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낳아준 것 고마워, 언니가 참 좋거든

김미자


    95년에 처음으로 《몽실 언니》를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네 번 읽었다. 처음에 내용만 따라가며 읽을 때는 어린 나이에 별별 모진 일을 겪어야 하는 몽실이가 너무나 가여워서 내 어린 날 받았던 어줍짢은 서러움까지 굳이 꺼내 가며 많이 울었다. 몽실이에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 끌려 정신없이 읽으면서도, 숨 좀 돌려 살 만하면 불행해지는 힘든 몽실의 운명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느 때는 옆에 공책을 놓고 1947년 몽실이 나이 일곱 살에 엄마를 따라 의붓아버지에게로 가는 것부터 50년에 전쟁을 치르고 54년 난남이를 부잣집 양딸로 보낼 때까지 이야기를 표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다 해보아도 몽실이 나이 열네 살이었다. 몽실이 일곱 살에서 열네 살까지 살아낸 삶이 우리 나라가 견디어 낸 역사와 꼭같이 험하고 아팠다.
   몽실이가 태어나 살았던 시대는 그 어떤 아이라도 피할 수 없는 불행이 도처에 널려져 있었다. 그 불행은 시간만 나면 기회만 되면 어떤 이유로든지 아버지 어머니에게, 남자 여자에게,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덮쳤다. 이미 온 나라가 땅 끝까지 불행했기 때문이다.
   몽실이는 이미 아홉 살 때부터 '팔자' '운명'을 입에 올린다. 새아버지가 생기고 다리를 다치고 새어머니가 생기고, 전쟁이 나고 남과 북이 나뉘고 하는 것이 그저 운명 지어진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에 '팔자려니, 운명이거니' 하는 말을 나이 많은 노인이 했다면 팔자나 운명은 거역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조용히 이에 따르라는 뜻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감히 아홉 살 난 아이가 팔자와 운명을 얘기한다. 끝없이 자기의 삶에 물음을 던지다가  '그래, 그래도 살아야지, 이겨내야지.'하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몽실은 힘을 다해 산다. '팔자'나 '운명'이 어울리지 않는다.
   몽실이 마음 속에 있는 살아가려는 의지, 가족으로 만난 부모와 동생을 끝까지 보살피려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몽실이에게 일이 닥칠 때마다 선택을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또 하나 몽실이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보아 넘기질 않는다. 흔히, 없이 자란 아이가 가지는 특징, 눈치가 빠른 것하고는 다른 섬세함이 몽실이에게는 있다. 새아버지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다 절름발이가 되고, 난남이 젖을 얻어 먹이며, 거지가 되어 남에게 동냥을 하며 눈치만 생긴 게 아니었다. 몽실이는 똑똑한 아이, 만만찮은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 생활 속에서도 삶을 조곤조곤 따져보고 묻고, 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
   배고파 새아버지를 만나 사는 어머니, 자기를 한없이 힘들게 하는 무능력한 아버지, 불쌍한 새엄마, 자기 다리를 병신으로 만든 새아버지, 인민군, 양놈에게 몸을 팔아 생활하는 금년이 아줌마의 삶까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아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몽실이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영리한 몽실이는 자기 자신에게만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길에서 꽃 파는 아이를 만나 그 아이에게서 들은 '남의 것은 공짜로 얻지 말라'는 말을 가슴에 꽂아두고 내내 꺼내 자기를 비춘다. 깡통을 들고 거지로 나갈 때, 동네 사람들에게 차비를 얻어 자선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도 그 아이의 말을 생각한다. 몽실이는 그런 아이이다. 비록 몸은 절룩거리는 병신이지만 마음을 곧게 하고 자기를 지켜 간다.
   나는 이 동화 처음에서 끝까지 몽실이가 소리없이 자기를 지키는 힘을 느낀다. 30년이 지나 곱추 신랑을 만나 살아도 몽실이가 놓지 않는 그 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더 이상 헤어질 이유가 없는 가족이 몽실이에게 있다. 엄연히 몽실이가 선택하고 책임질 가족이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힘겹게 소리 없이 자기를 지키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엄마로 아내로 언니로 그냥 남들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병원에서 요양중인 난남이는 언니 몽실이에게 "엄마가 날 낳아준 것 고마워, 언니가 참 좋거든." 이라고 말한다. 몽실이 삶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주 폭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날 낳아준 것 고마워, 언니가 참 좋거든."▣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2000년 6월호에 실린 《몽실 언니》를 읽고 난 느낌글이다. 김미자 회원은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