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같기만 한 몽실언니

성숙경

 

1984년에 출판된 동화를 1997년에야 읽었다. 신입회원 교육을 받으며 처음 권정생이라는 동화작가를 알게 되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새삼 동화를 읽으며 동화가 아이들만을 위한, 단지 쉽고 가벼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나이를 초월해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
   곱추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의 뒷모습부터 떠오르는 건 내 나이 탓일까?
가난 때문에 몰래 다시 시집을 가는 밀양댁이 밉기보다 안타까웠고, 그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목에서 컥컥 막히는 덩어리를 삼켜야 했던 일곱 살짜리 몽실이 때문에 내 목울대도 딱딱해져야 했다. 불행은 왜 그리 빠르게, 커다랗게 다가오는 걸까? 새아버지에게 떠밀려 다리가 부러지는 몽실은 아픔을 참으며 소리 죽여 울며 부엌 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 그 숨죽임이 화난다. 너무 속상하고 가여워서 소리 지르며 싸우고 싶은 맘이 굴뚝 같다. 절름발이가 된 것도 서러운데 이젠 친엄마와도 생이별을 하게 된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몽실이는 절뚝거리면서 부지런히 걷는다. 평생을 그렇게 바삐 힘겹게 걸어야 하는 걸 알기나 했을까?
   만약 나에게 아버지가 두 명이고, 어머니도 두 명이라면? 나라면 반항하며 가출을 했을까? 내 처지를 비관하며 무기력하게 미움을 키워갔을까? 몽실이 엄마는 '여자는 남편과 먹을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지만 몽실이는 생각한다. '신세 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낫다.'고, '왜 여자는 남자한테 매달려 살아야 하느냐'고. 몽실은 삶을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몽실이는 난남이와 영득이와 영순이, 이 동생들을 괴롭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 적이 없다. 그런 운명을 탓하며 누굴 원망하거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마주 보며 '사람은 각자가 자기의 인생이 있다고 했어'한다.
   전쟁은 몽실이를 더욱 외롭고 불쌍하게 만든다. 새엄마가 죽고, 갓난 동생에게 젖 대신 입으로 쌀을 씹어 암죽을 끓여 먹이는 언니.
   30리를 걸어 찾아간 고모네 집은 불타고 고모는 불구덩이에서 죽고, 하나뿐인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을까 봐 울지 않겠다던 몽실이는 꺽꺽 울고 있었다. 누구라도 옆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게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을 지치고 인색하게 만드는 전쟁 속에서도 몽실이는 훌쩍 크는 것 같다. 자신들도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지만 힘껏 도와주는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몽실은 신분이나 이득을 떠나 사람으로 만나면 누구나 착하게 사귈 수 있다고 느낀다.  
   안스러운 생각에 식모살이지만 먹고 잘 수 있는 곳을 만나 차라리 안심이 되었는데, 전쟁에서 부상당한 아버지가 돌아오고 몽실이는 살기 위해 깡통을 들고 진짜 진짜 거지가 되어 밥을 구걸한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이철지 엮음/종로서적》에서 만난 선생님 생각이 나서 목구멍이 뜨끔뜨끔 해 온다. 깡통을 들고 저녁 먹는 집 앞에서 "밥을 좀 주세요." 그 말이 어떻게 떨어질까?
  '콘크리트 다리 밑에 가랑잎처럼 구르며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
  그런 거지의 삶을 살았던 선생님. 몸은 더럽고 쓰레기 같을지라도 그 영혼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람. 생쥐 먹이를 방 한 구석에 마련해 주는, 이 세상 외롭고, 약하고, 가난한 것들의 친구. 진정으로 서러움과 배고픔과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쓰는 가슴 아픈 진실한 이야기.
   어쩜 나는 몽실이가 선생님 같기만 하고, 이야기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이글은 《동화읽는어른》2000년 6월호에 실린 《몽실 언니》를 읽고 난 느낌글이다.성숙경 회원은 어린이부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