는 그 동물의 개성을 느끼고 어린이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또야 너구리는 너구리라기보다 오히려 순수한 동심을 가진 착한 아이 모습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또야의 귀여운 이미지가 오래 남아서, 어디선가 동동 뛰어와서 궁뎅이를 쑤욱 내밀며 말을 걸어 올 것 같다. 짧은 동화 속 인물이 이렇게 잘 살아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또야는 엄마가 기운 바지를 처음 보고 ‘거지 같다’며 입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운다. 요즘 아이들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야는 기운 옷을 입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엄마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당돌하게 대들어도 보지만 끝내 엄마 말을 따르기로 한다. 어린이는 세상 일과 이치를 다 알아서 사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세상을 잘 몰라도 어른들을 믿고 산다. 또야는 싫지만 마지 못해 기운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서 은행나무를 만나 말을 건다.

“은행나무야, 넌 올해는 더 예쁜 잎이 가득 필 거야. 왜냐 하면, 내가 이렇게 기운 바지를 입었거든.”
아기 너구리 또야는 엄마가 기워 준 반바지 엉덩이를 허리를 구부리며 보여 줬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셨단다. 궁뎅이 기운 바지 입으면 산에 들에 나무들이 더 예쁘게 꽃이 핀다고.”(16쪽)

기운 바지를 입기 싫은 또야의 욕구와 엄마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또야가 기운 바지를 입었을 때 나타날 일, 즉 행동의 결과가 강조되었다. 이 또래 어린이들은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그것 때문에 행동하진 않는다. 어린이가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자신의 삶이 아닐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뜻보다는 엄마 말을 따라 기운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가서 이번에는 시냇물을 만난다.

그리고는 동동 뛰어갔어요. 가다가 시냇물 다리를 건넜어요. 또야는 또 멈춰 섰어요.
   “시냇물아, 이것 봐. 내가 이렇게 기운 바지를 입었으니 고기들이 아주 많이 살 거야. 우리 엄마가 그러셨단다. 알았지!”(18쪽)

이번에는 ‘동동’ 뛰어간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경쾌해졌다. 대화에서 대뜸 ‘기운 바지’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면서 행동과 말의 호흡이 빨라졌다. “알았지!” 하고 다짐하는 말투에 확신이 차 있다. 나무와 대화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이제 또야는 엄마가 시켜서 마지못해 기운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을 돕는 일이 아주 즐거워졌고, 착한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살다가 종종 겪는 일인데, 아침에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학교에 보내고 나면 어른은 종일 마음이 언짢다. 하지만 아이들은 문 밖을 나서면서 금방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논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오래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다. 무엇에도 오래 붙들어 둘 수 없는 것이 아이들 마음이다. 또야의 기쁨은 유치원 친구들에게 퍼지고, 모두들 이제부터는 기운 옷을 입겠다고 떠든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나무들에게, 물고기들에게, 저 멀리 하늘에까지 전달되고, 온 세상이 기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은 주로 대화체로 쓰였다. 대화에서 등장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묘사나 설명보다 대화로써 이야기를 전개시켜 입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또야가 뛰어가는데 ‘동동거리며’가 아니고 ‘동동’ 뛰어간다. 가볍게 뜀질하는 모습이 경쾌한 리듬에 실려 전해 온다. ‘동동’ 뛰는 발걸음은 아이다운 성격과 즐겁고 귀여운 이미지를 생동감 있게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기운 바지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가르침을 함축하여 보여 주는 것이 궁뎅이 기운 바지다. 기운 바지에는 버릴 것을 고쳐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엄마의 지혜로운 손길이 담겨 있다. 안 입겠다고 고집 피우는 아이를 안아 달래며,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 내는 엄마의 정성이 덧대어 있다.
   이 작품집에는 분명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로 또야 너구리말고〈물렁감〉에 나오는 돼지가 있다. 아기 돼지인 통통이가 감나무 밑에서 ‘올짝올짝’ 뜀질을 하고 있다. 계속 뜀질을 하는 까닭은 감나무에 달린 빨간 물렁감을 따 먹기 위해서다. 아기 돼지가 앞발을 번쩍 들고 뛸 때마다 입은 쫙 벌어지고 배때기는 쑥 나오고 배꼽이 다 드러나는 것이 익살스럽다. 먹을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아기 돼지가 보는 이를 웃게 만든다. 그 때 아기 사슴 콩이가 ‘빠각빠각’ 걸어 와서 도와 주고 간다. ‘올짝올짝’ 하는 표현도 재미있다. 아기 돼지라 뚱뚱한 것이 아니라 통통하다. 아기 돼지는 통통한데다가 다리까지 짧다. 이런 아기 돼지가 뜀질을 한다고 하는데 ‘팔짝팔짝’ 뛰지를 못해 ‘올짝올짝’거린다. 인물들의 행동을 의태어를 사용하여 풍부하게 표현해 냈다. 또 소리내어 읽을 때 소리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15분 세대’라고 한다.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영상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린이들은 만화나 그림 또는 영상 이미지에 길들여 있어, 읽어 가면서 책 속의 인물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나타나기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이런 어린이들도 ‘통통이’를 만난다면 즐겁고 유쾌할 것이다. 아쉽다면 더 풍부하게 이야기를 끌어가지 못한 점이다.
〈제비꽃 피는 어느 장날〉은 시골 장날의 흥겨운 분위기가 잘 살아난 작품이다. 봄날 개미 형제는 햇빛이 따뜻해서 ‘곰실곰실’ 기어나왔다가 약장수 구경을 한다. 개미 찔룩이가 키 큰 아저씨 머리 꼭대기에서 사람들 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작가는 사람의 잣대와 편견이 없는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약장수가 약을 팔려고 사람들을 모으고, 흉내 잘 내는 원숭이와 튼튼하게 생긴 차력사가 나와 갖가지 묘기를 보여 준다. 예쁜 아가씨가 흥겨운 노래도 부른다.
   책을 읽은 아들 녀석이 책을 덮자마자 “엄마 정말 만병 통치약이 있어요?” 하고 물어 왔다. 책 속에서 약장수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픈 곳이면 다 낫는다는 만병 통치약”을 팔고 떠났기 때문이다. 순진하게, 5학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고 혼란스러운 게다. 돈벌이를 위해 함부로 거짓을 지어 내는 우리 어른들 모습이 아이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이 동화는 키 작은 어린이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앞을 잘 볼 수 없어 답답할 때, 키 큰 어른 머리 위에서 신나게 보고 난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개미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북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어가는데 “조그만 여섯 개 다리가 물레방아 돌아가는 것만큼 바쁘게 움직인다.” “형 개미가 콧등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말하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나, 그 키 큰 아저씨 머리 꼭대기에서 응아해 버렸다.”고 하니 문득 개미의 응아는 얼마만할까 궁금해진다. 이렇게 상상을 자극하는 표현과 비유가 재미있다. 유년의 어린이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감각적인 표현과 익살로 무거운 주제를 흥겹게 끌어갔다.

세상에 목숨이 있는 것들은 모두 이름이 있다. 작가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 써 주었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부르니까 막연한 객체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존재로 성큼 다가선다. 그의 작품에서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산벚나무, 조밥꽃나무, 참나무, 보리둑나무고, 물고기도 피라미, 납주래기다.
   장날 장을 보기 위해 길을 가는 사람들도 이름이 있다. 꼭 어디 사는 누구라고 한다. ‘탑마을 순동이네 어머니’, ‘감나무 집 할머니’, ‘뱅대기 마을 현갑이 아저씨’, ‘쑥고개 배꼽 시계 할아버지.’ 오래 된 시골 마을 이름이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구경 나온 개미조차도 ‘신작로 미루나무 밑에 사는’ 개미다. 이런 것들이 글 맛을 더한다.
   동물과 곤충들도 이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만 같다. ‘또야’, ‘뽕이’, ‘코야’는 너구리 이름이다. ‘찔룩이’는 개미, ‘통통이’는 아기 돼지, 아기 사슴 이름은 ‘콩이’다. 권정생은 늘 자연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제각각 이름을 불러 준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 맺고자 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을 쌓으려면, 서로 대화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문제와 기쁨을 알아 가고 어렵고 힘들 때 기꺼이 돕는 사람이 친구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통해 동물, 식물, 곤충은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 창작 동화 속에 어린이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친구가 얼마나 될까. 지난 해에 우리 회에서 ‘동화 주인공 얼굴 그리기 공모전’을 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그려 보낸 인물에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억배 글·그림, 재미마주)에 나온 수탉과 강아지똥, 몽실이가 들어 있었다. 수탉은 늙은 할아버지 닭이고, 몽실이도 고학년들이나 알 만한 인물이다. 강아지똥은 그림책으로도 나왔지만 움직임이 없는 까닭에 유년기 어린이에게 매력 있는 인물은 아니다. 책을 보기 시작하는 유년 아이들이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사랑을 줄 만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또야 너구리나 아기 돼지 통통이 같이 생동감 있게 그려 낸 동물 친구들은 이야기가 끝나도 어린이들의 상상 속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자연의 친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2001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희정님은 우리 회 이사이며 어린이문학연구분과에서 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