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슬픈 이야기와 통일의 염원
- 《점득이네》를 읽고

김중철

 

1.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

이제 또 8월 15일이 다가온다. 우리 나라가 36년간의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날이다. 벌써 반 세기가 다 된 세월이 흘렀다. 이 지나간 8.15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일은 그때의 일이 우리의 삶과 전혀 연관 없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전혀 무관하게 생활하고 있는 무감각적인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고, 또한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진실을 다시금 밝히는 일이 되기에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5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해방이 가져온 분단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매우 소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 역시 분단이 가져온 정치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하겠으나 아동 문학에서는 또다른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아동 문학의 대상인 아이들에게 분단의 의미를 알리는 게 전혀 의미가 없다는, 아이들의 지적 관심의 범위를 지극히 좁게 보게 보는 견해와 아이들에게 어두운 현실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렇다. 아동 문학에 짓눌려 있는 이러한 생각들은 너무나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이 살아 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는 매우 좁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아동 문학 작품이 아이들의 생활의 단면만을 그리는 생활 동화나 현실을 떠난 공상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아이들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권정생 님의 《점득이네》는 해방 이후에서 6.25 전쟁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우리 나라의 분단이 가져온 슬픔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소년소설이다. 《점득이네》는 《몽실 언니》에 이은 작품으로, 《몽실 언니》보다 분단의 역사적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단의 슬픔을 더 비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2. 가난과 이해가 안 되는 의문들

우리 나라의 현실을 압축한 분단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지나온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아이들에게 알려 준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것을 작품 속에서 감동으로 전달하기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분단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어른의 시각으로만 표현되고, 자칫하면 설명 투의 가르침이 되기 십상이다. 권정생 님의 《점득이네》는 이런 점에서 아주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민족의 비극과 민족의 아픈 현실을 아주 탁월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점득이네》는 《몽실 언니》와는 제목부터 다른 이미지를 주고 있다.《몽실 언니》 가 몽실이라는 한 아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데, 《점득이네》는 점득이, 점례, 점득이의 부모, 승호네 가족까지를 말하고 있는 집단성을 드러내고 있다. 《몽실 언니》가 이야기의 초점을 단일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진한 슬픔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분단의 민족적인 고통이 몽실이의 슬픔과 효과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단점이 보인다.《점득이네》 는 주인공이 여러 명인 셈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분단이라는 문제를 훨씬 올바로 다룰 수 있다고 본다. 즉,《점득이네》 는 점득이네 집안과 판순이네 집안의 변화를 통해 민족 전체의 고통을 아이들의 눈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점득이네의 슬픔은 불행히도 8.15 해방으로 시작된다. 8.15 해방이 되어 만주에서 지내던 점득이네는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조국 땅을 밟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게 된다. 왜 해방된 조국에 우리 민족이 마음대로 올 수도 없는 것일까. 이 뼈아픈 물음은 이 작품 후반부에서 점득이가 깨닫게 된다.
   고향에 힘들게 온 점득이는 사촌형 승호를 만나게 된다. 점득이에게 승호는 이해되지 않지만 계속 점득이의 머리 속에 남고 결국 그 말을 구체적으로 알아 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을 한다. 아이들에겐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였고, 오히려 조국 땅에서의 가난함이 고달프고 서럽기만 하였다. 점례와 점득이는 그 가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 본다.

"엄마, 우리도 두부 장사 하지 말고 농사지으면 좋겠다."
점례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점득이는 후딱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얼른 쳐다봤다.
"농사지으려면 땅이 있어야지."
........
"우리는 왜 땅이 없어?" (49쪽)

배가 고픈 아이들에겐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것이었다. 마을 지서가 불타고, 토벌대 군인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아이들의 머리 속엔 먹을 것밖에 없었다. 점득이는 한 숟가락의 조밥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외갓집에 가기도 하고, 떡장사한다는 말에 기뻐하기도 한다.
   외갓집의 신세를 지기 싫어 점득이네는 결국 장터 마을로 이사 가게 된다. 그곳에서 판순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점득이와 점례, 그리고 점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판순이의 대화와 행동은 이 작품의 내용을 아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모과나무골에서 떠난 점례와 점득이는 무슨 일에든 적극적인 아이 판순이를 따라다니며 지낸다. 판순이는 남의 밭에서 감자를 캐어 점례, 점득이에게도 주기도 하고,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시체를 보기도 한다. 또한 '돈에 팔려 기생이 된' 추월 언니를 찾아가기도 하는데, 이런 판순이의 행동은 아이들의 또다른 모습의 한 유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점득이네와 다른 사람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배고픈 세월이 이어질지,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소설의 시기를 둘로 나누어 생각할 때, 6.25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의 이야기가 앞 부분이다. 그 시기의 점득이와 다른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늘 배가 고팠고, 또한 승호의 행동으로 빚어지는 국군과 토벌대의 대립에 대한 생각으로 늘 궁금하고 답답하였다. 이 전반부의 설정으로 이 소설은 단순히 6.25 전쟁을 다룬 전쟁 소설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 앞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보인다. 점득이네뿐 아니라 다른 이웃 사람들 모두 가난한데, 그 이유로 '땅이 없다'라고만 하였다. 그럼 누가 땅을 가지고 있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땅이 없는가. 이 시기의 우리 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와 민족 반역자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토지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었다. 어린 점득이가 알기엔 너무나 어려운 내용이지만 적어도 어른들의 대화에서 이 부분을 놓친 것은 이후의 글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지게 한다. 승호와 마을의 착한 청년들이 왜 '빨갱이'가 되었는지도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해방 이후의 토지 문제를 다루지 않고 가난만을 부각시켰을 때 독자들은 민족의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보게 된다. 아니면 그 때에는 우리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3. 민족의 비극

전반부에서 여러 번 다루어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끼리의 대립이 이제 후반부에서는 그 도를 넘어 같은 민족끼리의 큰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침내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점득이네의 불행과 다른 사람들의 똑같은 불행이 점점 더해가고, 이 과정에서 전반부에서 아이들이 지녔던 여러 가지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 가게 된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마을에 오자 세상은 바뀌었다. 아이들은 멋모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탄실(추월 언니)은 인민군이 되고, 교회의 장 목사는 인민군에 맞선다. 그러나 곧 이어 이번에는 국군 부대가 미군과 함께 마을에 나타난다. 미군과 인민군의 싸움이 있고 난 후 승호는 잠시 집에 들렀다가 국군에게 잡히게 된다. 이 때 외숙모가 죽고, 끌려간 승호도 처형되게 된다. 그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을 강둑에 모이게 하고는 비행기 폭격을 한다. 결국 점득이네는 어머니를 잃게 되고, 점득이 자신은 장님이 된다. 점득이는 이제야 분명히 깨닫는다.

"소련 군인이 아버지를 쏘아 죽인 것처럼 미국 군인이 엄마를 죽였어."(176쪽)

작가는 점득이가 장님이 되고, 어머니가 죽고,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장면을 통해 이 비극이 민족 전체의 비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비극은 점득이의 말에서 드러나듯 그 원인은 미국과 소련의 외국에 있다고 본다.
   이 관점은 《몽실 언니》에서 보이는 모호함을 벗어난다. 몽실이는 우리 민족의 비극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아버지, 아니어요.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따로 있어요.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쁘게 만들고 있어요. 죄없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건 그 누구 때문이어요..."(《몽실언니》, 202-203쪽)

《점득이네》는《몽실 언니》 에서 말하는 '그 누구'가 이제 미국과 소련이라는 나라에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점득이가 이전에 들었던 할머니, 승호의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들이 이제 점득이의 마음 속에 이해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해방이 된 게 아니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점례와 점득이는 두려운 마음으로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해방되었다면 왜 아라샤놈(소련놈)이 사람을 죽이는 거야. 이젠 왜놈 대신 아라샤놈이 조선을 차지한 거요. 이남은 미군이 차지했고, 주인이 바뀐 거지."(14쪽)
  
"점득이네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단다...... 그게 모두가 나라가 굳건하게 서 있지 못한 탓이야."(44쪽)

4. 자립의 자각과 고통

이제 아이들은 비극을 체험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 가는 자주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어쩌면 승호가 집을 뛰쳐나갔 듯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길들여진' 삶을 버리고 힘들고 고통스런 길로 나아간다.
   점례, 점득이, 판순이는 장 목사를 따라 바닷가 고아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너무나 많다. 이 아이들은 고아원(미국이 만든 곳)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 둘씩 이곳을 떠난다.
   장님인 점득이와 창덕이는 노래를 잘 불러 미국으로 보내 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점득이는 이 개인의 행복이 보장되는 길을 버린다. 어머니를 죽인 미국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창덕이도 미국에 가기는 하지만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제 아이들은 고아원 원장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원장과 싸우고 고아원을 떠난다.
판순이와 점례, 점득이도 무작정 고아원을 떠난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만을 지닌 채. 그러나 그 자주적인 행동은 곧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이겨 내야 한다. 이 아이들의 굳은 의지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약한 점례가 피난민 박씨 아저씨에게 하는 말은 아이들의 놀라운 변신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살핀다고 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고 학대하고 있어요. 팔아먹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병신도 만들고....."(209쪽)

".....판순이네 할머니도 오빠도 우리 엄마도 비행기 폭격으로 죽었어요. 아버지는 소련군의 총에 맞아 죽고, 점득이는 눈을 잃었어요. 우린 어른들을 믿지 않아요. 우리끼리 살아갈 거예요...."(201쪽)

점례의 놀라운 변신은 앞으로 이 민족의 비극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밟아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 힘으로 얻지 못한 해방, 남과 북으로 갈리운 분단의 현실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분단을 만든 사람들)에 기대지 않는 우리 민족 스스로 만들어 가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다.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활해 간다. 판순이와 점례는 석탄을 팔러 나가고, 장님인 점득이도 껌팔이에 나선다. 그 세월은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결국 판순이는 국밥집으로 가고, 점례와 점득이만 남는다.

5. 통일의 꿈

점례와 점득이는 자신들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왔다. 휴전 협정이 이루어져 전쟁이 쉬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고향을 찾아가는 꿈. 그러나 점득이네가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듯 이번에는 휴전이 되어도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그 꿈은 깨어진 것이다. '한 가닥 걸었던 희망이 끊긴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해방이 우리 힘으로 얻어지지 못했듯이 강대국이 만든 분단도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점례와 점득이는 고향에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는다. 점례와 점득이는 몸이 아프고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통일의 염원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점득이네>는 오랜 세월이 흘러 판순이가 길거리에서 보는 두 장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우리의 분단 현실이 이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끝맺음한다. 장님인 점득이가 고향에 돌아갈 꿈을 그리며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고, 이어 판순이의 아들 한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 점득이와 점례의 꿈이 한수에게로 이어진다. 점득이의 노래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그 노래는 어느덧 다음 세대로 통일의 열망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 1993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김중철 선생님은 우리 회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