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월, 아름다운 삶
《한티재 하늘》/권정생 지음/지식 산업사

박남정

《한티재 하늘》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쓴 최초의 대하소설이다. 작가가 20여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이 소설은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스케일로 총 4부 10권 가량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먼저 출간된 1부 두 권은 동학혁명 직후인 1896년부터 일제의 폭압정치가 극에 달했던 1937년까지의 이야기다.
  《몽실 언니》나 〈강아지 똥〉, 〈하느님의 눈물〉등 권 선생의 동화에는 늘 그늘지고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외로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작고 힘없지만 질긴 생명력과 사랑으로 충만한 동화 속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 하찮은 존재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든 생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가슴 서늘하게 깨우쳐주곤 한다.
   작가의 필생의 역작인 《한티재 하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베 길쌈처럼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경북 안동의 삼밭골이 무대. 작가는, 우뚝한 초가집 한 채 없이 나즈막한 돌담집들이 조갑지처럼 붙어 있는 이 마을에서 알뜰살뜰 일해서 처자식 굶기지 않고 등따숩게 살아가기만 해도 그만인 사람들이 파란의 역사를 어떻게 버텨나갔는지를 그리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오로지 목숨뿐인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에는 기울어가는 가문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애쓰는 대찬 여장부도, 격동의 시대에 등장함직한 혁명적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같은 작고 힘없는 사람들, 그래서 더욱 '그립고 보고싶고 불쌍한 사람들', '불쌍한 목숨들'의 이야기가 있을 따름이다.

 그립고 불쌍한 목숨들

 첫아이가 딸이라 분하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분들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 대부분은 이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구석으로 밀려나 살아야 했던 이들이다. 열한 살 나이에 민며느리로 가야 했던 귀돌이, 자식들이 하도 죽어 낳자마자 실겅(선반)에 얹어두었다 해서 실겅이라 불린 사월이는 먹을 것이 없어 딸들을 차례로 남의 집 종살이로 보내다가 종국에는 자신도 종으로 들어가고 만다. 애비 모르고 자란 딸만이라도 종살이를 면하게 해주려고 스스로 얼음물에 빠져죽은 오월이와 어매의 죽음으로 보면서도 도망쳐야 했던 달옥 등은 숙명처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내게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내 할머니와 같은 조선의 여인들을 만나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느꼈던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힘겨움의 뿌리를 찾은 느낌이다.
   격동의 시대는 여자들이 지닌 태생적인 슬픔에 또 다른 고난을 보태어 그 무게를 더한다. 험한 세월은 남자들을 밖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었거나 살았거나 많은 여자들은 남편이 없는 살림을 이끌어가야 했고 그래서 겪는 고달픔과 서러움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빤란구이(의병대)를 도왔다가 목숨을 잃은 남편 때문에 고향을 등진 정원,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갔다 전사한 복남은 그야말로 시대에 남편의 목숨을 빼앗긴 여인들이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 때문에 과부 아닌 과부로 마음 고생하는 영분이, , 노름빚에 몰려 삶의 터를 빼앗기고 일본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순도 남편 부재의 고단한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없으니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어려운 인생살이 길잡이도 되어주고 동무도 되어줄 아배가 없으니 삶은 그만큼 더 흔들리고 힘들다. 동학혁명군에 가담했다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이 묻혔다는 일월산에 찾아가 "아배요"를 부르짖으며 "인생살이 아무 뜻도 없이 이릏기 그저 살아도 되는지" 목놓아 우는 서억이와 밖으로만 떠도는 아배를 용납할 수 없는 그의 아들 수식은 험한 시대를 방황하는 남자들과 그들로 인한 또 다른 상처를 아프게 보여준다.
   남편, 아버지의 부재는 곧 삶의 중심의 부재이다. 전기공사하는 데 따라다니며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좋다고 했던 말숙의 신랑 갑수는 전깃줄에 타죽고, 등이 휘도록 나무짐을 가족을 먹여 살리려 했던 기태는 그 나무등짐에 깔려 운명을 다한다. 금실 좋던 강생이는 남편 윤서방이 감옥에 간 사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고, 밀주 단속에 걸린 이순이는 벌금을 물기 위해 낯선 남자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 아들 재득의 문둥병을 낫게 하기 위해 남편 시신을 파내어 골수를 꺼내 먹이는 분들네의 집착도 모두 안타깝게 뒤틀리고 무너져버린 삶의 모습이다.

 훈훈하게 복원되는 옛 삶의 자취들

 하나같이 불쌍하기만 한 목숨들의 서러운 삶의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이 온통 우울한 빛깔을 띠는 것은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들기에 의심 없이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농촌마을의 풍경, 어려운 가운데서도 즐겼던 명절날 모습 등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한다.
  밤늦도록 수수깡으로 풍년 낟가리를 만들어 거름더미에 쌓아두고, 달집을 태우고 나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마당질을 하듯 낟가리를 두들기는 대보름날의 풍경은 흥겹기 그지없다. 정월 대보름과 이월 초에 지내는 영등제도 지금은 거의 잊혀진 것. 영등할매가 딸을 데리고 오면 치마가 예쁘게 나부끼라고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분홍치마가 얼룩지느라고 비가 온다는 속설도 흥미롭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나물들이 이름은 그 생김생김을 어림할 수조차 없지만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봄바람이 가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나랑나물, 돌쪼구, 뚝같이, 기름나물, 꼬치대, 칫동아리.
   훨훨 타오르는 광솔불에 아낙들이 허여멀건 다리를 봉실봉실 내놓고 입담 좋은 이가 이야기를 하고 소리 좋은 이가 노래를 부르고 열무김치에 감자 삶아 먹어가며 하는 여자들의 '삼삼기' 풍경도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곧 일이던 당시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오목한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는 개장국을 떠담고 작은 너버지로 뚜껑을 덮고 그걸 다시 족자리가 붙은 옹배기에 담아…"
   "…씨아의 잡주지도, 돌것 보탕도, 진개도, 새끼자새도, 왕골속으로 삼은 부티도, 끌신도, 다올대도, 꼭지새 뿌리를 캐와서 만든 정지 쑤세미도, 노강주나무 닭둥우리도, 옻나무 횃대도…" 용도와 모양새를 짐작하기도 힘든 그 시절 살림살이들의 생경한 이름도 당시의 신산스러운 삶과는 무관하게 읽는 이를 옛것이 주는 푸근함에 젖게 한다.

생명과 사상

다양한 성격과 처지의 인물들이 인연을 만들어 삶을 이어가지만 이 소설에는 서로 갈등하고 만복하기보다는 서로 불쌍히 여기고 애태우며 그리워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아들이 아비를, 동생이 언니를, 지어미가 남편을, 그리고 헤어진 이웃들을 서로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슬프고 답답한 세월의 가슴아픈 이야기들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지닌 따뜻함 덕분이다.
   서러운 삶들이어서일까. 그러나 이들의 사랑에는 슬픔이 배어있다. 한 여자와의 사랑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어매와 동생을 버리고 산골에 숨어살아야 했던 이석이 그렇고 죽은 아내 깨금이를 잊지 못하는 배서방의 삶도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문둥이 분옥이와 장거지 동준이의 사랑이다. 부끄럽고 슬퍼서 성한 사람을 피하는 것이라고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자 동준이와 문둥이 분옥의 눈물겹고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여느 대하소설처럼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고 극적인 긴장이나 첨예한 갈등도 없다. 자칫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는데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것은 동화를 오래 써온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묘사 덕분이다. "고추를 오독오독 딴다" 거나 "햇살이 따금따금 이마를 비추면 눈거죽이 째금거리고 눈알이 알알해진다"처럼 소설 속의 장면들을 눈에 뵈듯 선명하게 해준다. 안동지방 특유의 사투리들이 생동감을 더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소설은 소설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세간의 규정에 딱 들어맞는 모범답안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설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소설이 아니고서야 이 자잘한 삶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로 재미있고 가슴 찡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생명에 대한 경외는 슬픈 삶도 살아볼 만한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다. 이어지는 격랑의 세월에 분들네는, 이순이는 그리고 또 서억이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어갈지 뒷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녹색평론》199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