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심명숙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 하루 종일 침침한 도서관에 처박혀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나요? 뒷골은 쑤시죠, 가슴은 답답하죠, 숨은 턱턱 막히죠,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더구나 저처럼 수다 떨기 좋아하고 깡총깡총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요.
   그 어느 날, 그 날도 아마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거예요. 나는 강남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갔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 도서관이라는 곳이 그렇게 편한 곳이 아니잖아요. 컴퓨터 앞에 한참 줄 서서 대출 번호 확인하고 대출대에 가서 또 한참 기다려야 책 나오고 다시 복사하는 곳에 가서 한참 줄서야 복사하고…. 아래층 위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그 일을 몇 번 되풀이하다보면 정말 지치죠. 그러나 그 정도면 다행이게요. 12시에서 1시까지는 점심 시간이라고 대출 안 해주죠, 툭하면 마이크로필름을 보는 기계는 망가져 있거나 사람이 꽉 차서 앉을 수도 없죠, 기껏 찾은 책은 귀중본이라고 안 보여주죠, 어쩌다 찾은 자료도 읽으려면 보이지도 않죠, 이제 좀 도서관에 익숙해지려나 싶으면 문 닫는다고 나가라고 하죠. 정말 하루 종일 도서관을 돌다보면 돌아버릴 것 같은 때가 많아요.
   그 날도 나는 머리가 욱신거리도록 도서관을 오르락 내리락 했어요. 무슨 자료를 찾으러 다녔는지는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아요. 그저 참 머리가 아팠던 기억만 있어요. 그러다 도서관 문 닫기 몇 십 분 전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문학잡지를 돌아보고 있었어요. 아!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 몇 편을 발견했어요. 권정생 선생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작가거든요. 권정생 선생님은 생각만 해도 힘들던 일이 모두 사라져요. 한 하늘 밑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고맙고 기쁘지요. 그런 분의 시를 발견하다니, 그것도 아주 해학이 넘치는 시를…. 저는 너무 기뻐 눈물을 찔끔거리며 시를 읽고 또 읽었어요. 그 날의 피로가 모두 달아나 버렸지요.
  그런데 이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에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시들을 읽고 또 읽다가 그만 정신이 없어 그 날 찾은 자료를 잃어버렸어요. 아! 황당. 그 날 제 기분이 좋았을까요? 나빴을까요?  
   제가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사랑하는 이유? 그것은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권정생 선생님도 그 가운데 한 분이죠. 힘들게 찾은 자료를 잃어버리고도 나를 즐겁게 한 그 시들을 여러분도 읽어 보실래요? 이 시들을 읽고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해지면 좋겠네요.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1)

주중식한테서 소포 하나가 왔다.
끌러보니 조그만 종이상자에 과자가 들었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가 아니고 집에서 만든 것 같다.
소포에다 폭탄도 넣어 보냈다는데……
잠깐 동안 주중식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했다.
십 년이 넘도록 알고 지냈지만 원한 살 일은 없는 것 같다.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니 아무렇지 않다.
좀더 큰 것을 집어 먹어봐도 괜찮다.
한 개를 다 먹고 다섯 시간 지나도 안 죽는다.
겨우 마음이 놓인다.
주중식과 나 사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돈독함이 확인되었다.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학년인 도모꼬가
일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정축년 어느 날 일기

그 집엔
십 년이 넘은 늙은 개 한 마리와
늙은 인간 하나가 살고 있었다.

늙은 개는 늙은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감시자가 되어 있었다.

늙은 인간은 오래 전부터
어디가 탈이 나서 그런지
자주 몸에 열이 나서 눕는 날이 많다.

늙은 개가 쯧쯧 혀를 차면서
―이 인간아
전생에 무슨 못할 짓을 했기에
날이면 날마다 아파쌌는거야?

자존심 상한 늙은 인간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디 아파서 열이 나는줄 아냐?
이 똥개야!

이래 봬도
평생 정의에 불타는 가슴으로 살다보니 그런 거다!

늙은 개가 또 혀를 차면서
―저 인간이 이젠 머리까지 돌았군
한다.
(권정생, 계간 《사람의 문학》, 1997 가을호)▣

(이 글은《동화읽는어른》2000년 6월호에 실린 글이다. 심명숙 회원은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