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동화는 어떻게 써야 할까?


-동화작가 권정생 님을 찾아서


편 집 부


  <동화읽는 어른 >은 달마다 동화작가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동화읽는 어른이 만난 사람'을 기획하고 우리가 맨 먼저 만나보기로 한 작가는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 주고 싶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권정생 님이다.


   안동에서 내려 권정생 님이 사시는 조탑으로 가는 길. 대구까지 고속도로를 놓느라고 산을 무너뜨리고, 들을 파헤쳐 놓은 길을 지나간다. 자연의 목숨도, 사람의 목숨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쳐버리는 시대에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고, 그걸 아름다운 우리말로 살려 내는 권선생님을 만나러.
   선생님은 조탑마을 빌배산 아래에 살고 계시다. 사과나무밭을 지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자리잡고 있는 집 앞에서 선생님을 부르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방에 들어가니 책들이 온 사방 벽면에 꽉 차 있다. 책꽂이 없이 포개 놓았다. 조그만 문간방에 더 작은 방이 하나 붙어 있다. 그 방에서 글도 쓰고 잠도 자고, 문간방에서는 손님을 맞고 하시나 보다. 예전에 없던 수도가 방에 들어와 있다. 부엌살림도. 얼마 전에는 전기밥솥도 샀다며 수줍어 하신다. 텔레비전도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보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이 보는 '먼나라 이웃나라'와 '신비한 동물세계'는 꼭 빠지지 않고 본단다.

 권정생 님은 요새 서울 구로동에 있는 민들레교회 주보 <민들레교회 이야기>에 '한티재 하늘'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 '한티재 하늘'에는 이 땅에 살았던 백성들(권정생 님은 꼭 '천민'이라고 말했다.)의 이야기를 특히 여인들이 겪었던 한 많은 삶을 중심으로 하여 쓰고 있는데, 권정생 님이 사는 마을 할머니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처음에는 200자 원고지 1,500장쯤으로 쓰려고 시작했는데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그걸로는 안 되겠다고 한다.

  -저는 '한티재 하늘'을 읽으면서 줄곧 우리 어머니 삶이 생각났어요. 만일 제가 글을 쓴다면 어머니 삶을 꼭 글로 쓰고 싶었는데, '한티재 하늘'을 보니까 우리 어머니하고 꼭 같이 기구하게 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이 땅 여인들이 다들 그렇게 기구하게 살았구나 싶었어요.
    -네, 기구합니다. 기구하죠. 저는 하나도 안 보태고 들은 그대로 썼는데 그렇게 기구합니다. …… 안동 하면 양반마을이라고 하는데 … 그런 데일수록 백성들, 천민들 삶은 더 기구합니다. 양반 세도가가 마을에 하나 살면 그 둘레 서너 마을은 그 집 땅을 소작 부치며 사는 천민들이 살아요. 그 많은 땅이 모두 양반들 땅이에요. 하회는 양반마을인데 여기서 한 백리는 떨어져 있어요. 여기는 백성들, 천민들이 살던 땅인데 가을추수가 끝나면 수레에 수확한 곡식을 바리바리 싣고 모두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하회까지 갑니다. 그 줄이 끝도 없이 늘어졌다 해요.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그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걸 다 써야죠. 처음에는 1,500장쯤 쓸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안동은 양반마을인데 그런 데일수록 천민들 삶은 더 기구하다. 권정생 님을 만나러 안동에 내려오려고 '한티재 하늘'을 구해 읽고 가난과 운명에 고통받고 서럽게 살다간 사람들 이야기에 눈물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회마을에 꼭 들러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옛것, 조선시대 양반문화를 한번 감상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멋있고, 화려한 '하회마을' 문화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한티재 하늘'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다. 양반문화만이 문화가 아닌데 기와집이 줄줄이 늘어선 하회마을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진수를 맛보리라 생각했으니……. 백성들 삶에 눈물 흘린 것은 내 가슴이 아니라 머리였던 것이다.
 '한티재 하늘'을 쓰면서 있는 그대로 사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느낌을 그대로 전하려고 할머니들 말을 살려 쓰려고 하지만 요즈음은 거의 잘 안 쓰는 안동 사투리라 너무 어렵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잘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이나 네? 네? 하면서 되물어 가며 이야기를 듣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티재 하늘'에서는 안동 사투리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나는지 모른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구수한 옛이야기 한 자락 듣는 것처럼 입말이 살아 있다. 대화 한 장면 인용해 본다.

  "상구네야, 이래 있으마 어야뇨?"
  "훈재네, 저짜제요? 상구 위갓집에 가서는 안되겠제요?"
  "안되고 말고제. 그르다가 친정집꺼정 낭패보마 어얄라꼬."
  "그라만 어짜제요? 우린 어째 살아가니꺼?"
  "내가 찾아갈 데가 있어 상구 어매한테 왔니더. 이런 판에 어얄리꺼? 몰심이라도 부지하면서 상구 아배 올 때꺼정 기둘러야제요."
 
 사실 권정생 님은 '한티재 하늘'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서 서러운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몽실언니> <점득이네> <사과나무밭 달님>……들이 모두 다 그렇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 자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 주고 보살핀다. <사과나무밭 달님>에는 특히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참 따뜻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네, 나도 그게 좋습니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이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 탑이 아주머니, 똬리골댁 할머니, 중달이 아저씨… 모두 이름없이 가난하게 서럽게 살다간 사람들인데, 그러면서도 남을 해꼬지 않고 섬기며 삽니다. 사람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게 아니거든요. 몸종으로 오셨는데, 사람을 섬기러 오셨거든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어려워한다. 어른들이 감동받는 것만큼 아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른들과 정서가 달라서 일까. 아니면 소재가 너무 어두워서 일까.
 권정생 님은 말한다.

  -아이들이라고 밝고 예쁜 것만 있나요. 아이들에게 어둡고, 슬픈 현실이 있습니다. 애들한테도 희로애락이 있고, 판단력, 분별력이 있고 이성이 있는데, 아이들한테도 현실을 알려주어 알게 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게 해야죠. 우리와 같은 역사 현실에서 아름답고 이쁜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70년대 애들은 병아리 죽은 이야기만 해 줘도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사람 죽은 이야기에도 반응이 없어요. 어떨 때는 너무 영악해서 참 밉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들한테 착하게 살라고만 이야기하기가 무섭습니다. 동화 쓰는 게 그래서 어렵습니다. 우리 시대에 동화는 어떻게 써야 합니까?

 "우리 시대에 동화는 어떻게 써야 합니까?"
 큰 숙제 같은 질문을 가슴에 담고 일어섰다. 마당에 내려 오니 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모여든다. 10년을 같이 살아 온 개 뺑덕이가 딸을 낳고, 그 개가 또 새끼를 두 마리 낳았는데 얼마 전에 신부님이 강아지 한 마리를 또 가져다 주셨단다. 모두 다섯 마리다.
 조금 걸어 나와 사과나무 밭이다. 여기에서 권정생 님은 똬리골댁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중달이 아저씨를 보았겠지. 문둥병이 들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해룡이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아들, 며느리, 손자를 차례차례 남의 나라 사람들에 빼앗긴 종갑이 할아버지의 한 많은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몽실언니, 점득이네 이야기도. 선생님의 어린 날 이야기인 '쌀도둑'에서 배가 고파 쌀을 훔치던 가난한 어린 형제한테 쌀을 퍼주던 방앗간집 아저씨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그 방앗간이 있던 곳도 바로 여기 앞이었다는데…….

 돌아오는 길에 하회마을에 들러 강을 본다.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을 보면서 '한티재 하늘'에서 딸에게는 한많은 노비 생활을 계속하게 하지 않으려고 달옥이를 도망가게 하고 강에 빠져 죽은 달옥이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지나간 시절 - 사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 누이들의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진짜 이야기꾼 권정생 님을 생각한다.  "우리 시대 동화는 어떻게 써야 합니까?"하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면서.▣(취재 : 이송희)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1995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송희님은 우리 회 사무총장 직을 맡고 있고 옛이야기 분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