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비평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읽고

권기숙

 

1. 안동에서
 

   결혼해서 안동에 돌아온 후 안동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욕심으로 시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한 달 동안 하루 세 시간씩 강의를 받고 일주일에 두 번씩 문화 유적지를 둘러 보는 일정이었다. 안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안동에서 나고 죽었는지, 안동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지금 남아있는 유적지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두루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안동이 관광도시로 급부상하면서 관광 안내할 자원봉사자를 키워 볼 계획으로 치루어진 교육이었지만 나로서는 다시 돌아온 안동을 사랑하게 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안동의 인물'에 대해 배울 때였다. 퇴계 이황에서부터 탤런트 류시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불리워 질 때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권정생 선생님도 거론이 되었다. 권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기대하고 앉았는데 '동화작가'라는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나라면 제일 위쪽에 써 놓고 한 시간 내내 선생님의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겠노라고 생각하며 강의시간을 보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이해하는데 이 때 배운 짧은 지식 중 한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얘기해 볼 수 있다. 안동은 동남 쪽으로는 태백산맥이 남서 쪽으로는 소백 산맥이 걸쳐진 사이에 형성된 분지여서 평야가 거의 없다. 하회마을에서 안동 쪽으로 오다보면 꽤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곳이 풍산들이다. 안동사람들이 풍산평야라 하면 세상에서 제일 넓은 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에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안동은 넓게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고 골짜기마다 몇 집씩 옹기종기 모여있다. 들이 작다보니 먹을 거리가 늘 모자랐는데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 배고픈 이야기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시골 집에 들어가면 밥상이 온통 풀밭이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에 보면 종갑이가 영양 실조로 누워있으면서 쌀밥에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삼베를 팔아 고등어를 사오는 대목이 나온다. 바다가 먼 안동에서 생선 맛을 보자면 소금을 듬뿍 친 간고등어 뿐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고기 냄새만 풍겨도 사흘을 내리 굶으셨다는 우리 할머니도 간고등어 '볼때기'살은 잡수셨다고 하니 이 곳 사람들간의 간고등어에 대한 입맛은 남다른 것이어서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도 더러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은 안동에 오면 한결같이 음식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서는 음식의 말을 내기 위한 특별한 것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김장에 젓갈을 쓰지 않았다. 젓갈이 귀해서 못샀던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이 지방 입맛으로 남아 우리 어머니는 서울 가서는 밥을 못드시겠다고 하신다. 소금에 절은 배추 그대로의 맛, 간장으로만 무친 나물 고유의 맛이 아직도 시골에는 살아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읽다 보면 그 맛이 난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은 시에서 하는 교육을 받던 중에 읽었다. 그 앞서 <<점득이네>>를 읽었고 그 한 달 전쯤에는 <<한티재 하늘>>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책장은 눈물로 얼룩이 졌고 가슴은 답답해 왔다. 골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지금도 농사일에 하루 새가 짧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모습처럼 다가왔다.

2. 전쟁으로 상처입은 사람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은 6·25를 겪은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걱정이라고는 어떻게 주린 배를 채울까 가 전부인 이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들이 닥친 전쟁은 이들을 고향마을에서 내몬다. 공산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피난길에 오르고, 피난을 갈 수 없기 때문에 남는 이들이 생길 뿐이다. 그런데도 전쟁은 이들에게 편가르기를 강요한다. 피난을 간 사람들과 마을에 남았던 사람들은 각기 민주주의자가 되고 공산주의자가 되어 서로를 경계의 눈으로 보게 된다.
   이야기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4학년으로 나오는 유준이가 군 생활을 끝내고 고향마을로 돌아오기 까지를 다루고 있다. 십 년 동안 시골 마을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가슴 아픈 일들이 생기지는 않았을텐데,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에는 모두 피멍이 남았다. 피난길에 할머니를 잃은 종갑이네. 그나마 종갑이와 할아버지는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지만 종갑이가 미국 트럭에 치여 죽자 할아버지는 대추 나무에 목을 매고 만다. 종갑이 친구 금동이네. 금동이는 누나인 금아, 어머니 일허게? 세 식구다. 전쟁전에 딴 동네 청년과 약혼했던 금아는 피난길에 우연히 약혼자를 만나 혼례를 올리고 아기를 갖지만 남편을 전쟁터에 끌려가 죽는다.
   화순이네는 피난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무참히 총살당하고 문식이네 아버지는 월북후 소식이 없다. 문식이와 복식이 형제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데, 복식은 군 입대를 앞두고 아버지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자살을 택한다. 피난길에 두고 온 병아리를 못잊어 하던 유종이와 피난도중 송아지를 버려야 했던 유준이 형제. 유준은 친구 복식이가 자살한 후에 군에 입대해 제대하고 돌아오지만 고향마을은 쓸쓸하기만 하다.
   모두가 전쟁으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했다.

 3. 전쟁은 누가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그 엄청난 전쟁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가 대체 무엇 이길래 사람이 목숨을 마음대로 앗아가는지 한없이 안타까워 합니다. 과연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다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정직한 말을 하자면 용기가 있어야 되는데, 나는 너무 겁이 많아서 바르게 쓰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몰고오는 전쟁을 누가 일으키는 것일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겁이 많아서 바르게 쓰지 못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역설적으로 해석되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전쟁 앞에 스스로 떳떳할 수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도 지구 저쪽 편 발칸 반도에서는 전쟁이 한참이다. 연일 폭격을 가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음을 맞고 있는 광경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히 전해온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도 소식을 듣고 있는 나도 이 놀라운 죽음들 앞에 무감각해지는 듯하다. 오늘 몇 명이 죽고, 어제 몇 명이 죽었다는 소식도 놀라울 것이 없다. 유고의 경제가 20년 후퇴했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힌다.
   이 땅에서 전쟁이 지나간지 반세기가 되어가지만 그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금강산으로 유람선이 떠나고 북한과의 접촉이 잦아질 때마다 그 때의 상처는 다시 들춰지고 곪고 터진다. 전쟁 때 돌아가신 외삼촌 앞으로 나오는 보상금을 타는 날은 돌아오셔서 아무런 말도 않으셨다는 우리 외할머니는 몇 해전에 돌아가셨다. 이제 몸소 겪었던 많은 분들이 흙으로 가셨다.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우리 손으로 벗겨야 한다.' '해방은 누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네 몸으로 해방을 해야 한다.'는 복식이가 남긴 유서는 그대로 가슴을 울린다.

4. 초가집이 있던 내고향

   예전에 우리 고향 마을에도 한 스무 집이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의 우리 마을에 돌아간 듯 했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우리 고향도 참 많이 변했다. 광산 김씨 제사에 살던 현숙언니네가 이사 가고 나서 문식이네가 몇 년 살다가 떠나고 지금은 빈 집이다. 쉰 발짝 정도 앞 쪽에 살던 정구네도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은 비었는데, 짚 앞 넓은 밭은 외지 사람들이 해마다 땅콩도 심고, 수박도 심고, 깨도 심는다.
   선희네가  떠나고 그 집에 인숙이네가 들어갔는데 원구네가 인숙이네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면서 원구네 살던 자리는 이제 밭이 되었다. 세원이네도 떠났고,선영이네도 떠났다. 또 종대 오빠네도 집이 서로 바뀌었는데…….
   이제 마을에는 모두 열 한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 아버지가 동네 어르신네 중에서는 제일 막내인데, 올해 연세가 쉰 일곱이니까 열 한 집에 살고 계신 분들의 평균 나이를 계산해 보면 환갑이 훨씬 넘는다. 이런 형편은 우리 동네뿐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황골, 옻밭골, 다람재, 널바우,잣밭골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늙은 부모들만 땅을 파고 사시기에 마을에는 새소리,바람소리 뿐 아이들 소리는 없다.
  젊은네들이 피난 가고 난 뒤 노인들만 남았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봄 햇살에 스스한 바람이 감도는 오늘이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199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