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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6년 8월 22일 저녁 7시
•장소: 북카페 바사크라
•사회 및 정리: 현정란 경남지부장
•토론: 이주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장 및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이루리 이루리북스 대표 겸 작가, 이순영 북극곰 대표,
김상화 한국영화교육아카데미 원장, 최현정 부산지회장
•정리: 현정란 경남지부장

2026년 어린이도서연구회 부산지회가 서른 살을 맞았다. 부산지회는 30주년을 맞아 ‘어린이책 문화운동, 다시 길을 묻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주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장 및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이루리 이루리북스 대표 겸 작가, 이순영 북극곰 대표, 김상화 한국영화교육아카데미 원장, 최현정 부산지회장이 한자리에 모여 어린이책 문화운동을 돌아보고 달라진 시대에 어린이도서연구회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이책 문화를 바꾸다
현정란(이하 사회자):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어린이책을 찾아 읽고 소개하는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전국적인 어린이책 문화운동 시민단체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어린이책과 독서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어린이책 문화를 바꾸는 데 어떤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주영: 당시에 도서목록을 만들어 전국 초등학교에도 보급했는데 주로 동화와 단행본이었습니다. 그 무렵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이 지역을 다니면서 소개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팔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책 단행본 시장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전집물의 시대가 1960년대, 1970년대였지요. 1980년대가 되면서 단행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그림책의 시대도 열리기 시작했고요. 그 무렵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시작한 운동 중 하나가 서점에서 책을 정가로 사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또 책에 ‘올챙이’를 매겨 평가했어요. 세 마리 이상을 받으면 우리 회 권장도서목록에 올라갔습니다. 1990년대에는 이 목록을 6만 부나 만들어 학교에 배포했습니다. 권장도서목록에 올라간 책은 판매량도 많이 늘었어요. 그러면서 출판계에서도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도서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1995년쯤부터는 외국 동화 출판도 활성화됐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는 외국 동화를 출판사가 마음대로 자르거나 오역한 책이 아니라 제대로 완역하고 번역이 잘된 책을 고르자는 운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외국 동화의 번역 수준도 좋아졌습니다.
사회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활동이 단행본과 동화, 그림책, 번역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책 출판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이네요.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님께서는 출판 현장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역할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대건: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어린이책 운동이 출판 현장에서도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주영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저도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어요. 제가 초등학교 2, 3학년이었는데 집에서 컬러 세계명작전집 100권을 사주셨어요. 그런 전집 중심의 어린이책 시장을 바꿔내기 위해 어린이도서연구회가 고군분투했다는 거잖아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한국 사회 30년, 40년, 50년 독서 문화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제대로 정리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이순영 북극곰 대표님께서는 출판 현장에서 우리 어린이책의 변화를 직접 보고 계시는데요. 과거와 비교하면 한국 어린이책의 위상이 달라졌나요?
이순영: 해외 도서전에 나가보면 한국 책, 특히 한국 어린이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느낍니다. 해외의 작가나 편집자, 에이전트들도 한국관은 꼭 가 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나라 어린이책과 그림책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변화의 저변에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양서협동조합 시절부터 오랫동안 어린이책 문화를 만들어 온 역사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라진 독서 환경
사회자: 어린이책을 둘러싼 독서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어린이책을 읽는 독자층도 넓어졌고 책을 고르고 읽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출판 현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이순영: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어린이책을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성인들도 자신을 위해 어린이책을 고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어린이책을 특정 연령만 읽는 책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훨씬 넓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한 책이 있을까요?”처럼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고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책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나 시각적·예술적 아름다움 때문에 책을 고르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또 하나는 아이에게 직접 책을 고를 기회를 주는 부모님들이 훨씬 늘었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가 현장에서 독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변화예요.
이대건: 제가 시골에서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부모가 책을 골라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에게 직접 고르게 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들 사이의 독서 경험 격차가 굉장히 크다는 것도 느낍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고 스스로 책을 고르는 데 익숙한 아이가 있는 반면, 책을 접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과 만날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을 어떻게 책 가까이 오게 할 것인지, 또 지역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독서 경험의 차이를 어떻게 줄여갈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자: 결국 아이가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환경은 좋아졌지만, 모든 아이에게 그런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김상화: 지금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해졌습니다. 책을 직접 고르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 생각이 훨씬 구체적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스스로 넓혀갑니다. 저는 그 점이 이전 세대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이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최현정: 저는 도서관과 학교에서 책읽어주기를 하며 어린이들을 자주 만납니다. 부모에게 정보가 있고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건이 되어야 참여할 수 있는 도서관 활동이 많아요. 특히 유아의 경우 부모가 도서관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직접 데려오지 않으면 책을 함께 읽을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선택된 아이들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차이가 분명히 보여요. 제가 10년 넘게 도서관에서 활동하면서 어린이들 사이의 독서 경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자: 유아기의 독서 경험에서 생긴 차이가 초등학교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말씀이네요. 그렇다면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최현정: 중·고등학생들은 아시다시피 책을 읽을 시간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을 기회도 많지 않고요. 아이들이 주로 읽는 것은 교과서나 문제집이고 문학 작품도 한 권을 온전히 읽기보다 시험을 위해 해설이나 요약본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책을 좋아해서 책을 찾아 읽는 아이들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공공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같은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책읽기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며 서로 이야기하고 너와 내가 소통하고 책 속 인물과도 만나는 것이지요. 그런 경험을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추천목록과 독자의 자유
사회자: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오랫동안 좋은 어린이책을 골라 권장도서목록을 만들어왔습니다. 이 목록은 어린이책을 알리고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요.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독자의 취향과 선택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책을 선정하고 추천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루리: 저는 우리가 돌아볼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학생운동 세대가 가졌던 한계 가운데 하나는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범죄나 명백한 잘못이 아니라면 많은 경우 ‘옳고 그름’보다 ‘다름’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 있을 뿐 내가 좋아하는 책이 반드시 더 옳은 책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도서 선정과 추천 활동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도와 달리 바깥에서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선택한 책은 좋은 책이고 선택하지 않은 책은 좋지 않은 책이다.”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기준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사회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도서 선정과 추천이 그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 방식과 기준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책을 추천하고 소개하는 활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루리: 지금 어린이문학 출판 시장에는 정말 많은 작가와 출판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실제로 조명을 받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책 문화의 전체 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몇몇 작가와 책에 관심이 집중된다면 나머지 작가와 출판사는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책 문화의 판 자체를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의 즐거움과 가치를 누리고 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독자의 저변을 넓혀야 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정하는 것보다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책 문화의 영역을 얼마나 더 넓혀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더 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누는 새로운 활동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지금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누구나 책 정보를 얻고 직접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목록과 선정 방식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또 추천목록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이루리: 과거에는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많이 샀습니다. 내가 직접 읽어 보지 않아도 “추천도서니까 좋은 책이겠지.” 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반면 지금은 개인의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골라 삽니다. 저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독서운동의 핵심은 ‘독서의 자유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목록도 어떤 면에서는 독자의 선택을 대신해 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도서관이나 책방에 간 사람이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자유, 감상의 자유, 해석의 자유가 있어야 책읽기의 진짜 즐거움과 가치가 생기잖아요. 그 자유를 독자에게 돌려주는 것, 저는 그것이 21세기 어린이도서연구회가 고민해야 할 방향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주영: 책을 내면서 “우리 책은 나쁜 책이다.”라고 생각하고 내는 출판사가 있겠어요?(웃음)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는 자기 출판사 책이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목록에 올라가지 않으면 “왜 우리 책은 목록에 안 올라갑니까?” 하는 항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은 자기 돈으로 회비를 내고 책을 사서 매주 모여 책을 읽었습니다. 누가 돈을 주거나 출판사가 부탁해서 고르는 목록이 아니라 회원들이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읽고 토론해서 만든 목록이었던 겁니다.
이루리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책에 좋은 책, 나쁜 책이 어디 있느냐.”는 이야기는 원칙적으로 굉장히 타당합니다. 독자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두고 ‘문화 권력을 독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시민단체입니다. 시민단체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추천목록 역시 ‘우리의 기준’에 따라 골라야 합니다. 그 목록을 봤을 때 “아, 이것은 어린이도서연구회 목록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사회자: 그렇다면 어린이도서연구회가 가진 고유한 기준과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독자의 자유와 다양성을 함께 담아내는 일이 중요하겠네요.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까요?
이주영: 저는 그것을 ‘구심력과 원심력’이라고 봅니다. 구심력은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기준으로 책을 읽는지를 분명히 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구심력만 강하면 폐쇄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원심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생각과 취향, 다양한 책과 독자를 받아들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루리 작가가 말하는 것도 결국 그 원심력을 더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더 다양한 사람과 책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 시민단체도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 왜 어린이도서연구회인가
사회자: AI가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왔습니다.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과 영화까지 만드는 시대가 되었고 어린이들도 학교와 일상에서 AI와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습니다. 창작과 어린이의 삶이라는 두 측면에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루리: 저는 AI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윤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한 AI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영화를 만들고 노래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그 창작 자체를 AI에게 맡긴다면 과연 누가 행복해지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또 하나는 AI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는 표절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만들어 온 작품을 학습한 AI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서도 저작권과 창작 윤리의 측면에서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술 자체를 모두 거부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의 창작을 돕는 도구인가 아니면 인간의 창작 자체를 대체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AI 시대에 더 중요한 질문은 결국 ‘인간을 위한 기술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술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그것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화: 스마트폰이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휴대전화 화면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몸을 움직이고 주변 세계를 느끼는 경험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어린이의 삶과 관계, 감각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건: 산업 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면, 이제 AI는 인간의 생각과 정신 활동까지 대신하려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편리하고 매력적인 도구이지만, 모든 것을 맡기다 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인간으로서 해온 감각과 사고의 과정까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직접 해 보는 것’을 강조합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끼고 직접 쓰는 겁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읽고 가능하면 손으로 직접 써 보는 것이지요.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는 단순히 문장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이는 감각적인 경험입니다. 그런 인간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AI 시대일수록 어린이의 마음과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임에서 소리 내어 책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감각이 함께 움직입니다. 책읽기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을 함께 사용하는 경험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읽기 운동을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하나의 캠페인처럼 해 봐도 좋겠습니다.
이주영: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술 문명이 발달할 때마다 인간의 정신과 삶이 위협받는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말의 시대에서 글의 시대로 넘어갈 때도 “글을 쓰면 인간의 정신력이 약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라디오와 TV가 나왔을 때도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AI 시대가 되니 또 책이 몰락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책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읽는 대상과 방식이 종이책에서 더 넓게 확장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몸으로 하는 노동은 줄어들고 생산방식도 달라질 겁니다. 그럴수록 인간의 정신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 예술을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책을 바탕으로 영화도 보고 연극도 하고 놀이도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책을 열심히 읽고 또 열심히 놀면서 인간다운 삶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결국 AI 시대에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해야 할 일도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가 직접 읽고 쓰고,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몸으로 놀고 느끼는 경험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동시에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 ‘이 기술이 어린이와 인간의 삶을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함께 묻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것이 AI 시대 어린이책 문화운동에서 새롭게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1) 좌담회 내용은 <동화읽는어른> 지면에 맞게 일부 줄였습니다.
