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양 권정생 2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원  종  찬


   
1.머리말
    2.초기 동화 세 편-「강아지똥」을 중심으로
    3.
소년소설 삼부작-『몽실언니』를 중심으로
    4.권정생 문학의 본질-오가와미메이·오스카와일드·방정환과의 비교
    5.권정생 문학의 한계와 문제점-노신·현덕과의 비교
    6.맺음말

  3.소년소설 삼부작-『몽실 언니』를 중심으로

『몽실 언니』는 권정생을 대표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한국 아동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분단 시대 최고의 역작으로서 주목을 받아 왔다. 이 책은 1984년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약 40만 부 가량을 찍었다고 하니, 한국 창작동화의 역사상 가장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 받은 작품임을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몽실 언니'는 억장이 무너져 내릴 만큼 억울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다. 동시에 '몽실 언니'는 한국 아동문학이 낳은 불멸의 주인공이다 결코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는 두 진술의 자연스러운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누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앞으로도 이런 작품이 계속 나와야 하는 것일까?
  권정생 문학에서 동화로 분류되는 것들은 동물이나 사물을 의인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것들은 사건 전개가 단순하고, 과장과 공상의 요소가 풍부하며, 흥미로운 줄거리에 작가의 철학을 담아낸 은유의 형식으로서, 동화 본래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 그러나 그의 소년소설은 이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첫 동화집 『강아지똥』(1974)에 실린 16편의 작품 가운데 우리가 소년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금복이네 자두나무」 한 편뿐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농민의 소망을여지없이 짓밟는 지주의 횡포를 드러냈다. 금복이 아버지는 마을에 큰 길이 새로 날 것을 아는 최 주사에게 속아 평생 모은 돈을 가지고 최 주사네 밭 한 조각을 샀다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만다. 당시 아무 생각 없는 동화작가들은 '새마을 운동'을 마치 농촌 들녘에 울려 퍼지는 희망가인 양 불러댔지만, 권정생은 농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렇게 농민의 피눈물로 증언하였던 것이다. 「금복이네 자두나무」는 독자의 이해 범위를 소년층으로 내려 잡은 것 말고는 리얼리즘 소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동화가 삶으로부터 추상한 무형의 철학에다 다시 간결한 형상의 옷을 입힌 고도의 시적 은유 형식이라면, 소설은 한 시대의 본질과 이어지는 개별자의 체험을 거의 날 것 그대로 드러낸 산문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권정생은 '동화'와 '소년소설'을 뚜렷하게 구분해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럼 동화 쓰기를 당분간 그만 두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작가의 다음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서울 다녀와서 나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 이상 동화를 붙잡고 있다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어. 당분간 소설을 쓰기로 맘먹었다. 언젠가 다시 동화 쓸 수 있는 시절이 또 올 거야. 그걸 기다리기로 했다.(이현주 목사에게 보낸 1975년 3월 5일자 편지,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232면)

권정생은 아동문학을 벗어난 자리에서 자신의 창작을 고민한 일이 거의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훨씬 나중의 일이니까, 인용문의 "소설"은 성인문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년소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동화 쓸 수 있는 시절이 또 올 거"라는 말은 동화를 포기한다거나 낮추어 본다거나 하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므로, "이 이상 동화를 붙잡고 있다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다는 말에서 당시에 "동화"를 쓸 수 없게 하는 어떤 압박 요인이 작가에게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위의 인용문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계속 쓰긴 할 테지만 '동화 방식의 대응이 아니라 소설 방식의 대응'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받고 있다는 그 시절 자기 심정의 토로인 것이다.
  무엇이 한 사람의 동화 작가에게 이토록 소설 쓰기를 압박하고 있을까? 동화를 살핀 자리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권정생 문학은 절실한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런데 권정생 문학의 바탕이 되는 체험은 안동 조탑 마을에 자리잡기 이전과 이후의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권정생이 조탑 마을에 자리잡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식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교회 곁방에 기거하는 종지기이기도 했고, 뒤에는 조금 떨어진 허름한 독채에서 혼자양처럼 순하게 지내는 병인(病人)이기도 했던 권정생은, 힘없고 배운 것 없는 마을 아낙네들과 할머니들이 맘놓고 자기들 사연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구보다 편한 이야기 상대였다. 그네들은 아마도 얽히고 설킨 가슴 아픈 사연들, 억울하고 기막히고 한스런 사연들을 주로 털어놓았을 것이다. 권정생은 마을 노인들에게 오는 자식들의 편지를 읽어주고 대신 답장을 써주는 일도 맡아 했다고 한다.

  편지 대필을 하면서, 나는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의 집안 형편을 훔쳐보고 있었다. 거기엔 우리 한국의 슬픈 역사와 현실이 그대로 가장 정직하게 씌어지고 있었다.(「편지 대필」, 위의 책, 183면)

한국의 노인들 치고 누구 하나 기구하지 않은 인생이 있겠느냐마는, 그곳 촌로들의 인생 역정은 사연마다 갈피마다 한 편 한 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농민이 아니라 작가였던 권정생에게 이곳 조탑 마을에서의 체험은, 물론 몸소 겪어서 알게 된 농촌 현실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겠지만, 마을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어서 알게된 무수한 사연들이 훨씬 더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였으리라는 사실이다.
  체험이란 당연히 먼저 것에 나중 것이 보태지면서 끊임없이 불어나고 바뀌어간다. 나중 것은 먼저 것을 지우고 고치고 강화하면서 순간순간 의식과 무의식에 작용한다. 권정생에게는 조탑 마을 이전과 이후의 체험들 모두가 수난의 체험이라는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에, 체험 내용에서의 특별한 변화를 지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기상으로 볼 때, 조탑 마을 이전의 '개인사적 체험'이 첫 동화집 『강아지똥』에 더 큰 비중으로 작용했다면, 조탑 마을 이후에 새로 보태진 '민중사적 체험'은 동화와 구별되는 소설의 요구를 증폭시켰고, 그 결과물이 첫 동화집 이후에 나온소년소설들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안동 조탑 마을은 6·25 동란 때 낙동강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 격전지의 하나라서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억울한 희생이 많았다. 미군의 폭격도 대규모였고 민간인 학살과 부녀자 강간 같은 일들도 무척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이 비극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과 분단의 직접 피해자이기도 한 권정생이, 작가로 이런 수많은 억울한 사연들을 모른 척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분단 시대의 아동문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요컨대 권정생의소년소설은 힘없고 배운 것 없는 촌로들 '편지의 대필자'에서 그들 '인생 역정의 대변자'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진정한 작가적 고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권정생의 두 번째 작품집 『사과나무밭 달님』(창작과비평사, 1978)에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 들풀처럼 모질고 굳세게 살아온 이 땅의 민중들, 그 하나 하나의 인생 역정을 담은 소년소설들이많이 실려 있다.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인 앉은뱅이 '탑이 할머니', 일제 시대에 집을 나간 뒤 실종된 남편 때문에 얼이 빠져버린 '안강댁 할머니', 식구들을 남겨두고 돈벌러 혼자 일본으로 건너온 '공 아저씨', 억울하게 인민군 부역자로 몰린 탓에 공동묘지로 쫓겨나 살다가 마지막 숨을 거둔 '똬리골댁 할머니', 인민군과 국군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 때문에 삶이 망가져 버린 '돌쇠 아저씨', 문둥병에 걸려 식구들 몰래 집을 떠나야 했던 '해룡이 아저씨'……. 이렇게 버림받은 밑바닥 삶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맨 얼굴 그대로 하나 하나 소설의 그릇에 담아내던 권정생은, 비슷한 시기에 6·25 동란의 비극적 체험에 관한 본격 장편을 구상하고 이를 작품화하기에 이른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고, 두 번째가 『몽실 언니』, 그리고 세 번째가 『점득이네』이다. 그런데 '탑 마을'을 배경으로 해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1970년대 말에 완성했지만 책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종로서적에 맡긴 원고가 아무래도 말썽이 될 것 같아 단행본 출판이 어렵단다. 차라리 붓 꺾어 버리고 울면서 쓰러질 때까지 쏘다니고 싶다.(이현주 목사에게 보낸 1980년 7월 23일자 편지, 위의 책, 253면)

이 원고가 『초가집이 있던 마을』임은 작가에게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1986년에야 분도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오게 된다. 그 사이에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 1984)가 먼저 나왔고, 제일 나중에 『점득이네』(창작과비평사, 1990)가 나왔다. 우리 역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배경으로 삼은 만큼, 작가는 쓰고 싶은 걸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제약 아래서 매우 힘겹게 이들 작품을 써나갔다고 한다. 작품으로 발표하는 일 또한 순탄할 수가 없었다. 세 작품 모두 여러 잡지에 나뉘어 소개되곤 했는데, 『몽실 언니』는 발표 도중에 정부의 검열로 인해서 중간 부분이 잘린 채로 연재되었다가 그것이 그대로 책이 되어 나왔다. 이런 사실은 이들 작품의 역사적 성격을 말해 주는 것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땅의 민중을 벼랑 끝까지 몰아간 너무도 억울하고 비참한 경험이라서, 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이야기, 쓰고 또 써도 넘치는 사연이었다. 권정생은 피해자의 처지에서 민족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작품화하였는데, 이는 감추어진 진실을 새로 들추어내는 증언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세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 아니다. 세 작품이 비록 내용과 짜임으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건과 배경에서 비슷한 점 많고, 작가에게는 한 덩어리로 이어지는 연속된 창작이었던 만큼, 이것들을 가리켜 '6·25 동족상잔을 그린 장편 소년소설 삼부작'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탑 마을'이라는 전통적인 마을의 해체 과정을, 『몽실 언니』는 일본에서 건너온 귀향 동포 고초를, 『점득이네』는 만주에서 건너온 귀향 동포의 고초를 그리고 있으니, 비슷한 주제와 소재를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몽실 언니』를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나의 충격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이 충격은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닐 뿐만 아니라 6·25 소년소설 삼부작의 역사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지 몰라도 당시의 충격을 그냥 넘기고서는 결코 『몽실 언니』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몽실 언니』에는 '이상한 인민군'이 나온다. 이상한 인민군이란 착한 인민군을 가리킨다. 착한 인민군! 가슴이 철렁했다가도 숨이 꽉 막히고 현기증이 피어나는 아찔한 말이다. 정부당국의 검열로 인해 내용의 일부가 잘려나간 대목도 바로 이와 관련된 곳이었는데, 반공을 국시로 받들어 온 우리 형편에서 이런 내용은 분단 정권의 심장을 겨냥하고 장전된 '화약의 뇌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초가집이 있는 마을』에는 미군이 던져주는 과자를 쫓아다니다가 미군차에 치여 죽는 아이의 얘기가 나오고, 『점득이네』에는 한 마을에 대한 미군의 계획된 공습으로 죄 없는 양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당하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작품을 읽는 그 누구도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것은 여느 작품들처럼 작중인물의 대립과 갈등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6·25 전쟁을 둘러싼 '작품의 진실'과 '현실의 허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정치적인 긴장감이었다.
  권정생의 작품을 내가 처음 대한 것은 나이 삼십 줄에 들어선 1990년대 초였다. 이 때는 6·25 전쟁의 역사적 성격을 교과서 밖의 지식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터고, 나 자신 20대 초반부터 맑스주의에 깊이 공감하고 있던 터라 이른바 레드콤플렉스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럼 『몽실 언니』에서 받은 강한 충격은 실제로 무엇을 말함인가? 정확히 말해서 내가 받은 충격은 6·25 전쟁을 그렇게 다룬 작품이 바로 '아동문학'이었다는 데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아동문학 작품이 이만한 정치적인 긴장을 지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지금처럼 아동문학 주변에 머물게 된 이유의 하나도 실은 그 때에 받은 충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현덕, 이원수, 이오덕, 권정생 들의 작품이나 평론을 만나면서 아동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백팔십도 바뀌게 되었다. 『몽실 언니』를 읽은 내 주변의 사람들도 아동문학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게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도 권정생은 작품의 성과로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친, 그것도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킨 뚜렷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처럼 아동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는 데에 『몽실 언니』를 비롯한 6·25 소년소설 삼부작의 획기성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동문학에 대한 당시 나의 생각, 일반인의 인식은 그릇된 통념에 지나지 않았다. 이 통념은 제도 교육을 통해서 유포되고 지탱되어 왔다. 내가 교과서에서 만나볼수 있었던 아동문학은 '무지개 동산'이니 '별나라'니 하는 환상의 세계였고, '떽데굴'이니 '짝짜꿍'이니 하는 유치한 세계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격은 '착하고 부지런하고 참을성 많아야 복 받는다'는 도덕 교훈의 세계와 '반일·반공'에 투철한 나라 사랑의 세계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와 도덕 교과서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때는 도덕 교과서가 '반공 도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만행과 북한 공산군의 만행은 똑같은 빛깔, 똑같은 비중으로 우리들 증오의 대상이었고, 증오심이 높을수록 착한 어린이로 인정받았다. 교실 벽에도, 학교 건물에도, 거리의 전봇대에도, 어디를 가나 '반공=나라 사랑'이라는 표어가 넘쳐났다. 학교에서 단체로 보았던 영화나 연극에서도 북한 공산군의 만행은 어김없이 나왔고, 손에 땀을 쥐고 구경하던 우리는 국군 아저씨가 북한 공산군을 무찌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쳐댔다. 아동문학은 이 부끄러운 정권 안보의 꼭두각시놀음에 기꺼이 발벗고 나선 부류의 하나였다. 교과서 밖에서 만나보는 아동문학은 더러 다른 모습이 있었는지 몰라도, 동화책을 사서 볼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교과서로 아동문학을 만나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아동문학이란 의당 그런 것이려니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따로 고민해보지 않아서였겠지만, 아동문학은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반공 도덕'의 모습을 지닌 아동문학이 내겐 더 자연스러웠다.
  '반공 도덕'의 모습을 지닌 아동문학의 맨 꼭대기에는 유명한 강소천이 있었다. 그럼 권정생은 당시 아동문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권정생 문학의 바탕이 되는 요소는 삶의 체험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동문학의 전통과 그 시기의 동향, 그리고 문인들 사이의 교류와 같은문단의 요인도 알게 모르게 창작에 영향을 미친다. 권정생은 동란 직후의 부산 시절에 헌 책방에서 『학원』이나 『새벗』과 같은 잡지를 구해서 읽었다고 한다. 전후의 아동문학 작품에는 시대의 반영으로 전쟁 고아를 비롯해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권정생은 "강소천 동화를 십대에 읽고 얼마나 실망했는지"(좌담,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 위의 책, 322면) 모른다면서 강소천 작품의 인물한테는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불쌍한 아이가 나오더라도 어느 부잣집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는 통속 미담 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정생은 강소천보다 이원수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원수 씨는 항상 가난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얘기를 동화로 소설로 썼지요. 가난하게 살면서도바르고 착하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굽히지 않고 제 힘으로 끝까지 노력하는 주인공이 이원수 동화와 소설에서는 많이 나옵니다. 강소천 씨는 다르지요.(316면)

그러니 강소천 문학은 위안은커녕 실망만 줍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아이가 스스로 일을 성취하는 건 없고 외부에서 주어지고 만들어지기만 하니까요. 아이들이 거기 기대하다 보면 모두 실망하고 말아요. 어디 정희(『해바라기 피는 마을』의 주인공 아이; 필자주)에 해당하는 아이들이있어요?(325면)

권정생이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저고리와 엄마」로 당선되었을 때, 심사위원으로 이원수가 참여하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6·25 동란 중 사상 문제로 남다른 고초를 겪기도 하고 자기 두 딸을 잃어버리는 큰 상처를 받기도 한 이원수는 전쟁과 분단 문제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오로지 서민 약자의 편에서 작품을 쓴 대표적인 원로 작가였다. 이원수는 시대 상황의 엄중함 때문에 분단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거나 전쟁의 비극을 그려나가는 데에서는 주로 알레고리 방식인 의인동화에 의존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와서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이 요구하는"(백낙청) '민족문학론'의 지평이 새로 열리기 시작했고, 이 문제는 아동문학에서도 이원수와 이오덕을 중심으로 본격 논의되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첫 동화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평론 활동을 통해서 권정생의 문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가장 가까운 선배 문인이다. 이오덕의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이 민족문학론의 산실인 '창작과비평사'에서 1978년에 나왔다는 사실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또한 권정생은자기보다 나이는 적지만 더 일찍 문단에 나와 사회 비판적인 동화를 많이 쓴 이현주와도 친하게 지냈다. 권정생은 당시 이현주의 작품을 읽고 동화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원수, 이오덕, 이현주는 등단 직후부터 권정생 문학에 자극을 준 주요 문인들이다.  『몽실 언니』를 비롯한 6·25 소년소설 삼부작은 민족 아동문학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의 금기를 깨뜨리고 나온 사실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권정생은 이른바 제도권에 안주해온 기성 문단의 껍질을 깨고 아동문학의 창작에 일종의 정치적긴장을 불어넣었다. 이런 권정생의 문학은 1970년대 민족문학의 성과와 그 전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문학 쪽에서 1970년대는 이론으로나 작품으로나 민족문학의 성과가 가장 출중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전쟁을 어린 시절에 겪은 작가들에 의해서 한층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는데, 김원일의 「노을」이나 윤흥길의 「장마」처럼 소년의 시점으로 이데올로기 대립의 양상을 비판한다든지 화해와 용서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는 문학이 주도적으로 사회 문제를 이끌어갔다는 의미에서 '문학의 시대'였다. 정치가 모든 부문에 걸쳐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속에서 오히려 문학은 사 현실과의 긴장으로 충만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문학이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을 대신하는 중요한 인식 수단의 하나이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문학을 통해서 제도 교육의 굴레를 벗어나 조금씩 역사의 진실에 다가섰던 세대이다. 그러나 좋은 문학은 언제나 삶의 진실에 육박함으로써 사회 현실에도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이지 그 반대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운동이 독재정부와 전면전의 양상을 띠던 1980년대의 문학은 그 반대의 순서로 창작에 임하는 기풍이 한층 강해져서 문학이 사회과학의 논리에 종속되는 제한된 몫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동문학의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 글이 권정생의 6·25 소년소설 삼부작에 대해서 이데올로기의 금기를 깨뜨린 것에 무엇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금기를 깨뜨렸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다른 비슷한 작품들과 권정생 작품의 차이를 건너뛴다든지, 거꾸로 권정생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금기를 깨뜨렸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못된다는 식의 혼동이 생길까봐 무척 조심스러운데, 인간의 삶을 탐구 대상으로 하는 문학과 사회 현실을 탐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학은 서로 열려 있으면서도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해두고 싶다. 권정생의 6·25 소년소설 삼부작 중에서 『몽실 언니』가 가장 사랑 받고 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까닭도 이런 문제와 어느 정도 관련을 맺고 있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몽실 언니』 『점득이네』는 한 마디로, 6·25 동란이라는 민족의 재앙을 통과하면서 이 땅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했나 하는 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 전쟁과 이념 대립의 희생양으로 아이들과 민중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독자는 『몽실 언니』에서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는 한 인물의 삶을 읽게 된다면, 『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점득이네』에서는 전쟁과 이념 대립의 참상을 먼저 읽게 된다. 작가에겐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을 텐데도 내겐 무시할 수 없는 차이로 보인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평화롭던 한 마을이 전쟁 때문에 산산조각이 나는 과정을 그 마을 아이들의 경험을 쫓아서 그려나간 작품이다.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마을에 들어올 때마다 보복과 희생이 뒤따르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형제를 잃거나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미군이 던져주는 과자를 주우려다가 미군차에 치여 죽는 종갑이 이야기,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 아버지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면서 입영 통지를 받고 자살을 택하는 복식이 이야기는 이 마을 아이들이 겪는 비극의 정점이라 하겠다. 『점득이네』는 해방 직후부터 6·25 동란을 거치는 동안의 혼란스런 사회 모습과 그 속에서 엇갈리는 운명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점득이네 식구의 행적을 쫓아서 그려나간 작품이다. 점득이 아버지는 소련군의 총에, 어머니는 미군의 폭격에 죽고, 외갓집 식구들은 빨치산과 토벌대 또는 인민군과 국군의 틈바구니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점득이는 미군의 폭격으로 두 눈까지 잃고 누나와 함께 구걸을 하는 거리의 악사로 내몰린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점득이네』는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피가 돌고 가슴이 뜨거운 생생한 인물과 더불어 그려나갔다. 그러나 두 작품의 인물은 상당히 분산되어 있는 편이다. 『초가집이 있는 마을』에는 아이들로만 쳐도 유준이, 유종이, 금아, 금동이, 종갑이, 한직이, 화순이, 문식이, 학분이, 복식이, 정식이, 금난이, 솔송이, 인가, 진수 등 수없이 많다. 이들 모두 개성과 처지에 맞는 대화와 행동으로 실감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로는 하나의 피해군상으로 읽힐 만큼 비극적인 경험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점득이네』 역시 마찬가지다. 서술은 점득이 남매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지만, 그들이 만나는 주변의 수많은 인물에게서 오히려 더 중요한 행동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점득이 부모의 엇갈린 죽음, 의로운 삶을 택해 빨치산이 된 외사촌 승호와 그 때문에 토벌대에게 고초를 당하는 외갓집 식구들, 소문난 효녀 기생이었다가 인민군으로 변신하는 탄실, 탄실 언니를 쫓아다니며 기생이 되겠다고 떼를 쓸 정도로 천방지축이지만 깊은 속내를 감추고 있는 판순이 등등…. 이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과 이어지면서 자기 운명이 결정되는 개성적이고도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렇더라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처럼 대하 장편소설로 썼다면 모를까, 모든 인물의 갈등이 오로지 시대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은 갈등의 피해자로서 인물군상이 남을 뿐이고, 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작가의 의지에 대부분 가려지고 만다. 가혹한 역사 현실이 여러 사건으로 분산된 인물들을 압도하는 형국인 것이다
  『몽실 언니』는 이와 어떻게 다른가? 『몽실 언니』 역시 앞의 두 작품과 똑같은 시대 배경에 똑같은 3인칭 작가 시점으로 씌어져 있다. 그러나 어머니 밀양댁과 김씨 아저씨를 이야기할 때도, 아버지 정씨와 새어머니 북촌댁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상한 인민군, 난남이와 영순이, 검둥이 아기를 이야기할 때에도, 작가는 한번도 몽실을 옆으로 비껴나게 해서 서술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온갖 어려움이 끊임없이 닥쳐오더라도, 몽실이 스스로 그 운명을 결코 비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몽실 언니』는 한 시대와 굳건히 마주선 주인공의 형상으로 우뚝하다. '몽실'은 한국 문학이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주요 캐릭터 중의 하나이다.
   몽실은 해방 뒤 조국으로 다시 돌아온 귀국 동포 즉 '일본 거지'의 하나로 무척 가난한 집 딸이다. 어느 날 어머니 밀양댁은 몽실의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집을 비운 사이 몽실을 데리고 김씨 아저씨 집으로 들어간다. 먹고살기 위해 새로 시집을 간 것이다. 김씨 아저씨 집에선 처음엔 잘해주는 듯했으나 어머니가 김씨 아기를 낳자 태도가 돌변한다. 몽실은 김씨가 밀어버리는 바람에 밀양댁과 함께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다시 아버지한테로 불려온 몽실은 이번엔 새어머니 북촌댁과 함께 살게 된다. 절름발이가 된 몽실은 어수선한 시절을 착한 북촌댁과 산나물을 뜯어가며 간신히 연명한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싸움터로 불려나가고 워낙 병약했던 북촌댁은 아기를 낳고는 죽는다. 아기는 난리통에 낳았다고 해서 난남이라고 불렀다. 전쟁으로 더욱 살기가 힘들어진 시절에 몽실은 난남를 맡아 키우며 온갖 시련을 겪는다.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는 몹시 상한 몸으로 돌아온다. 몽실은 아버지와 난남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머니 밀양댁은 김씨 집에서 영득이와 영순이를 남기고 심장병으로 죽는다. 아버지 역시 앓기만 하다가 자선병원에서조차 약 한 번 쓰지 못하고 죽는다. 이제 몽실의 혈육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다른 동생들만 세 명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다시 장가를 든 김씨가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바람에 영득이 영순이와는 영영 헤어진다. 뒤에 난남이마저 부잣집 양딸로 들어가게 되자 몽실은 결국 혼자 남는다.
  어린 몽실을 덮치는 가혹한 시련은 이 땅 민중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구전민요와 민담의 세계와도 닿아 있다. 이를테면 '타박네'나 '바리데기', '콩쥐팥쥐'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수난과 한(恨)의 세계가 그러하다. 그런데 악한 계모의 자리는 현대판 전쟁으로 갈음되었다. 전쟁은 남근 폭력의 한 상징과도 이어지는 것이니 김씨 아저씨의 폭력으로 몽실이 절름발이 병신이 되는 것도 그저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절름발이는 분단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일까. 분단 시대가 끝나지 않는 한도에서 전쟁은 과거형이 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몽실 언니』는 옛이야기처럼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없었다. 그럼 외부 조력자나 구원자가 없는 시대의 몽실은 가혹한 자기 운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작가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여기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몽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 것과 나쁜 것을 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딴데 시집을 간 어머니도 나쁘다 않고 용서합니다. 검둥이 아기를 버린 어머니를, 사람들이 욕을 할 때도 몽실은 그 욕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나무랍니다.

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작가의 '머리말'에서)

  "……그렇지 않아요. 빨갱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가 될 수 없어요. 나도 우리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갔다면 역시 떡 해드리고 닭을 잡아 드릴 거여요."(68면)

  몽실은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자기 아픔만 아니라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는 이해심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몽실이 만일 자기 처지를 스스로 용납하지 못해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품었다면, 오래 견디지 못하고 금세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몽실은 착하고 순박한 심성의 힘으로 험난한 세월을 이겨나갔다. 몽실이 자기한테 가혹한 운명을 안겨주는 '더 큰 힘'에 대해서 나름대로 의문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나, '더 큰 힘'을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을 때, 그래도 몽실은 주저앉지 않고 '제 힘껏' 자기 앞의 삶에 충실했다. 어떤 경우에도 순박함을 잃지 않았고, 따라서 쉽게 부러지거나 꺽이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소·1」 첫 연)

우리 모두 힘껏
   힘껏 살아요.(「소·2」 끝 연,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1988)

 권정생은 '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 '소'와 함께, '몽실'은 온몸으로 밀어 올린 '작가 정신의 구현'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예수와 부처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작가는 몽실에게서 성자를 보고, 또 민중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고 있다. "역사는 잔인하지만 생명은 아름답다"(「목생 형님」,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159면)고 보는 작가에게 생명의 힘이란 자연 그대로의 마음 곧 몽실의 동심이었다.

  어느 한 사람, 그 어떤 위대한 몇사람의 힘으로도 평화를 만들지는 못한다. 다만 인류가 함께 하느님의 형상대로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이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이들이 이 시대의 성인들이 아니겠는가?(「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1996, 58면)

 권정생의 종교, 자연관과 인간관에 대해서는 더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역사 문제와 관련하여 『몽실 언니』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팔자주의나 운명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자칫 카프 문학처럼 '투쟁에 능동적·적극적인 주인공'을 높이 평가하다보면, 몽실은 '수동적·소극적인 인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인물의 진실한 형상이다. 게다가 작가의 생각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몽실 언니』를 연재할 당시에 권정생은 사회 정의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예수의 정신에서 이탈한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는 관점을 보인다.

 현주야, 우리 성서라는 책을 맹신하지 말자. 아닌 것은 아니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분명히 말하자꾸나. 우리는 그래서 비굴하지 말자. 하느님이란 권력 앞에 아첨하는 못난 인간이 되지말자. (…) 예수의 일대기도 태초에 있었던, 하느님의 뜻이 아닌 예수라는 한 고독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살아간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절대 미리 만들어지거나 계획된 각본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춤춘 게 아니다. (…) 현주야 용감해지거라. (…) "현주야, 너 자신이 바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창조주다!"(이현주 목사에게 보낸 1981년 3월 28일자 편지,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254-5면)

둔하게 살자고 하셨는데, 결국은 모른 척하고 살자는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 오른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편 뺨을 대주는 인간만큼 저항 정신을 가진 인간은 없을 겝니다. (…) 아무리 둔하게 살아도 저항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저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저항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 다만 제가 해야 되겠다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이 시키는 것만은 따라서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장단을 치고 벅구춤을 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 『새가정』에 연재중인 소설 『몽실언니』를 쓰다가 가끔 저 혼자서 눈물짓습니다.(전우익 선생에게 보낸 1982년 10월 14일자 편지, 위의 책, 266-7면)

 권정생은 자신의 동화를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어른들에게도 읽히게 된 것은 "아마 한국인이면 누구나 체험한 고난을 주제로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서러운 사람에겐 남이 들려주는 서러운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위안이 되고 그것이 조그만 희망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나의 동화 이야기」, 위의 책, 155-6면) 문학은 이런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독자가 설사 몽실과 똑같은 고난 체험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살면서 누구나 겪게 마련인 외롭고 힘들고 아팠던 어느 한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몽실의 아픔에 공감을 하고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몽실은 독자의 자화상이 된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이런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자기동일시는 독자에게 순정한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고 바른 삶의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점이다. 몽실이 자기 운명의 무게를 끌어안고 견디는 데서 보여준 힘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떠받쳐 온 위대한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마음,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따듯한 인간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꿋꿋한 의지 등은 시대의 난폭한 손톱과 마주쳐 늘 긴장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긴장을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감상주의에도 빠지는 법이 없이 현실을 아주 냉철하게 그려 보인다. 가난한 민중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지니고서도 현실에서는 전혀 타협이 없었던 것이다. 몽실이 뒤에 구두 수선을 하는 꼽추와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어떤 독자는 작가에게 원망도 했으리라. 그러나 이런 원망이야말로 『몽실 언니』에 대한 커다란 감동의 다른 표현이 아니겠는가. 작품을 읽다보면 몽실은 벌써 독자의 가슴 깊이 들어와 한 몸이 되어 있는 걸 느끼는데, 최고의 작품은 인물의 진실한 형상으로 해서 독자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몽실 언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사항은 서사의 완급과 원근의 조절이 다른 작품에서보다 탁월하다는 것이다. 가파르고 메마른 삶을 리얼하게 그려나가는 가운데서도 이른바 '여백'의 공간이 오롯하다.

 "윗방 아줌마한테도 아무 말도 않고 가?"
   "시끄럽다! 그냥 가면 되는 거다."
  몽실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어머니 밀양댁은 지금 진짜 도망을 치고 있다는 것을.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우물 앞 대추나무 아래까지 끌려가다가 몽실은 갑자기 밀양댁 손을 뿌리쳤다.
  "얘야, 어딜 가니?"
  "내 소꿉 살림 갖고 올게."(13-4면)
  "우리 엄마가 나쁘죠?"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인민군 여자가 되물었다.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그래, 엄마는 틀림없이 나쁘지 않을 거야."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둘은 잠시 조용히 그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인민군 여자가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125면)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현실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 '자연의 본성이 숨쉬는 동심의 세계'는 서정성을 물씬 자아낸다.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이 있는 응시'가 아니라면 이런 서정성의 여백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기존 관습에 찌들지 않은 자연인으로서 몽실의 모습은 그 자체가 동심이고 여백이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란 영화를 보았는지? 이처럼역설에 가까운 여백의 시공간에서 저녁노을처럼 피어나는 이 작품의 아스라한 슬픔은 대미를 장식하는 맨 마지막 장에서 한층 깊은 인상의 여운을 전한다. 바로 앞장은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동생 난남이 부잣집 양딸로 떠나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삼십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몽실은 난남을 보러 결핵 요양원엘 들른다. 난남이 병을 앓은 지 십년 째, 이제 모든 행복이 사라져버린 난남을 면회하고 몽실이 돌아가는 장면이 끝이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 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없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
  난남은 몽실이 절뚝거리며 걸어서 황톳길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서 있었다.
  이윽고 몽실이 그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가랑잎들이 황톳길에 뒹굴며 남았다.
  난남은 현관문 기둥을 붙잡았다. 뜨거운 눈물이 그제서야 볼을 타고 내려왔다.
  "언니…… 몽실 언니……"
  난남은 입속말로 기도처럼 불러 보았다.(286면)

작가는 여기서 난남의 시점으로 어른이 된 몽실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다른 인물의 눈으로 몽실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 끝 장면이 유일한 곳일 텐데, 이로써 몽실은 한 작은 여자아이의 형상에서 이 땅의 모든 어머니, 개똥밭으로 내몰리고 짓눌려 살아온 모든 민중의 형상으로 단숨에 끌어올려진다. 이를 정서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회한(悔恨)의 감정이다. 삼십 년을 훌쩍 건너뛴 자리, 난남의 말없는 응시는 몽실이가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회한은 아이한테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다. 몽실을 어머니의 초상, 민중의 초상, 인간 예수의 초상으로 완성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꼭 맞아떨어지는 마무리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몽실을 유일하게 비껴 서술한 맨 마지막 장면을 자꾸 곱씹고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왜 동생 난남을 통해서 몽실 언니의 멀어져 가는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게 했을까? 회한과 연민… 아스라한 슬픔… 그게 전부일까? 혹시 몽실을저 너머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 무의식의 이끌림은 없었을까? 아니, 무의식이라기보다 간절한 염원이었을지도…. 「무명저고리와 엄마」의 마지막 장면이 그랬듯이, 내겐 이 마지막 장면이 슬픈 영혼을 달래려는 작가의 씻김굿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너무나 억울했던 한 시대의 희생에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해도 좋고…. 그렇게 작가는 몽실을 저 너머 세상으로 이제 그만, 보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