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의 삶과 문학  

이 기 영  


 1. 마해송이 살아온 길

1) 출생 ∼ 1920년대

마해송은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1911년(7살)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시작하던 그는 1912년 4년제 소학교인 개성 제일 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16년에는 3년 과정의 정토정 불교 중학교와 1년 과정의 야간학교인 개성 공립 간이 상업학교에 입학한다. 이듬해인 1917년 음력 4월 10일, 부모의 강요로 열세 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호적에 올리지 않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그가 폐병으로 요양을 하던(1928∼29) 중 병세가 악화되자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불행한 색시를 그 자신으로부터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혼한다.   1919년(15살) 9월 마해송은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3·1운동 이후 학교는 동맹휴학이 잦았다. 그 때마다 고향으로 자주 내려갔는데, 이 때 기차 안에서 4살 연상의 '순'이라는 여인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또 이때(중앙고보 재학 중) 문예잡지 《여광》의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동맹휴학으로 중앙고보를 중퇴하고, 보성고보에 전학하지만 다시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그는 1921년 12월 24일 일본으로 건너가 그 이듬해인 1922년(18살) 봄에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한다. 여기에서 그는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홍난파 같은 사람들과 도쿄 유학생 극단 동우회를 조직하여 희곡과 동극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의 연인 '순'과는 입학 무렵(1922년 3월)에 일본에서 다시 만나 열흘 정도의 동거 생활을 하지만 '순' 남편의 등장과 철권단의 투고1)로 '순'은 중국으로 가고, 마해송은 고향에 붙들려 연금생활을 하게 된다. 이 연애사건으로 호된 꾸지람을 듣고 연금상태에 불만을 갖게 되는데 그 불만을 동화로 쓴 것이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다.  
  마해송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 《아름다운 새벽》에서 '왕의 폭력에 의해서 사랑이 끊기었고, 사랑이 끊기었기 때문에 빛을 잃었으나, 한 번 죽은 다음 바다 속에서 사랑이 되살매 잃었던 빛을 도로 찾고, 꽃도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는 뜻'으로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썼다고 말한다. 또 '아버지의 꾸중으로 지금 집에 박혀 있으나 사랑은 끝내는 이길 것이라는 속셈이었다. 어른은 언제까지나 어린이를 소견 없는 철부지로만 생각하지만, 어린이도 사람이며 생각도 지각도 있으니 사람 대접을 하라는 울부짖음은 문 밖에도 못 나가고 갇혀 있을 때의 애절한 기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가 겪은 애절한 울부짓음은 어린이의 마음을 좀 알아주도록 어른에게 호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져 소년운동을 일으키는 동기가 된다. 그는 어린이 모임을 가져서 널리 사귀고 마음을 닦아 착한 일을 하며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1922년 조선 소년단을 창립하여 책임자가 되기도 한다. 당시에 그는 신앙심 없이 예배당을 다녔는데 '어린 사람들을 만나려면 쉬운 길이 예배당을 통하는 것밖에 없다'
2)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1923년(19살)에 《샛별》지에 발표되었다. 마해송은 《샛별》지의 편집 일을 맡아하며 여러 가지 각본을 써 연극과 동화구연 따위의 공연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듬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3) 색동회에 가입(1924년)하여 어린이를 위한 문화운동을 계속하면서 《어린이》지에 많은 동화를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어머님의 선물>(어린이 25년 12월), <장님과 코끼리>(어린이 25년 12월), <두꺼비의 배>(신소년 26년 3월), <소년특사> 따위가 있다.

2) 1930년대 ∼ 해방 전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해송은 일본으로 다시 가서도 날마다 술타령 만하다가 끝내 폐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요양을 하게 된다.(1928∼29년) 퇴원 후 도쿄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의 초대 편집장, 선전부장을 지내다 1930년 《모던니혼》의 사장으로 일본사람 직원을 거느리고 발행 부수 10만을 넘는 잡지사를 운영하여 일본 문화계를 주름잡는 한편, 조선 예술상을 마련하여 우리 나라의 문인들을 돕기도 하였다.
  1931년 8월 그는 《어린이》지에 <토끼와 원숭이>를 처음 발표하고 1933년에 다시 연재하다가 3회 치 원고를 압수당하고 더 발표하지 못하게 된다. 이 동화에서 토끼를 원숭이로 만들고, 원숭이의 구호를 외우고 다니게 한 것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 일본을 비난한 얘기라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세 번째 원고는 인쇄되지 못하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완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하게 되었다.(《자유신문》 1946.1.∼7)
  <토끼와 원숭이>를 발표할 무렵(1931년 9월) 그는 누구보다도 색동회와 소파를 아끼면서도 조선일보에 방정환의 영웅주의와 눈물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 이즈음에 이르러 그의 작품세계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4)
  
1933년(29살)에는 옛이야기를 재창작한 <호랑이와 곶감>을 발표한다. <호랑이와 곶감>은 어린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을 미리 생각하고, 또한 어린이들이 이해할 만한 수준의 말을 선택하여, 민족해방의 의지를 내세우는 주제의식을 살리는 치밀한 구성력을 갖고 있다.
  마침내 마해송의 첫 창작 동화집인 《해송 동화집》이 1934년 개벽사에서 출간된다. 여기에는 동화 <어머님의 선물>, <바위나리와 아기별>, <소년특사>, <호랑이>, <토끼와 원숭이>, <호랑이 곶감> 따위와, 아동극 <복남이네와 네 동무>, <다시 건져서>, <두꺼비의 배>, <독갑이> 같은 작품들이 실려 있고, 뒤에 손진태와 고한승, 진장섭의 서(序)와 지은이의 후기가 실려 있다.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오랜 원망에서 벗어난 마해송은 1937년(33살) 11월 4일 열 살 아래인 무용가 박외선을 만나 결혼한다. 이 때까지 일본에서 줄곧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1944년 6월 동경에 폭격이 심해지자 가족을 서둘러 귀국시키고 자신은 1945년 1월에 귀국한다. 

3) 해방 후 ∼ 1966.11.6

마해송은 해방 후에도 사회성과 주제의식이 강한 동화를 썼다. 1946년(42살) <토끼와 원숭이>를 재 집필하여 완성하였고, 1948년 1월에는 <떡배 단배>를 <자유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떡배 단배》는 1953년 다른 몇 편의 단편 동화와 함께 책이 되어 나온 후 8년 동안에 다섯 번이나 찍어냈다고 한다.
  자유당 집권 때에는 장편동화 《모래알 고금》(《경향신문》57.9.10 ∼ 58.1.20)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혼란스런 사회 모습을, <꽃씨와 눈사람>(《한국일보》60.1.1)같은 작품으로 부정부패가 극도에 이른 정권이 무너질 것을 은근히 보여 주기까지 했다.
  6·25때에는 전란 당시의 사회상을 그린 장편동화 《앙그리께》를 발표하여 민족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자기인식을 드러냈다.
  1966년 11월 6일 9시 55분 뇌일혈로 사망한 그는 경기도 양주군 금곡 카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2. 최초의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
          -  옛이야기에서 창작동화에 이르는 다리 구실  

보통 옛이야기는 배경이나 심리 묘사가 거의 없이 극히 소박하게 어떤 줄거리 - 사건의 진행 - 에만 중점을 둔다. 그래서 옛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은 개성있는 성격이기보다는 보편·추상의 인물로 등장한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환상과 낭만이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 자신이 처한 비극의 현실을 통해 그 당시 어린이들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대변하고자 했다. 사회 가치와 어른들의 '절대 권력' 앞에서 홀로 서 있기에 너무 약한 작가(어린이)는 함께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필요했다.
  바위나리의 외로움을 그려낸 쓸쓸한 바닷가는 그래서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남쪽 나라 따뜻한 나라, 사람 는 동네도 없고,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간 자취도 없는 바닷가에 다만 끝없이 넓고 넓은 모래 벌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바닷가의, 산이라고는 없는 벌판이라, 나도 없고, 나무가 없으니 노래를 부르는 새조차 한 마리 없고, 풀 한 잎도 없었습니다. 희고 흰 모래 벌판과 푸르고 푸른 바닷물만이 한끝까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떡배 단배》, 신구미디어, 146쪽) 

바위나리는 외롭다. 둘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멀리서 아기별 온다. …… 이렇게 해서 이들의 이야기는 만들어 진다. 이렇게 등장인물의 성격과 줄거리 전개를 위해 배경과 상황묘사가 들어가지만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마지막에 아기별이 바다 속으로 빠진 다음부터는 깊은 바다 속이 환하고 밝게 보인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여러분은 바다를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바다는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게 밝게 보입니다.웬일일까요?그것은 지금도 바다 그 밑에서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고 있는 까닭이랍니다.(위의 책, 155쪽) 

"바다는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대. 왜 그런지 아니? 옛날에 옛날에 ……"라고 시작해서 등장인물이 꼭 '바위나리'와 '아기별'이 아니더라도 무리가 없다. 삭막하고 쓸쓸한 바닷가(배경)에 바위나리 꽃이 외로움에 친구를 기다리고, 아기별과 함께 있고 싶어하면서도 떠나보내는 심리적 갈등(심리묘사) 따위의 배경과 묘사는 옛이야기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나 구조는 옛이야기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옛이야기에서 창작동화에 이르는 다리구실을 한 동화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닐까.  

3. 저항의식이 담긴 동화

어린이는 여리고 고운 존재만은 아니다. 그래서 동심과 저항의식은 서로 떨어뜨려 놓아야 할 것은 더욱 아니다. 저항의식 또한 동심의 근원적인 한 요소이며, 이는 동화 문학이 가질 수 있는 휼륭한 주제나 제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동화에 반드시 저항 정신이 들어 있어야만 좋은 동화는 아닐 것이다. 다만 어린이 문학에서 저항의식은 다른 도덕적 품성과 함께 아이들에게 고양되어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금껏 아동문학에서 일반적으로 금기시 했던 '저항 정신'의 필요성을 마해송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깨우쳐 보고자 한다.   
  일찍이 마해송은 저항 의식을 담은 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문학 작품이 사회의 매체 구실을 하고 있다고 볼 때 우리 민족이 문학에서 갖는 저항의 근거는 우리 민족이 당한 식민지 시대의 수모가 빚어낸 민족의식과 사회의식이 중심을 이룬다. 바로 마해송도 이러한 저항의식을 민족의식에서 찾았고, 그것은 바로 당시의 상황이 빚어낸 산물이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이오덕은, '마해송 씨의 동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민족의 독립을 바라고, 사회의 잘못됨을 바로 잡으려는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저항의식'을 간단히 살펴보자.
  마해송은 옛이야기의 재창작도 대개 저항성이 포함되었거나 저항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들에서 고르고 있다. 〈호랑이와 곶감〉(1933)은 저항의식을 잘 드러낸 초기의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옛이야기를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새롭게 다시 쓴 것이다.
  

 그 때에 호랑이들 가운데에 기운이 있고 똑똑하고 잘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대체 무슨 까닭으로 우리 호랑이가 괴상 망측한 곶감놈에게 날마다 목숨을 갖다 바쳐야 되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의문을 일으킨다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귀한 일이다.  의문을 바르게 풀어 알게 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는 것이다.
                ...... 가운데 줄임......
 그러나 젊은 호랑이들은 이대로 가면 얼마 안가서 호랑이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니 아주 망하기 전에, 곶감의 밥이 되기 전에 한번 힘을 합해서 싸워나 보고 죽자고 생각하였다. 

'곶감'으로 사칭한 괴물에게 억울한 수탈을 당하던 호랑이족 중 지각있는 호랑이가 있어 곶감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의문에 쌓인 무서운 힘에 눌려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해 싸우자는 것이다. 굴종이 아니라 자유와 독립의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어린이에게 어른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회 상황을 일일히 그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동화에서는 어린이가 이해하기 힘든 사회 상황을 동심의 환상 세계에 투입하여 그려냄으로써 어린이에게 현실감 있는 박진감을 줄 수 있다.
  마해송의 〈떡배 단배〉(1948)는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침략 과정을 떡배와 단배라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강대국들의 경제 침탈과정과 예속과정, 그리고 남의 나라에 예속된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단집에 있는 것이 떡집으로 가건, 떡집에 있는 것이 단집으로 가건, 그건 우리에게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닐까? 우리들은 우리들의 일만 하면 되지 않을까? 떡배나 단배나 다 한 통속이 아닐까?"
     "음,그렇구나! 떡배, 단배는 바다에 떠서 구경만하고, 싸워서 죽고 병신 되는 놈은 우리 섬사람들 뿐이지!"
     얼마 동안 수선거리더니 그 중의 한 사람이,
     "그렇다, 옳다!"
   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 일어서더니, 
    "그렇다. 치러 갈 데는 따로 있다! 가자!"
   하고 나서니 여러 사람이 일어섰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산 이편에서는,
    "단배를 쳐라!"
   는 소리, 산 저편에서는, 
    "떡배를 쳐라!"
   는 소리가 하늘을 뚫을 것같이 요란하였다. 아우성 소리와 함께 섬사람들은 산을 되돌아 밀려내려왔다. 질겁을 한 사람은 떡집 주인 카라카라와 단집 주인 갑동이였다.(《떡배 단배》, 신구미디어, 118쪽) 

돌쇠가 '떡배나 단배나 다 한 통속이 아닐까'라고 하는 생각과 갑동이의 단집을 떠나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사는 행동은 자립경제 의지를 갖은 주체적인 삶으로 보여진다. 이는 곧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저항의식(주체성)이 바탕이 된다. 이러한 돌쇠의 의식은 마침내 섬 사람들을 깨우치고 함께 떡배와 단배를 치러가게 되는 것이다.
  <꽃씨와 눈사람〉(1960.1.1)에서는 '눈사람'을 독선적인 세력으로 '꽃씨'를 신선한 새로운 세력으로 설정한다. 아이들이 물려준 담뱃대를 물고 눈 위에 버티고 앉아 위엄을 부리던 눈사람도 새봄에 솟아난 여리디 여린 꽃씨의 저항은 견디지 못하고 제풀에 허물어져 녹아 버린다.
  마해송 동화에서 저항의식은 동화 내용 자체가 부조리한 상황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경우가 있고(〈모래알 고금〉, 〈학자들이 지은 집〉, 〈생각하는 아버지〉따위), 부조리한 상황에 대결하는 주인공이 저항의식을 보여주는 경우(〈토끼와 원숭이〉, 〈떡배 단배〉, 〈꽃씨와 눈사람〉 따위)를 볼 수 있다.   
  마해송이 우리 나라에 창작동화의 씨를 뿌리면서 동화 속에서 보여준 저항의식은 참으로 귀한 것이고 오늘날 우리 아동문학에서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으로 본다.
  마해송은 1920년대 우리 어린이 문학을 자리 매김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창작하여 우리 나라 창작동화의 길을 열었고, 우리 겨레다운 것(민족의식)을 어린이들의 마음에 심으려는 노력은 그 후 많은 창작 동화들의 밑뿌리가 되었다.
  마해송 동화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겨레가 일제시대에 어떤 고난을 당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어른들이 만든 그릇된 사회에서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해 주는 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재미있는 소설적 구성, 어린이들의 이해를 충분히 생각한 말과 간결한 문장, 풍자적인 표현들은 그의 작품들을 훌륭하게 뒷받침 해준다. ▣     

* 작품연보

 <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샛별(23)/어린이(26)
            어머님의 선물/어린이(25.12)         
            장님과 코끼리/어린이/25.12                   
            홍길동/신소년/26.1                           
            도깨비의 배/신소년/26.3                      
            5인 동무/어린이/27.3                         
            마음의 극장/조선일보/27.6-7                  
            호랑이/신소년/29.1                           
            호랑이와 곶감/어린이/33.11-12                  
            어머님 생각/소년중앙/35.1                    
            토끼와 원숭이/어린이(31-33)/자유신문(46.1-47)
            떡배 단배/자유신문 연재/48.1                   
            박과 봉선화/새벗/54.8
            앙그리께/54
            사슴과 사냥개/동아일보/55
            후라이 치킨/문학예술/56.6                     
            형제/문학예술/57.8
            물고기 나라/58                            
            모래알 고금/경향신문/57.9.10-58.1.20          
            토끼와 돼지/59
            꽃씨와 눈사람/한국일보/60.1.1                 
            멍멍 나그네/한국일보/60.4.5-9.14              
            점잖은 집안/한극일보/60.12
            비둘기가 돌아오면/경향신문/60.6.1-61.2.1
            할아버지 지게/서울신문/63.1
            생각하는 아버지/서울신문(63.1)/카톨릭 소년(63.4)
            학자들이 지은 집/아동문학/63.6
            경우 밝은 여우/카톨릭 소년/63.6
            게한테 진 여우/카톨릭 소년/63.7
            눈이 빠진 아이/카톨릭 소년/63.8
            여우 없는 여웃골/카톨릭 소년/63.9
            그때까지는/카톨릭소년/1963-64

〈동화집〉
            홍길동/신 소년사/1927
            해송동화집/개벽사/1934
            토끼와 원숭이/신구문화사/1947
            떡배 단배/학원사/1953
            멍멍 나그네/현대사/1961
            마해송 아동문학 독본/을유문화사/1962
            비둘기가 돌아오면/학원사/1962
            마해송 할아버지/교학사/1965
 

〈희곡〉  겨울의 불꽃/학지광/26.5

   〈수필〉  
            마음의 극장(리리움)/조선일보/27.6.23-24
            밤의 인상/조선일보/27.7.2-5
            프린스 하겐/조선일보/27.7.11-12
            두견/조선일보/27.7.19
            가을의 불/조선일보/27.8.5-6
            벌레의 생활/조선일보/27.9.18-22
            독서/신세대/49.1
            악동탄생/신천지/57.7.8
            속. 편편상/문예/53.12
            싸와토륨-폐결핵 요양 회상기/신태양/56.6
            식도락 근처/신태양/57.4-5
            요설록/신태양/57.10-59.1

〈수필집〉
            역군은/ 1941
            편편상/새문화사/1948
            속. 편편상/새문화사/1949
            사회와 인생/세문사/1953
            전진의 인생/흥국연구협회/1953
            씩씩한 사람들/문교부/1955
            요설록/신태양사/1958
            아름다운 새벽/민중서관/1961
            오후의 좌석/어문각/1962

<평론>   나와 〈색동회〉시대 - 신문화의 남상기/신천지/1954.2

* 참고자료
    1. 마해송,《아름다운 새벽》, 성바오로 출판사, 1974.
    2. 마해송,《오후의 좌석》,어문각,1962.
    3. 윤석중,마해송 선생,소년소녀한국문학전집 15 동시.동화 편,계민출판사,1978.
    4. 진장섭,인간 마해송의 이모저모,위의 책.
    5. 윤극영,마해송의 손길,위의 책.
    6. 박종화, 마해송 선생의 인간과 문학,위의 책.
    7. 박홍근, 대나무같이 곧은 정신,위의 책.
    8. 윤석중,우리나라 소년운동 발자취,윤석중 전집 27,웅진,1988.
    9. 이재철,한국 아동문학 작가론,개문사,1983.
   10. 이재복,우리 동화 바로 읽기,한길사,1995.
   11. 안혜숙,마해송 작품을 통해서 본 어린이 상,아동문예 17,1980,겨울.
   12. 최인욱,해송문학의 아동문학 Vol.15,1968년 3월.
   13. 김영일,아동문학의 과제, 자유문학 38호,1960년 5월.
   14. 이원수,모색하는 경향,자유문학 Vol.2, No.5,1957년 2월
   15. 박경용,창작동화의 개척자 마해송 님,카톨릭 소년 Vol.10,No.1,1969년 2월.
   16. 황대연,고 마해송의 인간과 작품,매일신문,1966년 11월 10일.

*각주
1) 마해송,《아름다운 새벽》, 성바오로 출판사, 80쪽 '철권단이란 무쇠주먹 단체라는 말이다. 유학생들이 조직한 주먹질하는 단체였다. 1919년의 독립운동은 본국보다 한 달 앞서 동경에서 횃불을 올렸던 것이니, 그 후에 갑자기 향학열이 높아져서 동경으로 모여드는 유학생이 많았고 그 중에는 별별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이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고, 학교에는 다니지 않고 놀러만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본국에 처자 있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신여성 유학생을 보매 정신이 팔린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행동은 젊은 사람과 달라서, 염치 불고하고 눈에 든 여학생의 숙소로 찾아가서 졸라댄다든지 길거리에서 붙잡고 늘어져 못살게 구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일은 일본인의 눈에 띄는 일이니 민족의 위신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해서 주먹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철권단의 일이라고 했다.'
2) 위의 책, 36쪽.
3) 위의 책, 52쪽.
  '얼마 후에 나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도망꾼이었다. 연애 사건 때문에 아버지에게 갇힌 몸이 되었지만, 차츰 풀려서 서울에 며칠동안 다녀오는 일쯤은 허락되던 터였기에 서울 갔다 온다고 떠난 그 길로 바다를 건넜다.   (……) 동경에서의 생활은 엄하고 완고한 아버지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움으로 벅찼었다.'
4) 위의 책, 304∼395쪽.
  방(方)군과 우리들(주로 색동회 회원)은 근년에 와서 오히려 상반하는 사이에 있었다. 우리는 여전 두터우면서, 방군의 《어린이》편집 방침, 아동지도 방침에 대하여는 우리는 오히려 대립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영웅주의와 눈물주의를 극력 배척한 것이다. (……) 꽃과 별과 천사와 공주의 꿈같이 아름다운 이야기와 눈물만 줄줄 흘리게 되는 애환만이 아동의 정서를 보육함이 아니라 (……) 세상에 일명(一命)을 타고났으니, 세상을 행복하게 할 의무와 그 행복을 받을 권리를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한다. ▣(글쓴이 이기영님은 우리 회 교육연구국장이며, 어린이문학연구분과에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