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뽑은 권정생 단편 동화 10편(1)

어린이문학연구 분과
 

1. 권정생 단편 동화 10편을 뽑기까지
  권정생 하면 《몽실 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같은 대표 소년소설이나 <강아지똥> 외에 단편 동화 몇 편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다. 사실 권정생이 우리 창작 동화에서 이루어 낸 성과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에 견준다면 작품들은 폭넓게 알려져 읽히지 않는 편이다. 그 가운데 그의 뛰어난 단편 동화들은 동화집에 묻혀 더욱 그렇다.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에서는 2001년 한 학기 동안 권정생 단편 동화를 읽고 그 가운데 대표 동화로 손꼽을 만한 동화를 고르는 일을 했다. 그런 중에 새로운 감동으로 만난 권정생 동화를 회원들에게도 알려 그 감동을 함께 하고 싶다.
  권정생은 1974년 첫 동화집 《강아지똥》(세종문화사)을 펴낸 이후로 2000년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우리교육)까지 단편 동화집을 모두 열두 권 냈다. 《강아지똥》과 《까치 울던 날》 《할매하고 손잡고》는 절판되어 살 수가 없어 우리는 제본을 떠 읽었다. 그러나 이들 동화집에 실린 동화 대부분은 그 후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편집되어 낱권으로 나왔으니 구해 읽기에 어렵지 않다. 다만 동화집이 처음 출판된 연도를 가름하여 그 곳에 실린 동화들의 발표 연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당시 작가의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점 따위를 생각하여 처음 출판된 책을 읽었다. 또 《까치 울던 날》(제오문화사, 1978), 《무명 저고리와 엄마》(다리, 1994), 《깜둥바가지 아줌마》(우리교육, 1998), 《먹구렁이 기차》(우리교육, 1999)에 실린 동화들은 다른 동화집에 실린 동화와 겹치기 때문에 읽지 않았다. 또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햇빛, 1985)에 실린 <종지기 아저씨>는 연작 동화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분도, 1985)와, <삼거리 마을 이야기>는 장편 동화 《팔푼돌이네 삼형제》(현암사, 1991)와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편 동화집은 아니지만 함께 읽었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는 작가의 해학과 풍자가 뛰어나며 작가의식과 삶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작가를 이해하고 그 후 작품들을 읽는 데 도움이 컸다.
  이번 학기에 우리가 읽은 단편 동화는 여덟 권 동화집1)에 실린 동화로 모두 105편이다. 우리는 권정생 단편 동화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느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동화, 오랫동안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동화 10편을 가려내었다. 우리가 어떻게 10편을 뽑았는지 끝까지 열띤 토론을 한 동화는 어떤 것들이었는지 간단히 소개하고 10편 동화에 대한 '느낌글'을 실으려 한다. 이런 우리의 활동이 권정생 단편 동화는 물론 우리 창작 단편 동화 한 편 한 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널리 퍼지길 바란다.
  우리는 동화집 한 권을 읽을 때마다 그 곳에 실려 있는 단편 동화를 세로줄에 모두 적고 가로줄에 분과원 이름을 넣은 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토론을 한 다음 권정생 대표 단편 동화에 넣을 만하다고 생각한 동화에 마음대로 동그라미를 쳤다. 그런 다음 동그라미를 가장 많이 받은 순서대로 10편을 골랐다. 그렇게 동그라미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처음 10편에 오른 동화가 <강아지똥>, <무명 저고리와 엄마>,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빼떼기>, <할매하고 손잡고>, <해룡이>, <진구네가 겪었던 그해 여름 이야기>, <똬리골댁 할머니>, <황소 아저씨>이다. 그러나 10편을 모두 놓고 볼 때 한두 표 차이로 빠진 동화를 아쉬워하며 다시 조정하자는 의견이 나와 10편을 한 편씩 짚어가며 토론을 하였다.
  제일 먼저 <할매하고 손잡고>는 <무명 저고리와 엄마>와 비슷한 감상을 주며, <무명 저고리와 엄마>에 견주어 구성이 늘어지고 풀어져 있어 굳이 두 작품을 넣기보다는 구성이 더욱 치밀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무명 저고리와 엄마> 하나만 넣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진구네가 겪었던 그해 여름 이야기>에서 진구네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하고 아버지는 결핵 요양원에 있는데, 살던 방에서마저 쫓겨난 진구네가 시유지에 지은 무허가 집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된 이야기다. 그런데 그렇게 된 까닭이 바로 그 해 1979년, 미국 대통령이 우리 나라에 왔기 때문이다. 감동과 울분을 느끼지만 그보다 주제 의식을 주고자 하는 쪽으로 더 기울어진 느낌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주제나 구성 따위가 권정생의 다른 작품들과 견주어 독특한 특징이 없다는 의견이다.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에는 동화 6편이 실려 있고 그 가운데에서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는 그 날 모임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10편에 들어갔다. 그러나 권정생 동화 전체 105편을 두고 볼 때 대표작에 넣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물질 문명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 의식과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지만 선생님과 너구리들이 그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교훈이 앞선다는 의견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순진하고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이 그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의견으로 갈라졌다.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는 용칠이 아저씨의 가슴아픈 사연을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구성이 짜임새 있고 짧은 글 속에 긴장과 슬픔과 재치가 있으며 상징성이 뛰어나다고 의견을 모았다.
  결국 처음 정해진 10편에서 다른 동화들은 별다른 의견 없이 뜻을 모으고 <할매하고 손잡고>, <진구네가 겪은 그해 여름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그리고 의견을 모으지 못한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가 다시 후보로 오르고 <다람쥐 동산>, <오소리네 집 꽃밭>, <하느님의 눈물>, <짱구네 고추밭 소동>, <앵두가 빨갛게 익을 때>, <빨간 책가방>,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들도 거론되었다. 이들 동화는 10편 안에 든 동화와 한두 표 차이로 떨어진 동화로 우리는 저마다 왜 이들 동화가 좋은가 한치 물러섬이 없이 오랫동안 토론을 해야 했다.
  <다람쥐 동산>은 저학년 동화가 부족했던 때에 분단이라는 주제를 군더더기 없이 잘 형상화한 동화라는 점, <오소리네 집 꽃밭>은 그림책으로 출판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의 철학이 재미있고 쉽게 그려진 점, <하느님의 눈물>은 작가의 철학을 너무 관념으로 그려 내어 어렵지 않느냐는 의문 속에서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의 바탕이 되는 작품이라는 점, <짱구네 고추밭 소동>은 날아다니는 고추의 이미지가 잘 살아 있는 점, <앵두가 빨갛게 익을 때>와 <빨간 책가방>은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점,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는 상징성이 강해 어렵게도 느껴지지만 똘배가 시궁창에 오는 과정과 시궁창 묘사가 사실처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점 따위가 짚어졌다.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끝에 <다람쥐 동산>과 <오소리네 집 꽃밭>을 뽑았다. 그러나 남은 한 편을 두고는 의견을 좁히지 못해 투표를 한 끝에 <하느님의 눈물>이 <빨간 책가방>과 한 표 차이로 뽑히게 되었다. 권정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절실히 담아 낸 작품이라는 의견에 더 뜻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뽑은 권정생 단편 동화 10편이 추려졌다.

  
<강아지똥>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먹구렁이 기차》 우리교육 1999
  
<다람쥐 동산> 《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햇빛 1985
  
<똬리골댁 할머니>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무명 저고리와 엄마>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빼떼기> 《바닷가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1988
  
<오소리네 집 꽃밭>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하느님의 눈물> 《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해룡이>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황소 아저씨> 《짱구네 고추밭 소동》 웅진 1985

엄밀히 말해 이번 동화 선정은 특별한 기준을 내세워 뽑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를 대라면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화 한 편 한 편을 놓고 때로는 격렬하게 또 때로는 진한 감동을 함께 나누며 토론한 다음 점수를 매겼다. 객관으로 이론의 근거를 먼저 정하고 읽은 것이 아닐지라도,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글 속에 우리의 고민과 감동의 흔적이 더욱 진하게 남아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처음부터 형식을 갖춘 소개글이 아니라 우리의 감동을 담아 짧은 느낌글을 쓰기로 했다. 이 느낌은 곧 우리에게 좋은 동화란 이런 거구나 하는 귀한 울림인 것이다. 이 울림을 우리 회원들과 함께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정리 : 이기영)


2. 분과원들이 쓴 느낌글

가슴에 심은 소망, 별
<강아지똥>,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그림책보다 20년 먼저 엮어진 작품집 《강아지똥》 속에 있는 〈강아지똥〉을 읽었다. 다른 작품들과 사이좋게 어울려서 조금은 무뚝뚝한 듯 그렇게 색깔 화려하지 않게 있는 강아지똥이 오히려 새롭다.
  어느 새 '강아지똥' 하면 정승각 선생님이 그려 낸 가엽지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똥이 얼른 떠오른다. 그래서 원작을 읽는 내내 그 얼굴이 좇아온다. 나쁘진 않다. 그림책이 만들어 낸 아주 큰 업적이다.
  강아지똥을 그림책으로 본 아이들이 '똥같이 더럽고 하찮은 것이라도 이렇게 귀하게 쓰이는구나', 그리고 '너무 심심하고 할 일 없어 슬프던 강아지똥이 예쁜 민들레를 피우는 데 도움이 되어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잘 됐다.' 하며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 된다. 옆에 있는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원본을 읽으며 내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강아지똥이 마음에 심은 '별'이다. 권정생의 동화에 자주 나오는 '별'의 의미를 좀더 가까이 이해하려고 마음을 모아 보지만 쉽지 않다. 〈강아지똥〉 끝 부분에서 강아지똥은 남(민들레)을 위해 무엇을 하게 되는 것과는 좀 다른 기쁨, 즉 자기가 그렇게도 그리고 원하던 것이 될 수 있다는 귀한 기쁨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가슴에 심은 별' 때문이다.
  강아지똥은 세상에 태어나 불행한 일만 겪다가 결국 자신을 '아무 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라 생각하며 하나님조차 원망한다. 밤이 되어 바라본 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강아지똥은 별을 그리워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강아지똥이 혼자 누워 쳐다본 하늘, 그 속에 있는 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모든 희망을 다 놓고 절망하는 순간에 바라본 하늘과 거기에 있는 반짝이는 별이 그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은 작가 권정생에게, 강아지똥에게, 또 나에게 무엇인가? 더러운 똥이라도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 만큼 고우니?" / "반짝반짝 빛이 나니?" /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93∼94쪽)

이것은 민들레와 나누는 이야기 중에서 강아지똥이 한 말만 옮겨 놓은 것이다. 강아지똥 귀에는 그리워하던 별이 되는 것, 별처럼 반짝일 수 있다는 말만 들려 오고, 그것을 또 민들레에게 확인한다.
  작가가 어떤 절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강아지똥이 되어 절망하며 울었고 그 속에서, 그 끝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별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이것저것 짐작만 해 본다. 그러다 한 작품이 읽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슬쩍 위로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아지똥이 제 마음 안에 심은 별을 피우려 온 힘을 다할 때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강아지똥이 자기 안에서 새롭게 품은 소망과 세상에서 이미 포기했던 소망(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이 맞물려 피어나는 순간 나는 온몸이 추웠다.
  마음 안에다 지닌 소망에 열중하는 것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된다거나, 좋은 향기를 낼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은데…….(글 : 김미자)


산 너머엔 누가 살지?
<다람쥐 동산>, 《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숨을 헉헉대며 "엄마, 엄마, 북한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한다. 난데없이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고, 얘가 학교에서 뭘 배웠길래 이런 얘길 하나 싶던 차에 녀석이 먼저 대답까지 해 버린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야. 되게 길지? 근데 나 그거 다 외웠다? 나 북한 국기도 알아." 말하는 표정을 보니 그걸 안 게 굉장히 신기하고, 외운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가만 듣자 하니 학교 재량 시간에 통일 교육을 한 번씩 하는 모양이었고, 꼬치꼬치 캐묻다 보니 '통일 책'이라는 교재도 한 권 있다는 것이다.
  "또 뭘 배웠는데?"
  "몰라."
  "잘 생각해 봐."
  "몰라, 왜 자꾸 물어?"
  "하나만 더 생각해 봐."
  "으응∼, 북한은 차가 많이 없고, 우리는 차가 되게 많아."
  "또?"
  "놀이 공원 같은 것도 우리가 많고."
  그 날, 1학년에게도 통일 교육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나는 순간적으로 요샌 어떤 내용을 가르치나 바짝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몰라" 소리만 해대는 녀석에게 더 이상 탐문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만 유난히 남북한 경제력을 비교하며 우리 쪽이 여러 면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다람쥐 동산〉에 나오는 똘똘이와 쫑쫑이도 우리 애만 할까? 저 고개 너머에 놀러 가고 싶은 똘똘이는 그런 말을 했다가 엄마에게 꾸지람만 듣는다.
  "얼굴이 시뻘겋고 이마에 뿔이 돋은 도깨비들이 우글우글 살고 있단다."(30쪽)
  고개 너머 사는 쫑쫑이도 어른들한테서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산다고 들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똘똘이와 쫑쫑이는 달빛이 환히 비추는 어느 날 밤 고갯길에서 마주친다. 가슴이 팔딱팔딱 뛰고, 질겁을 해서 둘이는 한참 동안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물어 본다.
  "산 너머엔 도깨비가 없니?"(34쪽)
  둘이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곧 어른들의 거짓말에 똑같이 분노한다. 그리고 똘똘이와 종쫑이는 서로 손을 꼭 잡는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대학생·목사·작가 들이 북한에 들어갔다. 방북 이유나 그 정당성 여부는 제쳐놓고라도 그들이 울타리 구멍을 조금씩 뚫어 놓은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굴 없이 애쓰고 고초를 겪은 수많은 똘똘이, 쫑쫑이의 친구들이 있었다. 2000년 6월에는 남북의 정상이 만났고, 2001년 6월 15일에는 그 1주년 기념으로 남·북·해외의 230여 개 정당·단체 대표 700여 명이 금강산 호텔 앞마당에서 대토론회를 열었다. 똘똘이와 쫑쫑이가 뚫어 놓은 울타리 구멍이 조금씩 커지고 있긴 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린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바닷길 금을 좀 넘었다고 공포탄을 쏘고 있다. 뿔 달린 도깨비는 아닐지라도 속이 시커먼 악마들이라고, 절대 속으면 안 된다고 눈에 불을 켠 자들이 수없이 많다. 겨우 겨우 뚫어 놓은 울타리 구멍을 다시 막아 버리려는 세력의 힘이 너무나도 크다. 통일로 가는 길에 그 첫걸음은 북한을 바로 알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북한에 뿔 달린 도깨비가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그 대신 우월하다는 자만심과 교묘한 계산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요즘 똘똘이 엄마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저 고개 너머에는 배고파 굶주리는 아이들, 거지들로 득실거린단다. 울타리 문을 열어 주면 우리만 손해야!"(글 : 구현진)

두고 온 반쪽에 대한 그리움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햇빛출판사, 1985

나는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란 동화가 좋다.
달맞이산이 있고 방천둑 길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아래로 개울물이 흐르고, 하늘 향해 길게 뻗은 미루나무가 서 있고 미루나무 꼭대기 한 뼘쯤 밖으로 하얀 반달이 떠 있는 용뿔 동네의 모습이 좋다.
  용뿔 동네의 모습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3년 정도 살았던 시골 마을을 떠오르게 한다. 그 곳의 방천둑은 할미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언덕에 덩그러니 천막같이 어설프게 지어진 사무소가 하나 있었고 토목공사 일을 하던 아버지는 매일 자전거로 그 곳에 출근하셨다. 나는 자주 자전거 뒤에 타고 사무실까지 따라가 종일토록 혼자 놀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고등어한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듣고 울먹이는 용칠이 아버지처럼 험한 세상 살아가기엔 마음이 약한 분이셨다. 그리고 아버지도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었다. 결혼도 하셨고 자식도 한 명 있었다고 한다. 난리판에 젊은 놈 혼자 살려고 늙으신 부모님을 두고 온 용칠이 아버지보다 더 그리운 사람이 북에 있었다. 아버지도 술을 무척 좋아하셨다. 술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았고, 술 때문에 건강도 일찍 잃으셨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는 날엔 영락없이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비틀거리는 아버지 손엔 내게 줄 사탕이 들려 있었다. 용칠이 아버지가 고등어에게 입을 쪽 맞추듯이 내게 입을 맞추시던 생각이 난다. 풍기는 술 냄새에 잠이 깨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남 좋은 일만 하는 속없는 양반이라며, 처자식 고생시키는 든든치 못한 남편이라며 못마땅해하셨다. 아버지도 자꾸 슬프셨나 보다.
  "그래, 불효자야. 그래서 자꾸 슬픈 거야. 슬퍼지면 모든 일에 철저하지 못하거든. 중심이 없어지고 술 안 마셔도 항시 갈팡질팡하는 거야."(153쪽)
  하는 용칠이 아버지를 보니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래서 용칠이 아버지가 좋다.
  아버지도 시원한 일보다는 답답한 일만 많이 겪고 돌아가셨다. 남쪽에서 다시 가정을 꾸리고 다시 친구도 사귀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불편한 몸의 고통을 감당하다가 환갑도 못 되어서 돌아가셨다.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이 고향을 더 그립게 했는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깨가 더욱 처지셨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에 대한 한.
  지울 수 없는 그리움.
  고등어가 배를 쪽 갈라 속을 다 빼내듯이, 잘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에 대한 한도, 지울 수 없는 그리움도 다 빼내 버리고 쌀자루를 등때기에서 내렸을 때처럼 가벼워져서 날아갈 수 있다면 아저씨는 달맞이산 너머에 있는 고향으로 갔을까? 하지만 아저씨는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래, 나도 답답하다. 답답하다. 답답하다……."(153쪽)
  하고 말하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아버지가 가슴에 묻어 두었어야 했을 그리움의 무게가 내 가슴을 누른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마나 마음속이 무거웠으면 배를 갈라 창자, 쓸개, 콩팥, 심장까지 싹 다 빼 버린 고등어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것일까.
고등어가 날아간 곳은 달맞이산 너머다. 달의 반쪽은 용뿔 마을 미루나무 위에 있다. 달맞이산 너머에 가면 달의 나머지 반쪽이 있을까?(글 : 윤경희)


마음으로 읽은 동화
<똬리골댁 할머니>,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똬리골댁 할머니>를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며 울컥 올라오는 게 있었다. 아, 이렇게도 동화가 되는구나. 망설임 없이 '우리가 뽑은 권정생 단편 동화 10편'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찡한 울림을 시로 써 보겠노라고 먼저 대들었다. 똬리골댁 할머니의 한을 풀어 보겠노라고…….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똬리골댁 할머니의 한이라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럴수록 줄거리만 앙상하게 떠오른다. '똬리골댁 할머니 일생이 기막히다. 가엽다. 얼마나 한이 많을까? 전쟁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먼저 생각해 놓고 책을 읽으니 울컥 올라오는 감동보다 관념이 앞선다. 변명이 길어졌다. 좁은 편견(관념)과 어설픈 동정심으로 똬리골댁 할머니 한을 풀어 보겠노라고 대든 것을 반성하면서 이제 <똬리골댁 할머니>를 마음으로 만나 보고 싶다.
  똬리골댁 할머니를 생각하면 움직이는 영상처럼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가 평생 입어 보지 못할 줄 알았던 모본단 저고리에 '유똥 치마'를 입고 좋아서 춤추는 모습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무더운 여름 한낮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도 더운 줄을 몰랐을까. 좋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똬리골댁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꼭 아이들 같다. 그냥 입어 보고 싶던 옷을 잠깐 입어 본 것뿐인데 그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에 할머니는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가 떨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똬리골댁 할머니에게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 동심이 그대로 살아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피난 가지 않은 죄, 피난 간 빈 집에 들어가 치마저고리 잠깐 입어 본 죄로 총 든 청년들이 할머니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댄 것이다. 전쟁은 그랬다. 6·25 전쟁은 그랬다. 우리 민족 전쟁 6·25에는 '우리'가 없다. 어제는 인민군 편, 오늘은 국군 편. '우리'가 힘을 모아 싸워야 할 적군도 없고 아군도 없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똬리골댁 할머니는 죄를 씌우는 마을 사람들이 무섭다. 전쟁이 무섭다. 똬리골댁 할머니는 전쟁 때문에 거지 생활조차 목숨 부지 못 하고 공동묘지에서 쓸쓸히 죽었다.
  그런데 왜 하필 거지 할머니일까? 권정생 선생님은 전쟁으로 아픔을 겪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 거지 할머니 이야기를 썼을까? 작가의 관심은 전쟁이 휩쓸고 간 불쌍한 똬리골댁 할머니에게만 생각이 멈춰 있지 않았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들을, 똬리골댁 할머니를 비참하게 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땅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 가는 불쌍한 거지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거적을 깔고 누워서도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는 아름답고 귀한 영혼을 가진 똬리골댁 할머니 이야기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똬리골댁 할머니>를 읽은 셈이다.(글 : 이기영)


엄마가 겪은 민족의 역사
<무명 저고리와 엄마>, 《강아지 똥》, 세종문화사, 1974

권정생의 글에는 늘 가난한 이들의 슬픔이 배어 나옵니다. 아니 슬픔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그가 쓴 글이 있습니다.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됩니다. 하기야 세상 사람치고 거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있다면 '나 여기 있소.' 하고 한 번 나서 보실까요? 아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좀 편하게 앉아서 얻어먹는 상등 거지는 있을지라도 역시 거지는 거지이기 때문입니다."('작가의 말'에서)

그의 말처럼 어찌 거지가 그뿐이었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거지였지요. 작가 권정생은 비렁뱅이처럼 살았던 민족의 삶을 온몸으로 아파하는 작가입니다.
1969년 처음으로 그가 내보인 동화 〈강아지똥〉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생명으로 태어난 것에 절망하는 똥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이겨 내고 마침내 자신을 산산히 부수어 민들레의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1973년 세 번째로 발표한 작품 〈무명 저고리와 엄마〉는 고난에 찬 우리 근현대사를 몸으로 살아 낸 '엄마'에 관한 증언입니다. 어깨판과 팔꿈치를 깁고 때묻고 누더기가 된 엄마의 무명 저고리는 바로 우리의 역사입니다. 엄마는 그 누더기를 입고 늘 배고픈 세월을 살았습니다. 좁쌀죽, 송피죽, 수수풀때기로 허기를 견디었습니다. 남의 나라 종살이와 전쟁통에 쫓기면서 막대기처럼 야윈 팔뚝으로 남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던 모습, 거미줄처럼 뒤얽힌 엄마의 주름진 얼굴,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입니다.
  권정생은 이런 엄마의 모습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가들이 태어날 때마다 아가들의 웃음과 울음을 받아 키워 내던 무명 저고리가 헌 누더기가 되어 청솔 가지 위에 얹혀지기까지 어머니의 아픈 과거를 들려 줍니다. 엄마가 사랑한 것은 아빠와 일곱 아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에 찬 역사 속으로 아가들을 하나씩 떠나보내야 했던 엄마의 상처가 무명 저고리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제의 압제와 수탈로 가난했던 때 독립을 위해 아빠와 큰아들 복돌이를 떠나보내면서도 맘껏 울지도 못했던 엄마입니다. 삼일 만세 때 목숨을 잃은 아빠와, 남의 나라 전쟁에 억지로 끌려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목숨을 잃는 차돌이와, 월남에 용병으로 막내를 보내던 때의 통곡이 배여 있습니다. 또한 소식조차 알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습니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북간도로 떠난 큰아들 복돌이. 북으로 끌려간 채 생사를 모르는 큰딸 큰분이. 동생을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 양공주가 되어 엄마 곁을 떠난 둘째 딸 또분이. 일본으로 유학 가서 소식이 없는 삼돌이가 있습니다.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의 아가들입니다.
  엄마가 이 비극을 견디며 살 수 있던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먼저 떠나 버린 아빠와 복돌이, 차돌이, 삼돌이, 큰분이에게 사랑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자식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막내 무돌이가 월남에서 전사한 소식을 듣고 쓰러졌다가도 남은 아들 막돌이를 위해 버티어 일어나서 막돌이의 한 쪽 다리 노릇을 해 줘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넘어가지 않는 미음을 억지로 삼키며 버티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힘겨웠던 삶을 마치고 일곱 아가들을 저고리 품에 안고는 영원한 고향으로 가 버립니다.
  엄마가 김을 매던 목화밭을 이제 혼자 남은 막돌이가 가꾸어 갑니다. 메마른 목화밭 청솔가지 위에 펼쳐 놓은 한 많은 엄마의 무명 저고리 위로 천둥 번개가 치고 비구름이 몰아쳤습니다. 이어 바람이 멎으며 무명 저고리를 사이에 두고 무지개가 걸립니다. 막돌이는 무명 저고리 속에 피어나는 아가들의 얼굴과 그것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얼굴을 봅니다.
  희생의 역사를 살아 온 엄마의 아픔이 이제 남은 막돌이의 가슴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이제 남겨진 막돌이가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 줍니다. 민족 분단의 고통을 가슴에 두르고 사는 이 땅의 산하에서 철조망을 걷어 내고 잃었던 형제 자매를 찾는 일, 그들과 한가족을 이루며 살고자 했던 엄마의 한을 풀어 내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봅니다.

한 쪽 다리로 반 조각 땅을 딛고 선 막돌이가, 무지개의 한 끝을 잡고 목화밭 위에 사뿐히 펼쳐 놓았습니다. 엄마 얼굴이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70쪽)

이후 권정생의 작품은 우리 수난의 역사 속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증언하는 일을 계속 해 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평화 통일을 바라고,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는 엄마로 말입니다.(글 : 이희정)


역사의 그림자에 갇혀 버린 우리의 이웃들
<무명 저고리와 엄마>, 《강아지 똥》, 세종문화사, 1974

중학교 때 '난중일기'라는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순신은 장군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업적을 남기고 영예롭게 죽었지만, 쏟아지는 화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이름도 자취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은 어찌 되었는가. 왜 이순신의 지혜는 남고 병사들의 희생은 빛을 발하지 못하는가.
  그 당시 <무명 저고리와 엄마>라는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붙잡지 않았을까 싶다.
  <무명 저고리와 엄마>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리 없이, 그러나 가슴에는 터질 듯한 한을 품고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가 있다. 격동의 현대사가 한반도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견디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백성들의 모습이 있다.
  복돌이네 아버지는 일제에 저항하다 총칼에 쓰러지고 복돌이는 독립군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차돌이는 일제 징용에 끌려가 차가운 전사 통지로 돌아오고, 까막눈이라는 설움을 떨쳐버리겠다고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삼돌이는 소식이 없다.
  삼일 만세 운동 때 총칼에 쓰러져 간 사람이 어찌 복돌이 아버지뿐이겠는가. 강제 징용을 당하여 끝내 주검조차 돌아오지 못한 자가 어찌 차돌이뿐이겠는가. 집에 있는 놋수저마저 모두 가져가 버리고 벼가마니를 공출해 가고 청년은 징용에 끌려가고 처녀는 정신대에 끌려가고 일본이 앗아가 버린 빈터에서 우리의 어머니는 분을 삭이며 살아야 했다. 복돌이 아버지를 비롯한 복돌이, 차돌이, 삼돌이는 식민지 시대의 짓밟힌 백성들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전쟁이 터지고 막돌이는 절름발이가 되고 또분이는 양공주가 되어 새까만 아이를 낳고 사라진다. 큰분이가 끌려간 북녘 땅은 철조망이 쳐지고 베트남 전쟁에 간 무돌이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어머니는 간신히 한을 삼켜 버리지만 막돌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또분이가 낳은 새까만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냉랭한 시선을 받으며 어떻게 살아갔을까. 혹시 외국으로 입양되어 지금도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아 헤매지는 않을까. 북쪽으로 끌려간 큰분이는 작년에 있었던 이산 가족 만남 때 고향에 남겨 둔 가족을 찾지는 않았을까.
나라가 어려울 때 백성들이 그 대가를 치렀듯이 식민지 시대,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뒤틀린 역사에는 모진 삶을 살아야 했던 수없이 많은 우리의 어머니와 복돌이네 가족들이 있다.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크고 작은 역사는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버린 우리의 이웃들이 일구어 가는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글 : 홍수정)


1)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짱구네 고추밭 소동》,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바닷가 아이들》, 《할매하고 손잡고》, 《하느님의 눈물》,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