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고단한 삶들이 지닌 ‘서러움’과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랑’의 시
―권정생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오삼

《어린이문학》으로부터 권정생 선생의 시에 대해서 써 달라는 부탁을 전화가 아닌 편지로 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경우로 봐서 편집부가 내게 무엇을 전할 때는 늘 전화를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편지란 방법으로 나온 것이 한편으론 좀 우스꽝스럽고 또 한편으론 거절해서는 안 되는 부탁이니 꼭 들어줘야 한다는 강제가 느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권정생 선생과 가까운 내가 거절한다면 인정머리가 없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아 더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남의 작품을 두고 말하는 것이 평문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12년만에 권정생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이 시집을 한편 한편 읽어 가면서 표시를 해 나가는 중에 그에게 동시 추천에 관해 협의해야 할 일이 있어 통화를 한 뒤, 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누가 형한테 형의 시세계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래?” 형은 뜻하지 않은 내 질문에 당황한 듯 머뭇머뭇하더니 어눌한 말투로 “글쎄, 자연을 쓴 거지 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너무 싱겁고 내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있어 “형은 평론하기는 틀렸구먼.”했다. 나 딴엔 이 글을 쓰는데 혹시 도움이 될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속셈으로 미끼를 던져 본 것인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타고날 때부터 훌륭한 작가이지 논리적 분석이 따르는 비평따위와는  촌수가 먼 것 같았다.

이 시집은 1988년 1월 25일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모두 80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1부와 2부 42편은 80년대에 쓴 것이고, 3부 22편은 50년대와 60년대에 쓴 것, 4부 16편은 80년대 중 87년부터 88년 일 년 사이에 쓴 것이다.
  작품 수는 80편이지만 작품이 씌어진 시기가 근 40년이란 긴 시간대에 걸쳐 있다 보니 이것이 대표작이다, 하고 꼽기도 어렵고 또 그런 식으로 그의 시를 말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40년의 시차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50년대에 쓴 것이나 80년대 말에 쓴 것이나 형식이나 내용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다시 말하면 작품 끝에다가 표시한 날짜만 없다면 작품만으로는 그 창작 시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의 표현방법이나 소재가 거의 비슷했다.
  그래서 시를 읽어 갈수록 이 글을 쓰기가 상당히 곤혹스럽고 그의 시의 근원이 되는 원천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시집의 제목이 되는《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그의 시의 비밀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1. 농촌의 고단한 삶(목숨)들이 지닌 ‘서러움’을 애절한 심정으로 쓴 시

어머니 사시는 집은 초가집일까/ 흙담으로 지은 삼 간짜리 초가집일까(중략)/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중략)/ 거기서는 보리밥에 산나물 잡수실까/ 거기서도 밥이 모자라/ 어머니는 아주 조금밖에 못 잡수실까/……(중략) 열무랑 나박배추 솎아 담고/ 어머니는 언덕길로 걸어서 집으로 가실까/ 고무신 아끼시느라 벗어 들고 걸어 가실까/ 다래끼 무거우면 한 번 추슬렀다가/―후유유 하시며, 잠깐 섰다가 또 걸으실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에서

239행에 이르는 이 시를 읽다 보면 권정생 시의 원천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나를 발견하게 된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빈민가인 시부야에 살 때부터 가난 속에 산 그는 1946년 3월에 귀국, 청송에서 초가 삼간 흙담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농촌의 척박한 삶과 가난을 스스로 겪으며 느끼게 된다. 이런 삶은 위의 시를 쓴  80년대 중반을 지나, 말까지 이어지는 5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져, 그의 사상과 정서를 반영하는 데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이 주는 어려움 속에서 살다 보면 ‘반항’이냐 아니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껴안고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그는 천성이 남에게 모지지 못한 데다 건강이 나빠 ‘반항’보다는 ‘껴안고 사는’ 한과 서러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이를 문학으로 표현, 승화시키는 데 생애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6,7세 때부터 즐겨 읽었다는 동화책은 물론 부산에서 읽었다는 세계명작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다시 글머리로 돌아가 그러한 그의 서러움과 애절한 염원이 장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속에 집약되어 있는데, 이 시는 그런 유형의 시들이 갖고 있는 특징을 토을어 집약해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어머니에게서 볼 수 있는 고단한 삶은 곧 당시의 우리 농민들의 삶이며 고단함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서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머니는 거기서도/ 바람 머리 앓으실까/ 이앓이도 하실까/ 머리에 수건 두르시고/ 아픈 것도 애써 참으실까/ 겨울밤 어머니 방엔 군불 많이 지피실까/ 솜이불 두꺼운 걸로 덮고 주무실까/ 방바닥엔 삭자리 깔았을까/ 짚자리 가지런히 깔았을까/ 윗목에 물레실 자으시다가/ 어머니는 밤 늦게 잠자리에 드시는 걸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에서

이런 애틋한 마음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리는 이 시에서만이 아니고 다른 시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집의 첫 장에 나오는 〈토끼ㆍ1〉을 보자.

쇠그물에 달빛이 아른거리면
  엄마 보고 싶은 아가 토끼는
  달님을 가만히 쳐다보고

달님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토끼! 짤막한 시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서러운’감정과 ‘슬픈’ 심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보릿짚 깔고/ 보릿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그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 꾼다./ 아버지 꿈 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릿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소ㆍ1〉전문

이 시도 마찬가지다. ‘소’는 스스로 이만치 자라고 튼튼해진 걸 대견해하고 자랑하지만 사실은 외롭고 서럽고 슬픈 모습이다.
  권정생 시에 등장하는 동식물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그러나 착하게 사는 농민들의 상징이요 그들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토끼’가 그렇고 ‘소’가 그렇고 하루살이, 엉머구리, 달팽이, 뻐꾹새, 반디, 보리 매미, 굴뚝새, 패랭이, 민들레, 도라지, 해바라기, 박, 참꽃, 옥수수가 그렇다. 그는 이러한 동식물들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 다른 고단한 삶들의 ‘서러움’까지 껴안고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을 읽으면 왠지 슬픔이 화선지에 번지는 먹물처럼 그렇게 가슴에 와 번진다.

2. 간절한 ‘염원’을 담은 시

권정생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절한 ‘염원’이다. 이런 염원은 개인의 것에서부터 이웃, 사회, 민족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이는 그가 지니고 있는 ‘사랑’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에게서 볼 수 있는 너무나 고단하게 살고 있는 목숨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넓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평화를, 평등을, 사랑을 희구하고 있다.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와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오래오래 살았으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이처럼 그는 너무나 불쌍하게 살다 이승을 떠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은 염원이 담긴 심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가 하면

누런 황토물이/ 우리 집을 갖고 가 버렸다.// 앞내들 벼논도/ 텃밭 고구마도// 그래서 우리는 / 떠나야 했다.// (중략) 이만치 오다가/ 가만히 한 번/ 돌아봤더니// 언덕 위에 살아 남은/ 해바라기 두 포기/ 노랗게 살포시 꽃을 피우며// 돈벌거든 다시 오너라/ 괭이 사 갖고/ 삽 사 갖고/ 돌아오너라.//
  ―〈해바라기〉에서

수해를 입고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돈을 벌거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해바라기를 통해 애절한 심정으로 기원하고 있고, 그러면서 사람 사는 세상이 ‘사랑’과 ‘평등’ ‘평화’로 이루어지기를 희구하고 있다.

민들레는 총칼이 없어도 폭풍우를 이기고/ 민들레는 다만 사랑으로 이어지고/ 임금도 신하도 주인도 머슴도 없이/ 민들레는 땅을 가르지 않고/ 전쟁도 휴전선도 없고
  ―〈민들레 이야기〉에서

또한 이러한 염원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붉게 피어나는 진달래처럼 어둡고 암담한 어른들의 세상 속일지라도 우리 아이들은 진달래꽃처럼 붉게 피어남을 노래하면서, 여기서는 그냥 염원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그 염원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낙관하는 강한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어른들은 언제나 어둡고/ 어른들은 어디서나 꽁꽁 얼었고/ 지금도 어른들은 전쟁을 얘기하고/ 지금도 어른들은 핵무기를 만들고// (중략) 허리가 잘렸어도 아이들은 자라고/ 철조망이 막았어도 아이들은 자라고/ 남쪽에도 북쪽에도 제비처럼 크는 아이들// 진달래꽃 꺾어 들고 노래부르네/ 모두모두 진달래꽃이 되지 노래부르네.//
  ―〈진달래꽃 꺾어 들고〉에서

3. 맺는 말

그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는데, 시를 써 둔 공책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하며 그 때 쓴 시 중에 하나가 바로 14살 때인 1950년에 쓴 ‘강냉이’란 시라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를 80년대에 쓴 시와 견주어 봐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20살 전에 쓴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쓴 시들, 즉 3부에 속하는 시들은 소박하면서도 토속적 서정이 넘치는 시들로 80년대에 쓴 1부의 시들과 함께 가장 동시다운 시라고 할 수 있다.

길 모퉁이 돌담 밑에/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싱야는 구덩이 파고/ 나는 강냉이 씨앗 놓고/ 거름 주고 흙 덮고// 한 치 크면 오줌 주고/ 두 치 크면 북을 주고/ 벌써 내 키만치 컸다.// “요건 싱야 강냉이”/ “요건 내 강냉이”/ 나누어서 하나하나/ 점찎어 놓고// 강냉이 잎사귀 너울거리고/ 뒷집 대추남게 매미 울 때/ 봉화산 모퉁이로 전쟁이 났다.// 우리는 보따리 싸 들고 지고/ 집 모퉁이 강냉이 그냥 두고 피난 갔다.// 아버지랑 어머니랑/ 낯설은 강변에서/ 하얀 둥근 달 쳐다보며/ 고향 생각하실 때면// 나 혼자 우리 집 모퉁이/ 저희들끼리 버려 두고 온/ 강냉이 생각했다.// 인지쯤 싱야 강냉이는/ 수염이 나고/ 내 강냉이는 알이 통통 배고……//
  ―〈강냉이〉전문, 1950년

골목길엔 우물이/ 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 할매가 퍼 간다// 순이도 퍼 간다/ 돌이도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 할매도 모르게// 우물은 밤새도록/ 호비작호비작// 혼자서 물만 만든다.//
  ―〈우물〉1954년

이상으로 제한된 지면 속에서 권정생의 시를 읽고 그의 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이한 것은 그가 70년대에는 동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짐작으로 동화 창작에 몰두하느라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가 쓴 동시가 편수로는 비록 80편에 불과할망정 그의 동시가 갖는 무게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끝으로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시를 읽는 과정에서 되도록 그의 시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비평적 접근보다는 ‘그가 어떤 심경으로 이 시를 썼을까?’ ‘이 시는 어떤 상황 속에서 씌어졌을까?’ 하는 점에 초점을 두고 보았음을 밝힌다. 따라서 그의 대표시 지목에 대한 궁금증은 그의 시를 사랑하는 개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밖에 없음을 숙제로 남긴다.

(이 글은 《어린이문학》 2000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권오삼 선생님은 시인이며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동시교실」을 이끌고 있다. 작품집으로는 《물도 꿈을 꾼다》《고양이가 내 뱃속에서》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