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뽑은 권정생 단편 동화 10편(2)

어린이문학연구 분과   

 

2. 분과원들이 쓴 느낌글


나도 ‘빼딱빼딱’ 걸으며  
〈빼떼기〉, 《바닷가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1988

산다는 것, 참 힘이 듭니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나오고 그것마저 넘으면 또 다른 힘겨운 고개가 기다리고……. 그래도 우리는 빼딱빼딱 걸어갑니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그렇게 걸어갑니다. 우리가 꼭 빼떼기 같습니다. 빼떼기가 꼭 우리 같습니다. 빼떼기는 온몸이 불에 데어 빼딱빼딱 걷는 병아리 이름입니다. 이른 봄날 따뜻한 아궁이에 뛰어들었다가 온몸이 불에 데어 겨우겨우 살아난 병아리입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 남은 삶이 구구절절이 힘겹습니다. 입이 뭉그러져 모이를 제대로 쪼아먹을 수도 없고 엄마 닭이나 형제 닭들이 감싸 주지도 않습니다. 감싸 주기는커녕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쫓아냅니다. 여름에는 털이 없어 온몸이 따갑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발가락도 다 뭉그러져 횃대 위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 엄마와 형제 닭들의 똥이 그대로 빼떼기의 몸 위에 떨어집니다. 그래도 빼떼기는 빼딱빼딱 살아갑니다. 순진이네 식구들이 잘 보살펴 주기도 했지만 빼떼기 스스로 아주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빼떼기의 힘겨운 삶을 보면 누구나 그 애처로운 목숨에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슴 조이며 빼떼기의 운명을 우리의 운명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 빼떼기를 돌보는 순진이네 식구들 모습을 보면 가난하지만 자연과 하나 되어 착하게 산 우리 부모 세대의 모습을 정겹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병아리를 많이 길러 본 늙으신 내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이야기가 한 마디 끝날 때마다 후렴구처럼 끼여들었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또 이야기가 눈에 보이듯이 잘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순진이네가 가축을 기르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면 ‘옛날에는 다들 병아리를 길렀는데 그 집 꽤나 가난했네.’ 했습니다. 또 삼대를 엮어 벽을 둘러치고 수수깡으로 지붕을 덮어 닭장을 만들었다고 하면 ‘다 그렇게 지었지.’ 했습니다. 암탉 ‘턱주배기’의 턱 밑에 ‘꿀밤 깍정이 같은 혹털’이 나 있다고 하면 ‘그런 닭이 있어.’ 했고 암탉이 알을 낳으라고 처마 밑에 둥우리를 엮어 달았다고 하면 ‘옛날에는 마구간에다 달아 줬는데 그 집이 소가 없으니 처마 밑에 달지.’ 했습니다. 그 밖에도 병아리들이 솔방울처럼 굴러다니듯 뛰어다녔다고 하면 ‘이뻐. 병아리 까 놓으면.’ 했고 순진이네가 불에 덴 빼떼기를 아기를 보듬듯이 돌봐 주면 ‘그 집, 병아리 꽤 사랑했네’, ‘그 집 아주 병아리를 의지하고 사는 구만. 짐승이 없으니…….’ 했습니다. 어머니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순진이네 집안 사정과 빼떼기의 사는 모습이 더욱 환히 보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대충 머리로 꾸며 내지 않고 얼마나 또렷하게 실제 일이 벌어지는 듯이 써 놓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모두들 낯선 경험이라 앞 부분의 닭장 만드는 얘기들은 조금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약속 하나를 했지요. 앞 부분만 꾹 참고 읽어 보자고. 그랬더니 나중에는 아이들이 모두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빼떼기를 모두 가슴아프게 사랑했습니다. 마지막에 빼떼기가 죽는 장면에서는 아주 가슴아파했습니다. 자신이 빼떼기를 길러 본 듯이 온몸으로 빼떼기의 운명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문학이 주는 감동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어 자신이 직접 온몸으로 겪은 듯한 경험, 그런 경험들이 모여 앞으로 자신 앞에 나타날 힘겨운 고개들을 한 고개씩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겠지요. 저는 권정생 선생님 작품을 많이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빼떼기>를 참 좋아합니다. 《몽실 언니》를 좋아하듯이 그렇게 좋아합니다. <강아지똥>을 좋아하듯이 그렇게 좋아합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이 <빼떼기>를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글 : 심명숙)


바람, 꽃밭, 나
<오소리네 집 꽃밭>,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바람에 날려 40리를 날려간 오소리 아줌마!
  사람들 눈에 띌까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들 노는 소리에 참을 수가 없어서 학교 운동장을 구경하다가 잘 가꾸어진 꽃밭을 보게 된다.
  예쁜 꽃밭이다. (여기에서 다시 그 장면을 한 번 읽고)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아마 6월 말이나 7월쯤일 게다.

“아이구, 꽃밭이 예쁘구나. 나도 집에 가거든 저런 꽃밭을 만들어야지.”(206쪽)

집에 오자마자 아주머니 오소리는 아저씨 오소리를 졸라 꽃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오소리는 아주머니 오소리가 깝치고 들볶으니까 할 수 없이 괭이로 밭을 쪼았습니다.(206쪽)

하지만 여긴 패랭이꽃, 저긴 잔대꽃, 초롱담꽃……, 오소리 집 둘레엔 온갖 산꽃이 여기저기 피어서 이미 꽃밭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주머니 오소리. 바람에 날려간 아주머니 오소리를 걱정하던 아저씨 오소리에게 “나 읍내 장에 다녀왔어요.” 하고 물어 보기도 전에 먼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이리저리 꽃밭을 만들려 애를 쓰다가 이미 살고 있는 곳이 아름다운 산꽃밭임을 알고는
 
“정말 그렇군요. 제가 찔레덩굴 밑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바람에 날려갔나 봐요. 그래서 괜히 읍내 학교 꽃밭을 보고 잠깐 마음이 들떴던 거예요.”(208쪽)

하고 고백한다. 바람에 날 려 갔 노 라 고.
  바람에 날려간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마는 아주머니 오소리. 처음에 오소리 아저씨가 바람에 날려간 게 아니었느냐고 물었을 때, 오소리 아주머니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러나 이제 아주머니 오소리는 선선히 바람 날려 40리 날아간 이야기를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이다.
  왜 이리 변했을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소리 아주머니는 바람에 날려간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을까!
  남이 애써 가꿔 놓은 꽃밭을 보고 부러워하던 아주머니 오소리가 저절로 피고 지는 꽃밭 속에 살고 있는 자기를, 그러니까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된다. 굳이 가꾸고 심지 않아도 패랭이꽃, 잔대꽃, 초롱담꽃이 지천으로 널린 산꽃밭을 말이다. 아마 오소리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산 속 꽃밭을 보았으리라. 얼마나 예쁜지…….
  나도 한때 눈을 감고 산 적이 있다. 무서워서도 그랬지만,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이 가진 것만을 올려다보고 살았다. 그러니 무언들 제대로 보았을까.
오소리 아줌마는 자기를 보았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나 있는 그대로를 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이 아니고, 솔직하게 말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아마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그림책 《오소리네 집 꽃밭》에서는 아름다운 꽃밭을 보고 “호호호호 하하하하” 웃지만, 〈오소리네 집 꽃밭〉 이야기에서는 아주머니 오소리가 아저씨 오소리에게 바람에 날려간 이야기를 먼저 하고는 “호호호호 하하하하” 웃는다. 그리고 꽃들도 따라 웃는다.
오소리네 집 꽃밭 이야기는 꽃밭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머니 오소리 이야기다. 바람에 날려갔다가 오소리 아주머니가 오소리 아주머니를 만난 이야기, 바람은 그런 것이다. 바람 때문에 나를 만난 이야기. 그래서 아주머니 오소리 이야기며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이번에 이렇게 읽었다.(글 : 김영미)


동네 한 바퀴
<오소리네 집 꽃밭>,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우리 마을 옆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그 옆에 커다란 슈퍼가 생겼어요. 우리 동네보다 싼 물건이 많다 해서 구경 갔지요. 멀리 새 아파트 둘레에 피어 있는 하얀 꽃. 뭘까. 못 보던 꽃인데……, 어머, 줄기 따라 소복소복 붙어 있는 꽃. 어릴 때 고향에 흔하게 피던 흰 꽃이었어요. 꽃 이름도 몹시 궁금했지만 누가 이 꽃을 심을 생각을 했을까, 너무 반가워 그 사람이 더 궁금했어요.
  그리고서 5년이 지난 작년. 또 그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곳을 보았어요. 눈물이 나올 뻔했지요. 이름도 모르면서. 그게 조팝나무래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고 알았답니다.
길을 가다 어릴 때 많이 보던 꽃을 보면 가슴이 벌렁거려요. 반가워서요. 장미, 철쭉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과는 느낌이 다르죠. 그 곳에 멈춰 한참을 보고 있어요. 어릴 때 많이 보던 꽃. 가만히 보면 그런 꽃은 길가에 더 많이 있네요.
  아마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그랬나 봐요. 길가에 자주 보던 풀과 들꽃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 이름 없는 꽃은 없다고 하는데. 하지만 부끄럽게도 알고 있는 게 몇 안 되지요.
처음에 그림책으로 《오소리네 집 꽃밭》을 만났을 때도 조팝나무를 만났을 때처럼 마음이 마구 동당거렸어요. 가끔 동네 꼬맹이들과 손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큰 즐거움이었는데, 오소리 아줌마를 알고 난 후 ‘동네 한 바퀴’가 더 좋아졌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 마을이랍니다. 전에 살던 마을에서는 볼 수 없던 커다란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가 있어서 볼 때마다 푸근해지죠.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는 이 곳을 한 바퀴 돌면 바쁘게만 살다가 모처럼 제 정신이 드는 것 같아 행복해진답니다. 오늘은 아이들 다 놓고 혼자 동네 한 바퀴를 나섰어요. 빌린 책 옆구리에 끼고요. 그 동안 궁금한 채로 지나쳤던 들꽃 이름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지요.
  뽀리뱅이가 110동 앞에 있네요. 햇빛 잘 비치는 아파트 벽 옆에 곧게 서 있어요. 늘씬한 키가 30센티미터는 쉽게 넘을 거 같아요. 책을 보니 서양 민들레는 잎이 밑으로 젖혀지는 것이 우리 민들레와 다른 점이래요.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잎이 젖혀진 민들레가 더 많이 있네요. 아, 저기, 아카시나무 옆에 연두색 잎과 노란색 꽃이 어우러져 피어 있는 애기똥풀. 책에서만 듣던 애기똥풀이에요. 이렇게 예쁜데 왜 이름이 ‘애기똥풀’일까. 우와, 찾다 보니 열 다섯 종류도 넘게 찾았어요. 소가 좋아한다는 쇠뜨기, 별 닮은 좀꽃마리…….
  이름 따로 들꽃 따로 알고 있다가 이렇게 제대로 알게 되니 오늘 큰일을 해낸 거 같아요. 뿌듯해졌어요.
  우리 집에 꼬마 친구들이 놀러 오면 《오소리네 집 꽃밭》도 재미나게 보여 주고, 손잡고 ‘동네 한 바퀴’도 갈 거예요. 모두 오소리 아줌마가 되어 우리 꽃의 이름도 불러 주고요. 와, 신나겠다.(글 : 김정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
<하느님의 눈물>, 《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6개월 된 뱃속 아기는 뭐 그리 신나는지 쉴새없이 움직이며 논다. 동화책을 읽어 주면 신이 나서 더 콩닥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이 아이를 갖기 전에 남편과 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을 잘 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인생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인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모습이 하도 탁하다 보니 도무지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것이야.’ 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자신이 없다. 어쩌면 나도 내 아이에게 세상 속에서 살아 남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들지 모르겠다. 모두들 그러니까 하고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처음에 〈하느님의 눈물〉을 읽었을 때는 그 깊은 뜻을 잘 알지 못했다.
  털이 노란 돌이 토끼처럼 풀꽃 하나 먹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살다가는 굶어 죽을 지도 모를 일인데. 무슨 이런 순진한 토끼가 있나. 나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가져 보질 못했으니 당연히 돌이 토끼가 왜 먹질 못하는지 모를밖에. 아무렴 풀꽃 먹는 일 따위에 저리도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다니 하고 무심하게 눈물의 의미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동화를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는 자연과 같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이제야 아주 조금은 돌이 토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꼭 권정생 선생님이 돌이 토끼 같기도 하다. 남을 해칠 줄 모르고, 평생을 돌이 토끼의 마음으로 사셨을 선생님을 생각하면 하느님이 흘리신 눈물은 아마도 권정생 선생님이 흘리고 계신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이 너무 메말라 버려서 몸과 마음을 긴장하지 않고는 살아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앞다투어 경쟁하고, 끊임없이 달려나가지 않고는 세상에서 버틸 수 없다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이제 착하다는 말이 곧 어리석고 손해 본다는 말로 통하는 세상이니 나 혼자 깨끗하다가는 어느 틈엔가 짓밟히거나, 똑같이 물들고 말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나. 세상에 나오는 아이에게 빠르게 달려나가라고 가르쳐야 하나.
마음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 마음 그대로를 지키며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모임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돌이 토끼의 마음을 배운다.
  하느님처럼 깨끗하고 착하게 살고 싶어하는 돌이 토끼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아직은 안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금방 그렇게 될 수 있단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될 우리 아이가 돌이 토끼의 마음을 가지길 진정으로 바란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오늘 나는 베개에 기대어 돌이 토끼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 준다.
  남의 목숨도 소중한 거야, 그런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글 : 권정민)


우리 옆에 살고 있는 해룡이
<해룡이>,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내 고향은 경상도입니다. ‘보리 문둥이’라는 욕을 가진 경상도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때만해도 문둥이 이야기를 하고 살았나 봅니다. 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에 문둥이가 아기를 훔쳐 가려고 숨어 있다는 이야기며, 가 보지는 못한 어느 마을에 그들이 함께 산다는 이야기며, 살을 꼬집어도 아프지 않으면 그 병에 걸린 것이라는 이야기며……. 그래서 내 살을 꼬집어 보기도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해룡이는 바로 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가족 곁에서조차 병과 싸울 수 없는, 그래서 혼자 견뎌야 하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해룡이〉를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 소리가 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있는데 안개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목구비 뚜렷하게 잘생긴 해룡이의 몸짓만 소리 없이 내 가슴을 짓누르다가, 성글어진 눈썹의 문둥이로 마침내는 눈 위에 사라져 가는 발자국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해룡아, 너 혼자 어떻게 살아가겠니? 엄마가……이 엄마가 죄가 많지…….”
갈퀴처럼 여윈 손으로 해룡이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148쪽)

돌아가신 엄마의 이 마음을 해룡이는 부여안고 집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지난 해보다 갑절이나 두터운 이엉으로 지붕을 이고, 나뭇가리를 태산처럼 두 무더기 쌓아 놓고, 돗자리 엮고, 소쿠리 만들고, 봉태기랑 멍석도 만들었습니다. 일을 마치고는 장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의 옷감, 예쁜 신발을 사 왔습니다. 여기서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해룡이의 처연한 몸짓만이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집을 떠나서도 해룡이에게는 가족이 다였던 모양입니다. 주머니에 돈을 가득 채워 집을 찾지만 몰래 신발 속에 넣어 놓고, 가족의 체취만 맡고 떠나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그 해룡이가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단 하나의 혜택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많은 해룡이들이 오늘도 ‘그들의 소록도’에 있습니다. 고향 떠난 지 30년, 늘 꿈꾸어 오던 고향 방문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가족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 스스로 먼 발치에서 고향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해룡이들이 우리 삶의 한 켠에 살고 있었습니다. 밤에 왔다가 피붙이의 신발만 어루만지다가 눈길로 사라졌던 그 해룡이의 마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금기의 땅이었던 그들의 섬에 해가 비치는 동안에는 우리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룡이들이 누렸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외로운 상처도 함께 느끼게 되겠지요. 우리가 그들의 땅으로 찾아가서 그들이 더 외로워지는 일은 정녕 없겠지요.(글 : 곽현주)


싸리울 밖 해룡아!
<해룡이>,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착한 해룡이,
  두 볼에 빨간 연지 각시 춤이 고왔지.
  소근네 바구니 참꽃 몇 가장이에도
  참꽃보다 더 붉게 숨가빴을 스물 둘,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사람
  살아서 살을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
  어찌 하늘이 밉지 않았을까.
  어려선 조실부모하고
  다 커선 숨어 살아야 할 병을 지어 주었다.
  꼴머슴 노릇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다가
  그것도 땅뙈기라고
  식솔 거둬 먹이는 게 죄가 될까만
  하늘이 내린 벌이라 해룡이 집 떠난다.

누가 있어 사립문 밖 아비의 죄가 덜 추울까.
  낯익은 추녀 밑 댓돌 위 신발,
  어느 새 커 버린 세 아이 고무신에 언 손 넣어 보며
  ‘소근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눈물인들 소리나게 떨구었을까.

손가락이 문드러져도
  아비는 아비인 것을,
  눈썹 없는 아비가
  ‘참 아버지 자격이 있을까’
  해룡이 문고리만 쓰다듬었지.

아비는 길을 떠나고,
  눈발 속에 몸을 맡기고
  세상은 그를 지운다.
  깊이 깊이 흔적도 없이

해룡이를 그렇게 읽었다. 문 밖에 있을 것만 같아 한동안 나는 ‘소근네’였다.
  ‘돌아와서 잘 살았으면…….’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해룡이 병이 말짱하게 나았으면…….’
  아이들 같은 마음이 소복이 밤 눈 뒤집어쓴 고무신 속 해룡이의 손길만큼이나 애절했다. 함께 살 수 없는 그 병은 해룡이 탓이 아니다. 하늘이 준 ‘벌’이고 ‘죄’다. 그러나 하필 해룡이여야 할 까닭이 있는가. 꼭 해룡이여야 할 까닭은 하늘도 알지 못한다. 해룡이 자신도 모른다. 책을 읽는 우리도, 글을 쓴 지은이도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해룡일 꼭 어디서 본 것만 같다. 해룡이가 어디 진짜 살았던 사람 같다. 옛날에 동네에 그런 사람이 한 사람씩 있었던 것도 같다. 몸 어디가 성치 않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그네들은 잊힐 만하면 나타났고, 더러는 붙박이로 한참을 살았던 이도 있었던 거다. 그 때는 그저 그들의 불행이 남의 것 이상이 아니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렇다. 해룡이에게 내려진 ‘천형’은 우리 모두의 ‘원죄’구나, 꼭 누구여서도 아니고 내가 아니란 법도 없다. ‘원죄’라고 해서 특정 종교에 끈을 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만큼은 역사에 대해 부채의식을 갖고 산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부터 ‘아직도 허리가 잘린 채 통곡하는 내 나라 내 민족의 통한’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런 빚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원죄’다. 해룡이 저 사립문 밖에서 홀로 문드러진 몸뚱어리 버티고자 하는 것은 ‘죄’를 씻기 위함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채감을 덜기 위해서다. 함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이겠다. 집 떠난 십 년 동안을 해룡이는 얼마나 혼자 외로웠을까? 아무도 대신해 주지 못하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문둥병’이 상징으로 읽힌 지금, 우리의 원죄를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식구들 모두를 뒤로 한 채, 집 떠나 원죄와 싸우는 우리 시대의 아픈 삶들을 나는 익히 보았고, 보고 있다. “나 돌아갈래!”를 부르짖던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아니라도 우리는 충분히 고난한 세월의 터널을 뚫고 지나야 했다. 1980년 5월 그 해로, 한 살을 새로 먹은 우리 모두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아직도 문 밖에 서성이고 있는 많은 해룡이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내가 해룡이일 수도 있겠고, 나의 누군가가 해룡이일 수도 있다. 아무도 그를 추방할 자격이 없다. 스스로 길 떠난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부채감 때문이라면, 그것은 돌아오지 못해서가 아니라 버티며 홀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옳다.
  고왔던, 아름다웠던, 건강했던, 착한 해룡이들이 지금 문 밖에서 제 살을 썩히며 이 땅의 주인 노릇, 사람 노릇으로 힘들다. 그들은 문둥이가 아니고 사람이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한하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글 : 권영희)


더불어 사는 삶
<황소 아저씨>, 《짱구네 고추밭 소동》, 웅진, 1985

그 대단하다는 8학군 대치동 전문 서점에서 일하게 된 지 6개월이 넘었다. 2학년이 ‘해리 포터 시리즈’ 원서를 읽고, 수학 경시 준비를 위해 밤 12시까지 학원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 그들의 실력이나 박식함은 어른인 나도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의 이기적 욕심과 그들의 부가 이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이리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지만, 요즘도 점심을 못 먹는 아이들이 정말 있느냐며 묻는 어른들.
권정생은 우리가 지금 언제고 어디서나 짐승으로 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 작은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속해 있는 집단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할 자 얼마나 되며, 배고픈 사람이 내 옆에 버젓이 누웠어도 내 배만 부르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아감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건 무얼까.
나는 보잘것없는 공간인 한 외양간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을 본다. 자신도 허술한 외양간에서 추위에 떨며 구유 속 밥 찌꺼기를 먹으며 봄을 기다리지만 황소는 자기보다 작고 어린 아기 생쥐들에게 자신의 먹을거리와 따순 겨드랑이를 잠자리로 내 준다. 이로써 외로운 그들은 더불어 사는 한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잘 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건 부유한 자가 아닌 아주 조금 더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많이 가져야 더 많이 나누는 건 아닐 텐데. 우린 얼마나 서로 나누며 사나.
권정생의 삶을 알면 그의 동화 글귀 하나 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던가 그가 한 몇 달 거지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닌 때 친절을 베풀어 준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 보았다. 마을 앞에 우물과 늙은 소나무가 있는 외딴 집 노부부의 정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복사꽃 외딴 집’이란 동화를 썼다고 한다. 배고플 때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먹을거리를 주었던 아주머니나 쓰러져 있는 그에게 물을 길어 와 먹여 주시던 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이런 착한 사람들 덕분에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황소 아저씨 같은 이들로 살아난 그가 이제는 황소 아저씨의 가슴으로 우리 앞에 살아 동화를 들려 주고 계신다.
이 동화에서 삶을 배운다. 주위의 모든 생명들까지 더불어 사는 삶. 열 번 스무 번 수없이 읽어도 가슴 속을 파고드는 황소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가 참 좋다.(글 : 임옥현)


【권정생 동화집에 실린 단편 동화 목록】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장대 끝에서 웃는 아이/ 무명 저고리와 엄마/ 깜둥바가지 아줌마/ 강아지똥/ 어시장 이야기/ 오누이 지렁이/ 어느 주검들이 한 이야기/ 사슴/ 눈길/ 먹구렁이 기차/ 토끼 나라/ 금복이네 자두나무/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 남쇠와 파란 눈의 아이

《까치 울던 날》 제오문화사 1978
마음/ 까치 울던 날/ 하얀배/ 여름 그림 책/ 코스모스와 사마귀/ 어느 시냇가 이웃들/ 슬픈 여름밤/ 짱구네 고추밭 소동/ 보리 방아/ 아버지/ 달개비 꽃들이 읽은 편지/ 순자 이야기/ 달수네 아버지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1978
제1부 : 보리이삭 팰 때/ 들국화 고갯길/ 사과나무밭 달님/ 어린 양/ 소/ 공 아저씨/
           똬리골댁 할머니
제2부 : 별똥별/ 패랭이꽃/ 해룡이/ 달래 아가씨/ 나사렛 아이

《짱구네 고추밭 소동》 웅진 1985
새벽 종소리/ 빨간 책가방/ 새들은 날 수 있었습니다/ 웃들 감나무집 할아버지/ 벙어리 동찬이/ 두민이와 문방구점 아저씨/ 버들강아지야 어서 피어라/짱구네 고추밭 소동/ 승규와 만규 형제/ 어느 추수 감사절에 있었던 일/ 새끼까치와 진달래꽃/ 우리들의 5월(어린이문예, 1985년 5월)/ 용원이네 아버지와 순난이네 아버지/ 황소 아저씨/ 쌀도둑/ 눈 덮인 고갯길/ 어느 섣달 그믐날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햇빛 1985
종지기 아저씨/ 달개비꽃들이 읽은 편지/ 어느 시냇가/ 이웃들 슬픈 여름밤/ 여름 그림책/ 코스모스와 사마귀/ 까치 울던 날/ 삼거리 마을 이야기/ 달맞이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곰돌이/ 보리방아 달수네 아버지/ 순자 이야기(아동문예, 1978년 7월)/ 아버지(소년, 1977년 7월)/ 어느 가을날 할머니가 부르는 찬송가

《바닷가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1988
제1부 :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늦가을 소나무와 굴뚝새/ 종달이 아저씨네/ 연이의 오월/ 장군님과 농부/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제2부 : 바닷가 아이들/ 앵두가 빨갛게 익을 때/ 진구네가 겪었던 그해 여름 이야기/ 빼떼기/ 끈/ 팥죽 할머니(동극)
제3부 : 새앙쥐 귀신이 되어 돌아오다/ 약장수들/ 초밭 할머니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할매하고 손잡고/ 찬욱이와 대장의 크리스마스/ 장대 끝에서 웃는 아이/ 무명 저고리와 엄마/ 어느 주검들이 한 이야기/ 금복이네 자두나무/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강아지똥/ 사슴/ 눈길/ 먹구렁이 기차/ 토끼 나라/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 오소리네 집 꽃밭/ 금희와 아기 물총새/ 동근이와 아기 소나무들/ 왜가리 식구들의 슬픈 이야기/ 산토끼

《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하느님의 눈물/ 아기 소나무/ 다람쥐 동산/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굴뚝새/ 부엉이/ 아기 산토끼/ 고추짱아/ 두꺼비/ 소낙비/ 산버들나무 밑 가재 형제/ 찔레꽃잎과 무지개/ 학교 놀이/ 아기 늑대 세 남매/ 떡반죽 그릇 속의 개구리/ 수몰지구에서 온 아이/ 가엾은 나무

《무명저고리와 엄마》 다리 1994
강아지똥/ 깜둥바가지 아줌마/ 무명 저고리와 엄마/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오누이 지렁이/ 사슴/ 먹구렁이 기차/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 남쇠와 파란눈의 아이

《깜둥바가지 아줌마》 우리교육 1998
토끼 나라/ 깜둥바가지 아줌마/ 할매하고 손잡고/ 사슴/ 어시장 이야기/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쌀 도둑 /금복이네 자두나무 /어느 주검들이 한 이야기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

《먹구렁이 기차》 우리교육 1999
산토끼/ 동근이와 아기 소나무들/ 오소리네 집 꽃밭/ 찬욱이와 대장의 크리스마스/ 금화와 아기 물총새/ 강아지똥/ 왜가리 식구들의 슬픈 이야기/ 오누이 지렁이/ 장대 끝에서 웃는 아이/ 눈길/ 먹구렁이 기차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우리교육 2000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제비꽃 피는 어느 장날/ 물렁감/ 살구나무 집 할머니/ 강 건너 마을 이야기/ 오두막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