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권정생 글/ 신혜원 그림/ 산하

이주영

이 동화는 《하느님의 눈물》《몽실 언니》《점득이네》《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같은 귀한 동화로 우리와 가까운 권정생님이 다시 우리에게 보내준 마음의 선물이다. 《하느님의 눈물》을 유년 동화로 유치원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는 동화라고 보며, 《몽실 언니》를 초등 학교 중ㆍ고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동화라고 볼 때 이 동화는 초등학교 저ㆍ중학년부터 읽기에 좋은 동화라고 말하고 싶다. 또 《몽실 언니》《점득이네》《초가집이 있던 마을》이 분단과 1950년대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배경으로 올바른 삶을 바라는 이야기를 쓴 동화라면, 이 동화는 《하느님의 눈물》에 이어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세상을 바라는 글쓴이의 꿈을 담아 놓은 동화라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데서 이 동화는 시작한다. 하느님의 물음에 예수님은
   “답답한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세상에서 한 30년쯤 살다가 올라온 지도 벌써 2000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세상은 점점 어려워만 가고 있으니까요.”하면서 하느님을 따라 땅 위로 온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쪽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돌풍을 만나 동쪽으로 날려와 우리나리 경상도 어느 들판 수박 밭에 떨어졌다. 갑자기 우박과 함께 땅에 떨어지면서 수박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농민들에게 원망을 듣는다.
  하느님의 이러한 세상살이 시작을 보면 최근 쏟아져 나오는 명랑동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하느님의 이러한 서툰 세상살이 때문에 빚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은 얼핏 어릿광대 같은 우스개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장난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까닭은 무엇일까? 우스개스런 하느님의 서툰 행동은 사람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람의 전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난 집을 지키며 농촌에 남아 있는 윤 노인과, 아무리 어렵더라도 농촌을 살려보겠다고 남아 있는 윤 노인의 조카를 통하여 농촌 현실을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글쓴이가 농촌에 살고 있고, 지금까지 쓴 동화가 대부분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경상도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곧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고 서울로 온다.
   예수가 자리잡은 곳은 서울 어느 변두리 철거민 마을이다. 서울에서도 변두리 철거민 마을을 하느님이 세상살이를 보고 겪어 배울 곳으로 고른 까닭은 책머리 ‘글쓴이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하느님은 지금도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곁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사실 것입니다.’
   이러한 글쓴이의 종교관, 믿음이 하느님을 도시 변두리 철거민 마을에서 살게 했다. 이는 곧 글쓴이가 오늘의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고,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아끼는 세상을 만들어 가장 먼저 하느님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로 도우며 아끼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글쓴이는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결코 서둘지 않고, 흥분하거나 노하지 않고, 핑계를 대지도 않는다. 핑계를 만드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뿐이다. 또한 억지로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글쓴이가 살고 있는 안동 농촌 사이로 흐르는 냇가 언덕에 자리잡은 집, 토지대장에도 없는 손바닥만한  땅에 지은, 울타리도 없는 집 작은 방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을 맞으며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이 동화는 글쓴이가 쓴 다른 이야기보다 훨씬 더 직선으로 이야기하고 단순하다. 하느님과 예수님이 수박밭을 망가뜨리고 농부에게 잘못을 빈다. 이웃 할머니의 성화에 끌려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전도를 받기도 한다. 예수님이 청소부로 취직하고, 철거를 당해 강가로 쫒겨가 움막집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노점상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구 자나 한 자나 들고나보니 구세주가 와도 구속될 판’이라는 각설이 타령을 바꾼 어떤 노가바 한 귀절이 생각난다.
   등장인물들도 성격과 하는 일이 아주 분명하다. 하느님, 노총각 아들 예수, 북쪽에 남아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혼자 사는 이산가족 할머니 과천댁, 부모가 없는 떠돌이 여자 어린이 공주가 모여 한 가족을 이룬다. 하느님은 땅으로 내려올 때 모든 능력을 버리고 온,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다. 아무 일도 할 줄 몰라 아들 예수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나마 몸이 약해 병들어 눕기를 잘 한다. 삐치기도 잘 하고, 빨리 하늘나라로 가야 한다고 되풀이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이 안돼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찔려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불안해 하고, 그 때마다 사과도 잘 한다. 이 동화를 월간잡지 《새가정》에 두 해가 넘게 연재를 했는데 그 때 독자들이 ‘하느님을 욕되게 한다’는 꾸지람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권능을 내놓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땅에 내려온 하느님이라면 그런 하느님의 성격과 모습을 잘 갖췄다고 본다.
   빨리 통일이 되기만을 바라며 사는 과천댁 할머니. 이 할머니도 어렵고 힘든 역사를 살아오고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어머니의 성격과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혼자가 되어 떠돌다 예수를 만나 한 식구가 된  공주는 곧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바램을 나타낸다. 하느님 마음을 가장 잘 느끼고 안다. 그리고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믿을 뿐 아니라 바로 이런 할아버지가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이다.
   글쓴이는 어린이, 어린이 중에서도 아들을 좋아하는 풍토 때문에 천대받는 여자 어린이, 그 여자 어린이 가운데서도 혼자가 되어 떠돌이가 된 작은 여자 어린이를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하느님의 구원을 받는 통일 세상을 증거하려고 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쓸데없는 말이 되었습니다.’고 ‘글쓴이 말’에서 한 말을, 어린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아직도 쓸모있는, 앞으로 더욱 쓸모있는 말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때 까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걸 ‘공주’처럼 보고, 믿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여자 어린이에게 ‘공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무래도 불만스럽다. 그동안 다른 동화에서 쓴 주인공 이름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화를 다 읽고 나니 글쓴이가 ‘공주’라는 이름을 쓴 것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어린이, 어른 모두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199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주영 선생님은 우리회 이사장 직을 맡고 계시며 서울 삼전 초등학교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