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인간과 문학

사는 것이 아닌 견디어 내는 삶

권오삼

 

정생이 형은 평소에 내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형과 인연을 맺은 것은 햇수로 따져 불과 얼마밖에 안 되지만 이내 정이 흠뻑 든 사람이다.
  특히 내가 살아가는 일에 고달픔과 외로움을 느낄 때면 더욱 보고 싶고 가까이 있다면 언제라도 달려가 만나보고 싶도록 그리운 얼굴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듯이 형은 나에게 늘 다정하고 부드럽다. 세련되고 냄새가 풍기고 가식투성이인 것이 도시적이고 외래적이고 때묻은 것이라면, 형은 촌티 나고 냄새 풍기지 않고 꾸밈이 없는 인간본연 그대로의 순수성과 순박함을 그대로 지닌 전형적인 농촌 사람이다.
  작년 봄 내가 형의 얼굴을 한번 보기 위해 안동으로 내려갈  참인데 형으로부터 먼저 편지가 왔다. 편지 내용 중 이런저런 말끝에 지난 달에 전기불이 들어왔다는 것과 내 형편에 걸맞지 않게 텔레비를 들여놓아서 구역질이 난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고 당황한 것은 나였다. 전기불이 들어오고 텔레비를 놓은 것이 꼭 내게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는 사람처럼 말하니 내가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고 당황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전기불도 나중 알고 보니 형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뒷받침에 의해 들어왔고 텔레비도 역시 그 같은 경로로 놓여진 것인데 말이다.
  고흐의 그림 중에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느라면 그 그림 속의 인물들이 꼭 정생이 형 같다. 가난한 농부들이  흙 묻은 손으로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감자를 먹고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 인물들의 얼굴 모습 중에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와 유난히 커다랗고 순해 보이는 눈동자가 특히 그러하다. 그래 그런지 형의 작품을 보면 한 편 한 편이 모두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그림처럼 리얼하면서도 소박하고,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밝고 따뜻하여 독자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오랫동안 안으로 간직케 해주는지 모르겠다.
  인간 권정생, 그는 굳세다! 보통사람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생활환경과 오랜 질병의 고통 속에서― 그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 ‘사는 것이 아닌 견뎌내는 ’ 삶을 살면서도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 민족과 사회와 이웃을 위해 걱정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며 고통을 견뎌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보기에 딱하고 안타깝다.
  《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등의 작품을 보면 바로 그런 그의 마음을 쉽게 읽어 낼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내 나름대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첫째는, 철저한 역사의식, 역사인식의 바탕 위에 씌어진 것과 둘째는, 힘없고 가난하여 소외된 사람 또는 억압받고 고통받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뜨거운 연민과 애정의 눈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겠다. 앞으로 그가 최소한의 자기 건강이라도 유지하는 한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역량있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과 문학세계를 나 같은 사람이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어설프게 논하기엔 아직 이르고 내 능력 또한 미흡하여 아쉽지만 훗날로 미룰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순 우리 사람’ 이라는 것이다. 된장, 고추장, 마늘냄새가 온몸에서 풍겨 나는 조선족의 우리 사람, 일찌감치 서양인이나 트기들이 돼 버린 사람들이 많은 이 땅에 그는 오직 조선족 우리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강아지똥〉같은 작품들을 쓸 수 있었고 〈무명저고리와 엄마〉같은 수난도 겪었으나 꺾이지 않고 오늘까지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귀한 시대에 그와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그를 위한 내 개인적인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그를 우리집에 불러다 밥 한 끼나 대접하고픈 것인데 그의 건강이 그걸 허락치 않으니 그저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이 글은 《어린이와 책》7집에 실린 글입니다. 권오삼 선생님은 시인이며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동시교실」을 이끌고 있다. 작품집으로는 《물도 꿈을 꾼다》《고양이가 내 뱃속에서》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