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나무가 아닌 조금은 노란 떡잎에게

최진욱

 

우리 속담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속담이 하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어려서 읽었던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비범한 행동을 했다. 그런데 어릴 적 내 모습은 남들보다 건강한 몸도 아니었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이러기에 언제나 자신감이 없었고, 내가 잘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속담대로라면, 위인전에 쓰여진 대로라면 나는 절대로 위인도 될 수 없었고, 떡잎도 조금은 노란 편이었다. 어찌 어찌해서 소 뒷걸음 치듯이 들어간 지방 전문대학에서 당시 시대 분위기에 따라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부터 내가 결코 이 사회에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진 항상 쓸모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자괴감이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어느 동화에서 소재로 다루지 않았던 정말 어디에도 쓰이지 않고, 소용없는 천덕꾸러기 강아지똥을 소재로 삼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보았던 선생님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골수까지 치밀어 오르는 결핵과 싸우며 거리를 구걸하며 다녔을 선생님의 삶을 생각하며, 어릴 적 동네를 떠돌던 거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람이 살아가는 단계에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삶의 바닥에서 바라보니 어느 것 하나 귀한 존재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기에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을 강아지똥, 흙덩이가 중심 인물이 되고, 평소엔 하찮은 것 같았던 참새와 병아리 닭이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강아지똥보다 귀한 것이 되었다. 또한 강아지똥이 껴안아 꽃을 피우는 민들레 역시 평소에 우리 길가에 흔히 피는 꽃이다. 아니 너무 흔해 길가는 이들의 짓밟힘 속에 피어나는 끈질긴 생명을 가진 꽃이다.
   강아지똥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제일 밑바닥에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에, 선생님의 삶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강아지똥을 보면서 내 삶을 생각해 본다. 길가에 아무렇게 피는 민들레가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민들레 꽃을 피우는 것이 강아지똥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처럼, 어릴 적 조금은 노란 떡잎이었다 할지라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서로의 위치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 갈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은《동화읽는어른》2001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최진욱 회원은 마산 창원 동화읽는어른 연합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