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육》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백창우 
 

이슬에 멱감은 풀잎. 소는 그 풀을 먹고 배가 둥둥 부른다. 참으로 편하다. 소는 그래서 바보 같다. 소는 코를 꿰인 채 잠자코 끌려가 준다. 사람 대신 무거운 달구지에 짐을 실어다 준다. 소가 살이 찌면 사람들은 값을 얼마쯤 올려 매긴다. 그러나, 소는 그림처럼 언제나 아름답다. 구정물 찌꺼기를 먹고 살아도 소는 하늘에 눈을 둔다. 소는 꿈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마음으로만 얘기한다(권정생 동화 「소」에서).
   한 열 몇 해쯤은 되었을 겁니다. 『사과나무밭 달님』(권정생 동화집)에 실린, 짤막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동화 「소」를 읽고는 괜히 소처럼 멀리 하늘을 바라보던 생각이 납니다. 그 뒤부터 소를 참 좋아하게 되었지요. 소가 나오는 노래와 시를 여러 편 쓰기도 했고요. 딱 한 권 나와 있는 권정생 시집에도 ‘소’라는 제목을 붙인 시가 일곱 편이나 실려 있더군요. 

   보릿짚 깔고 / 보릿짚 덮고 / 보리처럼 잠을 잔다 // 눈 꼭 감고 귀 오그리고 / 코로 숨쉬고 // 엄마 꿈 꾼다 / 아버지 꿈 꾼다(소·1)

   소는 사람처럼 번거롭기가 싫다 / 소는 사람처럼 따지는 게 싫다 / 소는 사람처럼 등지는 게 싫다(소·3)

   소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 보고도 못 본 척하고 / 소는 가슴 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소·4) 

  소처럼 착하게 살 수는 없을까요, 소처럼 가슴 안에 하늘을 담고 살 수는 없을까요…….
 

 

 

   하느님은 쓸 데 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거야.(권정생 동화 「강아지 똥」에서)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크게’를 외치는 세상에서 권정생의 눈길이 가 닿는 곳은 낮고 가난한 것, 느린 것, 작고 힘없는 것들이지요. 강아지가 누고 간 똥이나 투박하고 금이 간 깜둥바가지, 시궁창에 떨어진 똘배, 눈이 보이지 않는 지렁이, 앉은뱅이 아주머니, 그물상자에 갇힌 토끼, 달팽이, 반디, 가난하고 슬픈 삶이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구만이, 점례, 점득이, 몽실이 같은 아이들…….
   언젠가 그 분이 “내가 쓰는 동화는 슬프다”고 했듯이, 권정생의 동화와 시는 참 슬픕니다. 그렇지만 그 슬픈 이야기들 속에는 언제나 ‘사랑’ 또는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씨앗이 숨어 있지요. 힘겨운 삶,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그가 못난 것들,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위한 ‘희망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깨끗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 세상 아주 조그만 것들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지난주, 큰개나무가 있는 전라도 오수에 다녀오는 길에 익산역에 잠깐 내려 얼른 책방에서 『한티재 하늘』(권정생 소설) 두 권을 사 들고 기차를 탔습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얼추 읽어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반 권도 채 읽지 못했지요. 거기 나오는 사람의 삶마다 그냥 쓱 훑어보고 넘길 만한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참 기가 막힌 세상살이더군요. 그대로 싸들고 충북 음성 무너미 마을에 며칠 머물면서 느리게 느리게 읽다 노래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한티재 하늘 아래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내리내리 불리던 아리고 쓰린 숱한 가락들 가운데 그저 한 토막이지요. 허투루 난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참 몹쓸 세상이지요. 권정생 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 삶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월간 《우리교육》초등, 1999. 9 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